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제품의 순수함을 쫓다…시노펙스 동탄공장 편 [배성재의 Fact-tory-2]

입력 2019-10-25 11:09   수정 2021-02-25 15:02

    [Fact-tory ②] 시노펙스 동탄공장 편
    한국거래소 직원들은 상장 기업을 평가할 때마다 현장답사를 나갑니다. 기업의 본령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라면, 공장은 그 근간이기 때문이죠.
    공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배성재의 Fact-tory는 공장을 직접 다녀보며 기업들의 기술과 경쟁력을 살펴봅니다. 공장(Factory) 속 뚜렷한 사실(Fact)과 땀 섞인 이야기(Story)를 동시에 전합니다.
    -


    [박영선과 최태원의 설전]

    지난 7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설전을 기억하시는지요. 박 장관은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데, 대기업이 사주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이에 최 회장은 "품질에 문제가 있다"며 반박했습니다. 이에 박 장관은 "20년 전부터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상생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며 맞불을 놨었지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이행한 지 보름 째였습니다.

    수출규제 조치가 100일이 넘어가는 지금, 둘의 논쟁은 박 장관의 판정승으로 마무리 된듯 합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소재·부품·장비`는 한국 정부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향후 3년간 핵심품목 R&D에 5조원을 투자하는 정책도 발표됐죠. 중소기업들이 갖고 있는 기술들을 더 키워내고, 대기업들로부터 승인을 받도록 이끄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최 회장의 SK하이닉스도 액체 불화수소를 국산화 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Fact-tory가 두 번째로 찾아간 공장, 시노펙스 동탄공장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술을 내세운 정치적인 입씨름이 아닌 중소기업들의 실제 상황에 대해 말이죠. 시노펙스는 전자부품과 필터 사업을 영위 중인 중견기업인데요. 휴대폰의 핵심 부품인 `FPCB(연성회로기판)`, 특정 성분을 걸러내는 `필터`가 주요 제품입니다. 제품이 제품인 만큼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많은 영향을 받은 기업이기도 합니다.




    [Fact-]

    ·위치: 경기도 화성시 능동
    ·대지 면적: 1,334 평 (약 4,410㎡)
    ·인원: 120명 (회사 전체: 3,000여명)
    ·생산 제품: 돔 스위치, 전장부품 등


    ◎ 첫 인상 - 1층만 쓰는 공장?

    동탄사업장은 4층 규모의 긴 직사각형 건물입니다. 공장이라기 보다는 아파트 상가(?)와 같은 외형이었습니다. 층별 안내판을 보니 이게 왠 걸, 시노펙스라는 글자는 1층에만 있고 2층부터 4층까진 다른 회사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Fact-tory 칼럼은 2회 만에 망하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시노펙스 관계자께서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관계자께선 동탄공장이 이제 거의 R&D 기능 만이 남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때 휴대폰용 전자부품(FPCB 등)을 제조해서 약 3천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던 곳임을 감안하면 생산 능력은 거의 사라진 셈이죠. 이젠 생산 시설의 대부분은 삼성전자를 따라 베트남 공장으로 이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방진실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 층별로 부분 임대를 내줬다고 하는군요.

    그렇다고 시노펙스 동탄공장이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동차에 들어갈 전장부품과 최근 국내 최초로 독자개발에 성공한 `돔 스위치`가 각각 1층과 2층에서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 제품 - `전장부품`과 `돔 스위치`

    시노펙스 동탄공장 1층에서는 전장부품 생산이 한창이었습니다. 자동차가 점차 전자기기화 되어가면서 휴대폰에 들어가던 시노펙스의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한 거죠. 손가락으로 터치하거나 압력을 가하면 반응하는 부품을 생산중이었습니다.

    올해 2월에 개발된 시노펙스의 `차량용 터치모듈`은 이번 달 초에 현대기아차로부터 SQ(Supplier Quality)인증을 받았습니다. 12월부터 본격적으로 현대기아차의 고급브랜드들에 납품, 탑재될 예정이죠.

    동탄공장 2층에서 생산되는 `돔 스위치`는 달리 말해 스마트폰의 전원 버튼과 볼륨 버튼입니다. 돔 스위치의 크기는 쌀알만 한데요. 돔 스위치의 복원력을 위해 돔(Dome)을 세 개까지 얹는다고 하는군요.

    시노펙스가 생산한 돔 스위치는 지난달 삼성전자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일본 3개사(파나소닉·시티즌·알프스)가 독점해오던 시장에 처음으로 한국 업체가 발을 디딘 것이죠. 전세계 시장규모는 약 4천억원으로 작지만, 소요 갯수는 120억개(!)로 추정되는 없어선 안 될 시장입니다.



    ◎ 제품 분석 - 모든 것의 기반, `FPCB`

    FPCB. 앞서 나온 이 용어가 다소 생소하셨을 텐데요. FPCB란 `Flexible Printed Circuit Board`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연성회로기판`입니다. 보통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열어보면 있는 녹색판을 회로기판(PCB)이라고 부르는데, 이 회로기판을 유연하게(Flexible) 만들어놓은 것이 바로 FPCB입니다.

