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풍문으로 들었소’ ‘전설의 마녀’ 부자男과 혼전임신이 등장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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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12 09:30   수정 2015-03-13 11:56

[김헌식 칼럼] ‘풍문으로 들었소’ ‘전설의 마녀’ 부자男과 혼전임신이 등장하는 이유

▲ 청소년의 임신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사진 = SBS)


2005년 영화 ‘제니, 주노’는 청소년들의 혼전 임신 문제를 다뤘는데, 제니(박민지 분)와 주노(김혜성 분)의 나이는 15살이었다. 중학생들이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서 아이를 갖게 됐고 이에 대처하는 두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각 가족들의 언행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주제의식은 아이를 끝까지 지키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갈등과 장애가 있어야 흥미를 자극하는 법. 당연히 학교와 가족은 반대에 반대를 더하고, 같은 학교 친구들조차 이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오히려 그들은 걸림돌이 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영화의 결말이 해피엔딩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커다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청소년들의 성관계와 임신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지만, 관점과 그것을 통한 결론의 도출에 반대한 것이다.

이러한 소재와 콘셉트 그리고 시놉시스를 가지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만든다면 어떨까? 마치 KBS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의 제왕’이나 ‘시청자 의견’에서처럼 하듯이 말이다.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는 청소년의 임신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고교생 한인상(이준 분)과 서봄(고아성 분)이 입시캠프에서 만나 사랑을 나누고, 혼전임신을 하게 된다. 이는 1회에서 모두 이뤄진 일이다.

영화 ‘제니, 주노’와 다른 점은 남자 주인공 한인상이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그의 아버지는 대형 로펌의 대표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한인상의 부모가 서봄 가족에게 제시한 위자료 액수가 17억원에 이른다. 물론, 한인상 부모의 요구는 위자료를 받고 깨끗하게 정리하라는 것이다. 액수가 너무나 많으니 받으리라 여긴다.

하지만 서봄의 부모는 자존심을 더 내세우고 만다. 이로써 구도는 그들을 둘러싼 학교와 가족의 이야기로 흐르기보다는 부잣집과 가난한 집의 계층적 대결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부잣집 가족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무도한 언행을 자행하는지 보여준다. 물론 그들을 잔뜩 희화화시키는 차원에서 그려진다.

여기까지는 개콘의 ‘시청률의 제왕’ 버전이다. 이제 ‘시청자 의견’ 버전으로 보자. 대체적으로 현실에서는 그런 집안의 아들들은 일반 서민 자녀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서봄과 같은 캐릭터가 더욱 그러한 재벌가 출신의 남학생과 사랑에 급속하게 빠지고 임신과 출산에 이르는 일은 더욱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왜 이런 설정이 등장한 것일까? 그것은 부유층에 대한 조롱을 통한 쾌감을 자극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런 쾌감을 제공할수록 의식 있는 드라마로 평가받기도 한다. 비록 대중적 호응이 없어도 말이다.

MBC 주말드라마 ‘전설의 마녀’에서는 재벌가의 마도진(도상우 분)가 서미오(하연수 분)를 임신시키는데 결국 버리는 짓도 한다. 마도진은 서미오에게 결혼을 약속했고, 그들의 앞날은 분홍빛으로 가득한 듯 싶었다. 그러나 마도진의 어머니 차앵란(전인화 분)은 서미오의 집안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서 그들의 결혼에 반대한다.

여성의 가난이 죄가 된다. 마마보이에 불과했던 어머니의 말에 따라 마도진은 낙태를 강요하지만, 차마 서미오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끝내 서미오를 버리려하는 마도진에 분노하는 서미모, 격분에 칼로 마도진을 위협하던 서미오는 살인 미수 혐의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 드라마는 10대 혼전 임신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런 드라마를 통해서 얻는 교훈이 상류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라고 한다. 상류층들의 허위와 모순을 비판하고 있으니 의식 있는 드라마가 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말 그것만일까? 개콘의 ‘시청자 의견’에 견줘볼 때, 서미오는 마도진이 재벌집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순수하게 사랑했을까. 아닐 가능성이 많다. 마도진은 다른 여자들에게 하듯이 물량 공세를 했으니 말이다.

이런 드라마들이 중요하게 겨냥하는 것은 상류층에 대한 선망 충족이다. 또한 상류층 남성들과의 로맨스와 결혼에 대한 욕망을 대리 충족하는 수준에 머물 뿐이다. 그것의 표면을 상류층과 권력층에 대한 비판이라는 명분으로 감싸고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혼전임신도 재벌가의 남성들과만 해야 하나보다. 10대마저도 말이다. 10대들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이성관계에서 벌어지는 성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더욱 아쉬울 뿐이다. 대중통속물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그럴듯하게 위장하는 일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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