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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률…‘국내총생산(GDP)’ 대신 '총생산(GO)'로 바뀌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2-17 09:16  


1990년대 이후 특정국의 경제상황을 가장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중심지표인 ‘GDP(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가 갈수록 한계를 노출함에 따라 새로운 소득추계 지표 개발과제가 2020년 들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GDP는 소유에 관계없이 자국 내에 있는 노동과 자본 등 모든 생산요소를 결합하여 만들어낸 최종 생산물의 합인 생산활동지표를 말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인 측면에서 각국 간 국경이 무너지면서 지리적 경계선에 따라 구분되는 생산활동지표는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각종 소득지표는 특정국에 속한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기간 동안 새로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금액으로 평가해 합산한 것으로 경제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거시경제지표다. 포괄범위 등에 따라 국민총생산(GNP), 국내총생산(GDP), 국민순소득(NNI), 국민처분가능소득(NDI), 국민소득(NI), 개인가처분소득(PDI) 등으로 구분된다.
GDP가 처음부터 특정국의 경제를 판단하는 절대지표는 아니었다. 1940년대 들어서야 GDP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정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태동으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1800년대부터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이 논의가 구체화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로, 경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점검하고 부양책을 쓰기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급선무했기 때문이다.
1937년 미국에서 GDP의 원조격인 국민소득 통계가 처음 나왔으나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처음으로 개인과 기업, 정부의 생산 활동을 더해 특정국의 경제규모를 판단하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 이후 GDP가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국내생산 규모를 토대로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가능했고, 이를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시경제 분석의 초점이 소득 측면에 있었기 때문에 GNP를 경제성장의 중심지표로 삼았으나 1990년대 들어 글로벌화가 급격히 진전되면서 GDP의 유용성이 더 높아졌다. 1990년대 들어 GDP가 GNP를 대체하기 시작한 건 글로벌화 진전과 다국적 기업 때문으로 국제자본 이동과 기술 이전이 활발해지다 보니 "우리 국민이 얼마나 벌었나”를 보는 것보다“우리 땅에서 얼마나 물건을 만들었나”를 보는 게 더 유용했기 때문이다.
각국도 경제성장의 중심지표를 GDP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게 됐다. 유럽의 OECD 회원국들은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은 1991년, 독일은 1992년, 일본은 1993년부터 GDP를 경제성장의 중심지표로 삼았다. 한국은 이 같은 국제 추세에 맞추어 1995년부터 경제성장의 중심지표를 GNP에서 GDP로 변경해 지금까지 사용해 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 경제의 흐름을 보면 GDP통계가 완전하게 개발돼 널리 이용된 이후 경제의 호황과 불황의 폭이 훨씬 작아졌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GDP가 가장 크게 추락한 것은 1932년의 13.1% 감소였으나 GDP 도입 이후 50년 중 가장 큰 폭의 하락은 2009년의 2.4% 감소에 불과했다. GDP 통계가 개발돼 경제정책에 이용된 이래 과거와 같은 큰 폭의 경기순환은 사라졌으며 예금대량인출(bank run), 금융공황, 깊고 장기적인 경기침체, 장기실업 등도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 상무부는 GDP 통계라는 매우 유용한 경제지표를 장기간 제공함으로써 미국경제의 안정화에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1999년 12월 당시 미국 상무부 장관이었던 윌리엄 댈리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과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NEC) 의장이었던 마틴 베일리 등과 함께 GDP 통계 편제를 20세기 경제 분야에서 최대의 업적으로 평가했다. 더 이상의 거시경제지표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특정국의 경제상황을 파악하는데 핵심지표로 자리 잡은 후에도 GDP에 대한 비판은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이른바 ‘삶의 질’ 논란으로, “국민의 행복은 GDP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지표가 많이 개발됐다. 대표적으로 1972년에는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부탄 국왕은 ‘GNH(gross national happiness·국민 행복)’란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와 “GDP가 절대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해 반향이 컸었다.
그 후 이 논란이 지속돼 오다가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국민행복 차원에서 GDP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조셉 스티글리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등 석학들을 초빙해 결성한 ‘스티글리츠 위원회’가 대표적이다. “GDP가 올라가도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의 통계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삶의 질을 측정하는 새 지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점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경제지표 이외에 행복 GDP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논란의 배경엔 “GDP가 생산 과정에서 불거지는 부작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깔려 있다. 경제가 성장하다 보면 환경파괴, 교통체증, 범죄율 증가, 소득 불평등, 테러 등과 같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만 GDP는 이런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유럽연합(EU)의 일부 회원국을 중심으로 불법적인 경제활동이나 지하경제를 반영시키려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영국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성매매와 마약 거래를 GDP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분야에 가장 비중 높은 이탈리아도 영국보다 한 달 앞서 “약물, 성매매, 밀수 등을 GDP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2014년 4월부터 미국 상무부가 처음으로 GO(총생산·gross output)를 분기별로 발표하기 시작한 점이다. GDP는 최종생산재만 계산하다 보니 중간재가 오가는 기업 간 거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소비의 비중이 너무 높아 경제정책에 혼선을 준다는 판단에서다. 중간재 생산까지 모두 합산하는 GO는 기업가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비보다 저축과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같은 경제활동을 가늠하는 잣대인 GDP와 GO의 차이를 산에서 채취한 생나무로 가구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알아보자. 가구 제품을 만들려면 널빤지가 필요하고, 널빤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나무, 통나무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나무, 생나무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산속에 나무가 있어야 한다. 이때 생나무와 통나무, 그리고 널빤지는 최종적으로 가구 제품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중간재인 셈인데, GDP는 최종 소비재인 가구 제품의 가격만 따지지만 GO를 계산할 땐 생나무, 통나무, 널빤지, 가구 제품 가격을 모두 더해 산출한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일한 생산 과정인데도 GDP로는 350만원인데 반해 GO로는 950만원으로 중간 단계가 많으면 많을수록 GDP와 GO와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GO는 ‘만드는 경제`, 즉 경제의 공급측면을 잘 보여주는 잣대로 평가되고 있다.
GO는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거래(B2C) 뿐만 아니라 기업 간 거래(B2B)를 반영할 수 있고, 각 중간재 생산 단계에서 물가와 고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따져볼 수 있다. 실제로 GO를 산출해 보면 전체 경제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GDP보다 훨씬 적게 나온다. 미국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한 비중은 70% 내외인데 GO기준으로는 그 비중이 40% 밑으로 떨어지고 기업의 투자비중이 50%가 넘는 걸로 나온다.
2020년대 들어 GDP가 GO를 대체해 나가고, 갈수록 경기순환의 진폭과 주기가 짧아져 예측환경이 달라지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경기판단과 예측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 이후처럼 경기판단과 예측이 어려워질수록 각국과 예측기관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경기판단 방안을 고안해 내기 위해 열을 열리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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