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석 "닫힌 도시, 집값에 매몰된 사회 이끈다" [전효성의 시크릿 부동산]

전효성 기자

입력 2020-05-30 14:32   수정 2020-07-02 12:58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인터뷰
박 위원장 '공공과 맞닿아 있는 거주공간' 강조
"아파트 단지로 나뉜 공간, 이기적 사회 만들어"
"닫힌 건축, 부동산 가치에 매몰된 사회 조장"
`전효성의 시크릿 부동산`은 한국경제TV 전효성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된 코너입니다. 짧은 분량의 방송기사에서 미처 담지 못한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삶의 공간인 `건축`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을 저마다의 모습으로 빚어간다. 최근 대통령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에 오른 박인석 위원장은 "아파트 단지와 학교로 대표되는 `닫힌 건축`이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폐쇄적 거주환경은 개인을 집값에만 몰두하도록 이끈다"며 "건강한 사회를 위해선 공공성이 강화된 건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인석 6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좌측). 영상취재=김성오.
Q. 최근 출범한 6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소감을 전한다면.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자문기구다. 집행권한이 없다. 그래서 합리적인 의견, 사회 여론을 반영한 의견, 건축 여론을 하나로 모아서 제시하지 않으면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여러 의견을 모아 자문하고 그것이 정책에 받아들여지게 해야 한다. 그래서 부담이 큰 자리다. 5기 위원장이었던 승효상 위원장은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해주셨다. 건축가로서 명망과 자산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서 능력을 보여줬다. `못지않은 역할과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6기 임기를 시작하고 있다."

*박인석 위원장은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정책조정 분과위원장으로 참여했다.

Q. 이번 슬로건이 `좋은 건축, 열린 도시`다

"GDP 3만 달러 시대, 4차 산업혁명시대 같은 미래를 얘기한다. 이를 달성할 힘은 어디에서 올까? 시민 개개인의 <U>`창발성`</U>에서 온다. 창발성은 과외공부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다른 능력·개성·시각을 가진 개인들이 활발히 소통하고 교류해야 새로운 것(창발성)이 생겨난다. 흔히 말하는 선진국은 그런 과정이 원활하다. 이견을 조정하고, 수렴하고, 허용하는 힘이다. 건축은 시민 개개인의 삶을 담고 있다. 거주 공간은 그들의 삶을 빚는다. 건축이 시민 개개인의 창발성을 촉진해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과 맞닿게 해주는 방향으로 도시공간과 건축이 조성돼야 한다. 그게 좋은 건축이고 열린 도시다."

*창발성이란?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면 그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특성이 출현하는 현상.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된다`는 말이 창발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Q. 이해가 쉽지 않다. 열린 도시에 반대되는 `닫힌 도시`부터 짚어보자.

"닫힌 도시의 대표 주자가 <U>`아파트 단지`</U>와 <U>`학교`</U>다. 울타리 친 채 주변과 단절돼있다. 아파트는 전국 3만개의 `단지`로 이뤄져있다. 국내 주택의 61%가 아파트다. 즉,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3만개의 `소집단`으로 살고있단 뜻이다. 외부와 섞이지 않은 채 동떨어져 있는 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시는 건축물-공공공간이 만나도록 만들어져 왔다. 각자의 집이 공공공간인 `골목`과 맞닿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대의 아파트 단지와 학교만 안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지어지는 건축물이 말이다. 대표적 `닫힌 건축`이다.

<U>`관청사`</U>도 비슷하다. 담장치고 앞에는 잔디밭 깔고 뒤로 물러나 앉아있는 형태. 닫힌 건축, 권위적인 건축이다. 공공과 접속할 수 없는 건축이다. 국회가 대표적이다. 그런 건축 속에서 국회의원의 생활이 공공과 부대낄 수 있을까? 청와대가 광화문으로 나오겠다고 한 것도 이런 `닫힌 건축을 벗어나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Q. 닫힌 건축이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단 뜻인가.

"다가구·다세대 주택은 주변과 부대끼고 산다. 골목과 닿아있다. 이는 생활에서 큰 차이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다세대 주택가에서 가로등이 안 들어오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가로등을 고쳐달라고 민원을 넣을 거다. 어디에 민원을 넣을까? 가장 가까운 `구청`이다. `구청에서 왜 가로등을 안 바꿔주냐` 이런 민원이다. 나중엔 `우리 동네에는 왜 놀이터가 없어?` 이런 식으로 발전된다. 골목과 맞닿은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만족, 불만족, 희망이 공공과 직접 연결된다. 더 나아가 구청장 선거에도 반영이 될 거다. 시민의 일상이 공공의 영역으로 투사되는 거다.

