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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달러 부채만기' 돌아온다…다음 금융위기 발생국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19-09-09 09:41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다음 위기는
아르헨티나 디폴트 등 위기조짐 감지

올해 9월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꼭 10년이 됐다. 1980년대 후반 선진국 주식시장(블랙 먼데이), 1990년대 후반 신흥국 통화시장(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후반 선진국 주택시장(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2010년대 후반에는 신흥국 상품시장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목돼 왔다.
작년 3월 이후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에 이어 이란, 터키 등 중동 국가에서 잇달아 외자 이탈에 시달리면서 재현되기 시작했던 금융위기 조짐이 올해 들어서도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마침내 올해 여름 휴가철이 끝나자마자 아르헨티나가 디폴트 국면에 빠졌다. 모두 상품가격에 민감한 신흥국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10년 동안 늘어난 달러 부채 만기가 작년부터 시작돼 올해부터 집중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국제금융공사(IIF)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따르면 작년에 2천440억 달러가 돌아온 달러 부채 만기가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평균 4천억 달러 이상이 돌아올 것으로 발표했다.
신흥국의 미숙한 정책대응도 문제다. 외자 이탈을 수반한 달러 부채 상환에 가장 적절한 대응책은 외환보유 확충과 외자조달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작년 3월 이후 금융위기 조짐이 발생하거나 발생한 대부분 신흥국은 금리인상으로 대처해 왔다. 아르헨티나는 정책(기준)금리를 60%까지 올렸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외면한 대증적인 금리인상은 실물경기 침체와 추가 외자이탈 간 ‘악순환 고리(vicious cycle)’를 형성시킨다. 1990년대 후반 태국,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일부 신흥국은 이런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왔다. 앞으로 예의주시해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IMF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이 활용하는 외환상환계수로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을 점검해보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터키, 파키스탄, 이란,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필리핀,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은 그 다음 위험국이다.
금융위기 발생 고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중남미 국가는 외채위기로 학습효과가 있는데다 미국과의 관계(베네수엘라 제외)도 비교적 괜찮다. 하지만 이란, 터키 등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거나 협조하지 않는 국가와, 중국에 편향적이거나 일대일로 계획에 과도하게 참여하는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이슬람 국가는 IMF의 구제금융 수혈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IMF의 최대 의결권을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휴가철이 끝나자마자 대내외 금융시장에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차기 금융위기는 어느 국가에서 발생할 것인가’는 이런 각도에서 따져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UN의 수출통제품목인 북한의 석탄수입이 공식화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흐트러지고 있는 한국은 과연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신흥국 금융위기가 지속되면서 한국도 지난 7월에 어렵게 금리를 내렸지만 추가 인하 방안을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추가 금리인하에 신중하자는 시각의 가장 큰 이유는 ‘외자이탈 방지’다. 한국과 미국 간 금리가 0.75% 포인트(p) 역전된 상황에서 추가로 금리를 내리면 올해 안에 최대 1%p까지 벌어져 대규모 외자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가능한 금리를 빨리 내려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우리 경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2년 이상 추진해 왔지만 오히려 중산층이 무너진 뒤 더 두터워진 하위계층일수록 가계부채 부담이 크다. 이 상황에서 금리를 신속하게 내리지 않을 경우 외환위기 때보다 거리로 내몰리는 신용 불량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최근처럼 통화정책 목표와 수단 간 불일치를 보일 때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책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는 안과, 다른 하나는 정책목표와 수단을 동일(예를 들어 정책목표가 3개라면 수단도 3개 동원)하게 가져가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다. 최선책은 전자, 차선책은 후자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목표에 충실하는 것이다. 명시 여부와 관계없이 각국 중앙은행 목표는 ‘물가안정’과 ‘고용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물가가 지속적으로 안정됨에 따라 고용창출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경제성장·물가·고용·국제수지 등 4대 거시경제 분야 가운데 우리 경제의 경우 고용 분야가 가장 안 좋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신경을 쓰는 청년 일자리는 최악의 상황이다. 엄격한 실업률 개념을 적용하는 국제노동기구(ILO) 방식으로 재산출된 청년 실업률은 20% 육박한다. 스페인과 맞먹는 수준이다.

외자이탈 방지를 위해 추가 금리인하에 신중하자는 시각도 이 점을 따져봐야 한다. 신흥국 금융위기 사례를 보면 외자이탈 방자의 최선책은 ‘금리 차 조정’보다 ‘외환보유를 충분히 확보하는 방안’이다.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외환보유액이 10억 달러 증가하면 신흥국이 위기를 겪을 확률이 평균 50bp(1bp=0.01%p)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적정 외환보유액을 추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화지급 수요를 예상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 접근법’, 외환보유액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액 수요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 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돼 왔다.
세 방안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이 방식은 외환보유 동기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방식 △그린스펀·기도티 방식 △캡티윤 방식으로 세분된다. 우리 외환보유액은 ‘1선(직접 보유)’과 ‘2선(통화스와프 등 간접 보유)’ 자금을 합하면 5천억 달러가 넘는다. 가장 넓은 갭티윤 방식으로 추정된 적정외환보유액은 3천700억 달러 내외다.
최근 5년 동안 신흥국은 세 차례에 걸쳐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1차 2013년, 2차 2015년, 3차 2018년)’을 겪었다. 테이퍼 텐트럼은 큰 경기를 앞두고 운동선수가 겪는 심리적인 불안감을 표현하는 의학 용어로, Fed 금리인상 등에 따라 신흥국이 겪는 금융시장 불안을 의미한다. ‘긴축 발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외자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인상을 추진한 신흥국일수록 경기침체 간 ‘악순환(vicious cycle·외자이탈→금리인상→실물경기 침체→추가 외자이탈) 고리’가 형성된 점이다. 아르헨티나·터키가 대표적 사례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금리를 60% 수준까지 올렸지만 계속된 외자이탈 부담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수혈했다.
우리처럼 외자이탈에 따른 방어능력이 갖춘 여건에서 금리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고용창출에 최우선순위를 둬 추진하고 있는 재정정책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스텝과 라인 간 갈등이 경기에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까지 엇박자가 날 경우 우리 경제는 ‘총체적 난국’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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