[김헌식 칼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변태라도 섹시한 부자라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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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01 13:19   수정 2015-03-02 00:22

[김헌식 칼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변태라도 섹시한 부자라면 괜찮아

▲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사진 =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스틸컷)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한국 신데렐라 콤플렉스 드라마들과 많이 닮아 있다. 좀 더 생각해 보면, 한국의 신데렐라 콤플렉스 드라마에 섹슈얼리티를 강화해 세계에 내놓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물론 디테일한 장면의 연출이나 배우, 정서적 깊이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흥행이 보장된다고 볼 수는 없겠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어떤 환타지 코드가 본능을 자극하고 있는지 확인은 할 수 있다.

우선, 한국의 드라마들은 주인공 남성을 정신병에 걸려 있거나 정신적 장애에 고통을 받는 인물로 그려낸다. 그런데 이들의 직업은 재벌가의 사람이거나 적어도 화려한 유명인내지 돈이 많다. 여성 주인공은 그에 비해서 평범하거나 그 이하에 해당된다. 돈이 많고 전문직에 종사할수록 못된 악녀로 등장한다. 그것도 아름다운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훼방꾼이다. 물론 그런 악녀가 둘 사이의 사랑을 더 깊게 한다.

그렇다면 왜 주인공 남자는 모두 부자에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주인공 여성이 남자 주인공과의 로맨스를 성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정신적인 문제를 여주인공이 보듬거나 위무하고 치유하면 사랑이 깊어진다는 비교적 매우 간단한 설정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물론 남성은 알수 없이 여성에 빠진다. 이유가 있다면 순수한 면이 부각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같은 설정에 있다. 여성 주인공은 대학 졸업반의 20대 초반 여성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혼재하고 있는 나날을 보낸다. 자기 주체적인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게 그녀를 흔든다. 이 여성의 전공은 영문학으로 세상을 감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유를 갖고 있지만, 실제 취업 환경에서는 환영 받지 못하는 전공이다.

하지만 냉혈한 기업 경영주에 불과한 남성 주인공은 감성적인 그녀의 몇 마디와 표정에 혹하고 만다. 그 명분은 다른 여자들과 다른 순수한 점이 부각된다. 여성은 별 노력없이도, 부유한 남성을 빠져들게 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남성은 거의 열정적으로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그 남성에 대해서 여성도 매우 흡족해 한다. 그 남자는 어떤 여성이라도 선망하는 섹시가이였고, 무엇보다 억만장자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대그룹의 촉망받는 경영자였다. 화려한 집, 최고급 명품에 럭셔리한 차가 수십대이고, 헬기도 직접 몰고 다니며 그녀를 태워준다. 언제 어디라도 나타날 수 있는 시간의 통제자, 보통 샐러리맨처럼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부유한 남자다.

▲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사진 =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스틸컷)


그러나 그 남자는 가학적 섹스를 즐기는 이른바 변태였다. 이같은 사실을 여성 주인공이 알아차리고 머뭇거릴 때마다 남자는 물량 공세와 섹스 어필을 한다. 이때마다 여성 주인공은 힘 없이 주저안고 만다. 그러나 남성의 변태적 섹스 행위는 갈수록 도를 넘는다. 물론 전체적인 방향은 그러한 행태가 진전돼 갈수록 여성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물론 선량한 풍속이 있으니 이같은 내용을 작품이 무조건 찬양하지는 않는다. 여성 주인공은 끊임없이 쾌락의 여정 중에 남성 주인공에게 이의 제기를 한다. 하지만 남성 주인공에게서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한다. 여성은 남들과 같은 로맨스를 즐기려고 한다. 아픈 정신적인 외상으로 남성은 변태적 쾌락에 빠져 있기에 여성은 정상의 과정으로 남성을 이끌려 한다. 과연 이 여성은 남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남들과 같이 정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만들까?

생각해볼 점은 이런 것이다. 만약 그 남자가 부자가 아니라면 어떨까. 더구나 얼굴도 섹시가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바람둥이에 변태적 섹스를 즐기는 쾌락 중독자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즉각 초기에 차버렸을 것이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남자 주인공은 애초부터 주인ㅡ노예 계약서와 서브미시버에 대한 대가를 지속적으로 언급한 것일 수 있다.

왜 그럴까. 보통 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자신의 외적 조건을 보고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을 만큼 자신이 스스로 변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을 누가 심어줬는지는 남성 입장에서는 자명하다.

결국 변태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관계성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 관계성은 결국 물적인 토대를 밝히는 환경 속에서 더욱 가능할 뿐이다. 남자주인공을 변태로 만든 유부녀도 결국 부유한 집안에서 소외됐기 때문에 변태가 됐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말이다. 그 바이러스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닫아 버리고 오로지 육체에만 탐닉하는 오락을 즐기게 만든다.

왜 그렇게 변하는 것일까. 그것은 방어기제와 환경적 조건의 결합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섹스는 오락에 불과하도록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자아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결국 변태를 합리화한다. 여기에 부유함을 선망하는 결핍의 심리가 그 창궐의 토양을 제공하는 셈이다.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했으니 말이다.

자본주의 전일체제 만세.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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