아파트 단지에서 가로등이 고장난 일이 벌어졌다 생각해보자. 이들도 똑같이 투덜댈거다. 그러나 민원을 구청에 내지 않는다. 단지 안은 사유지기 때문에 관리소장에게 민원을 넣어야 한다. 내가 돈을 낸 관리사무소에 불만을 제기한다. 일상생활에서 나와 관련된 일이 내가 처리할 일로 환원되는 거다. 단지 안에서의 일은 아파트 단지 300세대 만의 일, 400세대 만의 일이 된다.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나는 개인 생활은 공공과 사회로 퍼지지 않는다. 삶과 밀접하게 연관될 구청장 선거에도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60%가 그런 곳에서 산다. 단지 바깥의 공공공간이 어떻게 되든 나랑 상관이 없다. 그 속에서 희망은 <U>`빨리 저축해서 더 크고 좋은 단지로 가는 것`</U>이 된다. 사회가 좋아지는 것과 내 삶이 좋아지는 것이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진다. 거주 공간에서 그런 말초적인 경험이 쌓이는 거다."

*박인석 위원장은 `열린 도시`를 시민 개개인의 일상생활이 공공과 서로 소통하고 접속할 수 있는 도시로 정의했다.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영상취재=김성오.
Q. 집이 부동산 가치로만 평가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장애인 학교, 노인 시설, 고아원 등이 들어선다면 반대한다는 플랜카드가 아파트 단지에 걸리곤 한다. `집값 떨어진다`는 우려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지는데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초연할 수 있다면 그건 위선이다. 하지만 다른 가치도 분명히 있다. 공공의 가치, 인간에 대한 가치, 타인에 대한 존중 같은 것들 말이다. 인간은 다양한 가치 속에서 균형을 잡고 산다. 재산가치를 무시하란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아파트 단지가 개인으로 하여금 `재산가치에만 몰두하도록 이끈다`는 점이다. 거주 공간이 인간을 자연스럽게 재산가치에만 집중하도록 이끄는 거다. 주택, 아파트, 집의 형태가 문제가 아니다. 울타리를 치고 단지로 묶인 건축이 문제인 거다."

Q. 공간이 인간을 빚어간다?

"단독주택지에 살아가면 매일 옆집의 풍경을 본다. 화분을 어떻게 걸었는지, 빨래를 널었는지, 창문이 깨졌는지 하루 종일 눈에 띈다. 집의 모양부터 꾸민 모습까지 전부 다를 것이다. 나와 다른 삶,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나와 함께 살고 있구나, 내가 다양한 사람 속에서 살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준다. 공간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나를 느끼게 해준다. 도시의 다양성이다.

아파트 단지는 집집마다 똑같다. 현관에 적힌 번호만 다를 뿐이다. 전부 다른 사람이 살지만 집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각자의 개성을 표출할 방법이 사라진 공간에서 사는 거다. 그러다보니 `나와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내가 사는구나`는 것을 매순간 느끼지 못한다. 머리속으로는 나와 다른 사람이란 걸 알지만 똑같은 집이 늘어서 있으니 즉각적으로 `다름`을 느끼지 못한다. 은연 중에 시민사회, 국가, 공공단체, 함께 지켜야할 가치에 대해 무심해진다. 자기도 모르게 무심하도록 만드는 거다.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이.

`우리는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은 우리를 만든다`는 처칠의 말이 있다. 현 시대의 아파트 단지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본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더 좋은 단지로 이사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재산가치가 다른 가치를 압도하게 만드는 역할을 `닫힌 공간`이 하고 있다. 굉장히 무서운 일이라고 느낀다. 닫힌 공간으로 채워진 닫힌 도시는 개인의 이익만을 쫓는 사회로 이끌 것이다."

Q. 3기 신도시도 재산 가치에서 출발했다. 서울 집값 잡겠다고 내놓은 정책이다.

"1, 2기 신도시는 모두 `닫힌 도시`로 조성됐다. 아파트 단지마다 울타리 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개발해 국민을 각각의 단지로 소집단화 시킬 것인가? 언제까지 단지 옆에 복지 시설이 들어선다고 하면 반대 플랜카드 걸게 만드는 결사체로 만들 것인가? 아파트 단지로 묶인 우리 사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결사체가 됐다. 부동산 가치만 따지는 국민이 되도록 내몬 것이다. 도시 공간과 개발 방식이.

시민들의 생활 공간이 공공공간과 직접적으로 접속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단지는 안된다. 단지란 말 자체가 주변과의 격리를 전제하는 단어다. <U>`주거단지`</U>란 말도 넌센스다. 도시의 80%는 주거공간인데 주거단지 바깥에는 주거공간이 없다는 뜻인가? 그런 차원에서 3기 신도시는 단지가 아니라 공공공간과 함께 소통하는 집이 들어서야 한다. 그 형태가 아파트라도 상관없다. 형태가 단독주택이라도 울타리 치고 들어가 있으면 똑같은 문제가 생긴다.

3기 신도시는 공공성이 강화돼야 한다. 시민 개개인의 일상이 공공의 가치와 직결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도시, 사회의 발전이 내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는 도시로 조성돼야 한다."

▶관련기사: "3기 신도시, 공공성 대폭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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