    시노펙스 매출의 90% 이상이 바로 이 FPCB와 모듈(PBA)들입니다. 돔 스위치와 전장부품들도 바로 이 FPCB와 그 모듈에 대한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나온 제품들이죠.

    시노펙스의 돔 스위치와 전장부품의 품질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승인을 취득했다는 것은 세계 어느 회사에 가든 제품의 스펙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삼성전자에 납품할 돔 스위치의 경우엔 반복 클릭만 50만 회 이상이 요구된다고 합니다. 시노펙스의 전장부품도 고급 차종에만 적용될 기능들이죠.



    [-Story]

    ◎ 필터 연구소가 들어설 공장이다

    전자제품만 잔뜩 있을 것 같은 동탄공장이지만, 마지막 3층에 반전이 숨어 있었습니다. 3층에선 시노펙스의 미래 먹거리인 필터(멤브레인) 연구소 공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이죠. 시노펙스는 지난 달에 LG화학에서 멤브레인 생산설비와 상표권을 사들였습니다. 대기업 속 사업부 하나를 통째로 인수할 만큼 기대를 걸고 있는 셈이죠. 공장에서 만난 진명준 시노펙스 부사장도 "2년 정도가 지나면 FPCB보다는 필터 쪽의 매출 전망이 더 유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맞물린 사업도 바로 이 필터 분야였다고 하네요. 일본의 3개 수출규제 품목 중 하나였던 불산을 바로 이 필터 기술을 통해 재활용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산은 반도체 웨이퍼 세정액으로 쓰이는 물질인데, 시노펙스 제품의 필터링을 거치면 불산 폐액 중 약 70%를 다시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시노펙스는 지난 달부터는 LG디스플레이에 멤브레인 공급을 시작할 정도로 고사양 필터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 필터 제품들이 각국에서 무기로 전환이 가능한 `전략 물자`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필터를 통해 순수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반대로 필터를 통해 유해 물질을 추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일본도 필터 제품들을 전략 물자로 구분해놨는데요. 한일관계 국면에 따라 성능 좋은 일본산 필터의 수급이 막힐 수도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필터는 국산화와 동시에 성능 개발이 시급한 품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시노펙스의 필터 사업은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정책에 포함되어 다양한 국산화 과제를 개발 중에 있습니다.



    ◎ 다양한 기술 국산화가 진행 중이다

    시노펙스가 국산화를 개발 중인 제품으로는 수소 연료전지 강화복합막, 반도체 화학공정용 필터, 바이오시밀러 필터 등이 있었는데요. 이중에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수소 연료전지 강화복합막입니다. 강화복합막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수소경제`를 이끌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죠.

    강화복합막은 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스텍` 안에 들어갑니다. 스텍은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와 물을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킬 얇고 정교한 강화복합막이 필요합니다. 현재까지 이 필름은 미국의 고어(Gore)사 만든 제품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시장인데요. 실제로 현대차의 수소전기차인 넥쏘의 스텍에도 고어의 강화복합막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시노펙스가 이 수소 연료전지 강화복합막의 국산화에 성공한다면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스텍 하나에 들어가는 강화막 필름만 400여 장에 달한다고 하니 시장성은 확보한 셈이죠. 글로벌 시장도 5년 뒤 1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 박영선도, 최태원도 틀렸다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산화 개발 제품들을 설명하던 시노펙스 관계자들은 이 모든 과제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당장의 수익이 없는 기술은 자연히 개발하지 않게 된다는 거죠. 그렇다고 시장 논리를 거슬러 대기업이 중소기업들의 기술을 사주거나, 응원(?)하거나, 함께 했어야 했던 문제도 아닙니다. 원청은 원청 나름대로 품질과 수익을 위한 선택을 했어야 하니까요. 박영선 장관의 말대로 대기업의 잘못도 아니고, 최태원 회장의 말대로 중소기업의 기술이 부족한 것은 더더욱 아닌 셈입니다.

    시노펙스의 사례로 볼 때, 기술 개발이란 시장 논리 위에 정부의 정책이 더해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 듯 합니다.(단, 원청과 하청 간의 `갑질` 문제는 예외지만, 여기선 제쳐두겠습니다.) 금전적으로 기술 개발을 돕고, 기술을 팔 곳을 찾고, 기술 보증을 서주는 일은 정부 외엔 할 곳이 없으니까요. 기술 개발은 이슈나 정권을 따라 뜨고 지는 과제가 아닌 은은하고 꾸준한 과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노펙스는 30여년 전 포장지 사업으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포장지에서 시작된 사업은 FPCB를 거쳐 이제 첨단 산업인 필터사업으로 확장 중입니다. 동탄공장에서 느낀 것은 시노펙스, 나아가 모든 중소기업들이 기술력으로 경쟁을 이기고 `생존`해온, 풀뿌리와 같은 곳이라는 겁니다. 개별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과, 기술에 초점을 둔 적절한 지원이 합쳐진다면 `기술 강국`은 다른 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듯 합니다. 기술(국산화)과 제품(멤브레인/필터)의 순수함을 쫓는 공장, 시노펙스 동탄공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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