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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의 저주’ vs ‘골디락스’…기술주와 성장주 운명 가른다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9-28 09:10  



한 나라의 경제 개발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된지 꽤 오래됐다. 독일, 일본, 한국 등과 같은 전쟁 폐허국과 인도, 브라질 등과 같은 후발 개도국들은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을 채택했다. 이들 국가가 산업정책을 채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든 저소득 등으로 국내자본 축적이 불충분하면 특정산업으로 생산요소를 집중시켜 경제발전 단계를 압축시키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경제발전 초기에 산업정책의 대상이 되는 것은 외부경제 효과가 큰 산업이다.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서는 산업정책의 대상이 된 중화학과 같은 전략산업 육성 때 알버트 허쉬만 교수의 ‘전후방 연관효과(forward & backward linkage effect)’가 큰 산업을 선정한 것이 다른 국가와 다른 점이다.
산업정책의 성공 가능성은 공급능력이 확충될 시점에 때맞춰 수요가 얼마나 창출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나 성공한 국가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시기를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한정한다면 산업정책을 통해 압축성장에 성공한 국가로는 전쟁 폐허국으로는 독일과 일본, 후발 개도국 중에서는 한국이 꼽히고 있다.
초기 산업정책이 성공해 어느 정도 경제발전 단계에 올랐어도 그 이후 지속 성장 산업을 마련치 못해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져 경제발전 단계가 후퇴한 국가로는 아르헨티나와 필리핀 등으로 이들 국가들은 각종 위기에 시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단계에서 국제 분업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산업정책에서 글로벌 정책으로 이전한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내수에 비해 생산능력 확대속도가 훨씬 빨라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함으로써 글로벌 불균형 문제가 발생한다. 각국 간 경상수지 불균형은 환율조정을 통해 일정부분 해소돼야 하나 신흥국들이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자국통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불균형이 더욱 심화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산업정책이 제조업을 다시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뀐 점이다. 가장 큰 요인은 청년층 실업이 인내할 수 있는 임계수준을 넘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 국가의 청년층 실업률은 전체 실업율의 두 배를 훨씬 웃돌았다. 가장 심한 유로랜드의 청년 실업률은 25%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후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각국의 산업정책도 제조업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주력산업이었던 IT 업종은 네트워크만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 업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일자리,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청년층 고용창출 없는 경기회복`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제조업은 생산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IT산업이 주도할 때와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더 투입해야 한다. 과거 제조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할 때에는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 지표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가 발생되지 않고 양극화도 심해지지 않는다.
각국이 추진하는 제조업 중시정책도 처한 여건에 따라 독특했다. 미국은 세제지원을 통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제조업 재생(refresh) 운동’을 전개했다. 일본은 엔저를 통해 ‘제조 수출업의 부활(recovery)`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독일은 계속해서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는 `제조업 고수(master)제’, 중국은 잃은 활력을 다시 불러 넣는 ’제조업 재충전(remineralization) 대책‘을 추진했다.
특히 제조업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미국의 산업정책이 주목받았다.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글로벌화의 일환으로 해외진출을 권장했던 제조업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 정책이 예상 밖에 효과가 크자 오바마 정부는 집권 2기에 들어서는 ‘일자리 자석정책’으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 오바마 지우기로 일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도 이 정책은 더 강화해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직후에는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도 자급자족 성격이 강화되는 추세에 맞춰 리쇼어링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각국의 제조업 중시정책은 글로벌 증시 입장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IT 업종은 라이프 사이클이 매우 짧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주기가 짧아지고 ‘경기순응성’이 심해진다. 경기 순응성이란 경기가 과열일 때 정점이 더 올라가고 침체될 때 저점이 더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변동성이 심해진다는 의미다.
특정국 경기순환에서 경기순응성이 나타날 때에는 전망기관들의 예측력이 떨어지고 경제정책을 비롯해 각종 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워진다. 증시에서도 IT 주가가 급등하면 곧바로 떨어지는 ‘지브리의 저주’에 걸린다. 지브리의 저주란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매이션만 방영되면 시장이 안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투자자도 ‘냄비 속성’이 빨리 자리 잡는다.
IT 업종과 대조적으로 제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어느 국면이든 진입하기가 어렵지만 일단 진입하면 오래간다. 주기가 길어지고 진폭이 축소되는 `안정화‘ 기능이 강화된다. 주가도 고개를 들면 그 기간이 오래가는 `랠리`가 형성된다. 제조업 부활정책 추진과 함께 월가에서 고개를 들었던 ’제조업 르네상스발 골디락스 증시‘에 대한 기대가 실현돼 전후 최장의 랠리를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코로나 사태 직후 한순간에 급락했던 각국의 제조업 경기가 지난 5월을 저점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세계 제조업 경기를 알 수 있는 PMI가 50 이상으로 올라갔다. 이 지수가 ‘50’선 위로 올가간다는 것은 세계 경기가 회복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 사태 이후 붕괴됐던 세계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마저 복구된다면 세계 경제가 성장궤도에 복귀할 가능성도 높다.
GVC란 ‘기업 간 무역(Inter Firm Trade)’와 ‘기업 내 무역(Intra Firm Trade)’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코로나 직후 GVC 약화 현상은 세계 경제 앞날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1990년대 이후 세계교역증가율과 GVC 간 상관 계수를 추정해 보면 0.85에 이를 만큼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처럼 제조업 경기를 살릴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변수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월가의 이색 대결인 ‘지브리의 저주’와 ‘골디락스’ 간 논쟁의 운명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 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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