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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락하는 원·달러 환율…1년 후 1,100원도 붕괴된다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10-19 10:44   수정 2020-10-19 10:4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일부에서는 1,500원) 이상 급등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난달 이후에는 비교적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양대 변수에 큰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내년 사업계획에 골몰하고 있는 기업과 달러 투자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환율 움직임에 영향을 준 변수 중에 하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격 사임이다. 직접적인 사유는 만성적인 궤양성 대장염이라 하지만 취임 이후 △사학 비리 △북한 대응 실패 △한국 수출통제 패배 △소비세 인상 실수 △도쿄 올림픽 고집에 따른 코로나19 대처 미숙 등이 겹치면서 국민의 지지도가 급락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포스트 아베 시대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아베노믹스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던 것은 미국 버클리대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지적한 ‘엔고의 저주’ 때문이다. 특정국 경기가 침체되면 통화 가치가 약세가 돼야 하지만 일본은 강세가 돼 침체의 골이 더 깊어졌다.
‘경기 실상과 통화 가치가 따로 노는 악순환 국면을 차단하는 것이 일본 경기를 회복시키는 최후 방안’이라는 미국 예일대 하마다 고이치 명예 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였던 것이 ‘아베노믹스’다. 2012년 말부터 아베 정부는 발권력까지 동원해 인위적으로 엔저를 유도해 경기를 부양시켜 왔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환율’이란 매개변수로 인접국 혹은 경쟁국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정책이 추진 세력과 관계없이 지속될 수 있으려면 ‘공생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는 추진 초부터 가장 우려됐던 점이 ‘로빈스 크루스 함정’이다. 인위적인 평가절하는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각국의 태도를 보면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자국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해 반발하면서 환율전쟁에 가담하는 국가다. 엔저에 따른 유로화 강세 피해가 심했던 유럽 국가가 이 부류에 속했다. 다른 하나는 일본 경제가 당면한 디플레이션을 타개하는 자구책으로 인식해 엔저를 묵인했던 국가다. 미국이 유일했다.
2년 전부터 아베노믹스의 추진력이 잃었던 것은 버팀목이었던 미국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도 환율 조작에서 피해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미국 입장에서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비판한 첫 조치로, 그 후 발표된 환율 보고서에서 일본의 지위가 환율 조작국 예비 단계까지 격상됐다.

아베노믹스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아베 총리 전격 사임 소식이 알려진 직후 닛케이 지수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국제 환투기 세력이 ‘왜 엔화 약세가 아니라 강세에 베팅하고 있는가’를 따져보면 알 수 있다. 경제 실상을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주가가 떨어지면 해당국 통화 가치는 약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를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할 경우 일본 경제는 고질병인 엔고의 저주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 환투기 세력은 이 점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안전통화 여부는 경기가 침체될 때 최종 대부자 역할을 누가 하느냐에 달려있다. 일본은 엔화표시 국채를 자국 국민이 96%를 갖고 있어 국가 부도 위험이 희박하다.
더 우려되는 것은 아베노믹스처럼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기대가 무너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정책당국이 어떤 신호를 보낸다 하더라도 국민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좀비 현상’이다. 1990년 이후 20년 이상 지속됐던 장기 침체 과정에서 일본 국민은 좀비 현상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좀비 현상이 반복되면 ‘비이성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경제에 있어서 비이성적인 행동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잘못됐다고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베의 사임을 시작으로 우방국의 최고통수권자가 잇달아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주목해야 한다.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에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입지도 종전만 못하다. ‘중남미 트럼프’로 불리웠던 자아르 브라질 대통령은 탄핵으로 몰리고 있다. 대외경제 정책 방향 등을 선제적으로 재정립해야 할 때다.
다른 하나는 빠르게 절상되고 있는 중국의 위안화 가치다. 홍콩 시위대 사태로 달러당 7.5위안 이상 절하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6.6위안대로 절상됐다. 골드만삭스 등이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봤던 ‘스위트 스팟(미·중의 이해관계를 잘 반영하는 적정선으로 6.8∼7위안)의 하단이 1년 앞당겨 무너진 셈이다.
가장 큰 요인은 중국 경기의 빠른 회복세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축출설’이 나돌 정도로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던 시진핑 국가주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라는 오명을 극복하고 경제활동 재개 등을 신속하게 결정하면서 경기가 ‘V자형`(1분기 -6.8%→2분기 3.2%)으로 반등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중국 경제가 올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위안화 가치가 절상됨에 따라 지지부진했던 일대일로 계획도 활기를 찾고 있다. 지난 5월 도입한 디지털 위안화는 ‘더 늦춰지면 아시아 중심통화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디지털 엔화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디지털 유로화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국은행도 내년 상반기에 디지털 원화 시범 운용 계획을 발표했다. Fed도 대선 이후 디지털 달러 도입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페트로 달러화’란 별칭이 붙을 만큼 달러화 비중이 90% 이상 차지했던 원유결제시장에서도 위안화 결제가 처음 시작돼 ‘페트로 위안화’ 시대가 열렸다. 각국의 외화 보유에서 시작된 탈달러화 추세가 결제시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어 2차 대전 이후 지속돼 왔던 브레튼우즈 체제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엔화 강세와 위안화 절상 추세는 미국측 요인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 가치는 머큐리(Mecury : 펀더멘털)와 마스(Mars : 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머큐리 요인으로 미국 경기가 뱀이 꾸불꾸불 기는 ‘스네이크’형으로 예상되는 데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제로 금리를 2023년까지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스 요인도 대선만 끝나면 변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추진 과정에서 오락가락해 흐트러진 면이 있지만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강한 달러화’를 표방해 왔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 결과대로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집권당이 될 민주당은 달러화 가치를 시장에 맡겨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엔화와 위안화 가치가 동반 절상되면 원·달러 환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위안화와 원화 간 동조화 계수가 여전히 ‘0.7’ 내외로 높은 점을 감안하면 위안화 절상 요인만으로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 통신이 환율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위안화 가치가 1년 후에 6.3위안 내외로 절상되면 원·달러 환율은 1,100원이 붕괴되는 것으로 나온다.
앞으로 원화 가치가 높아질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종전처럼 부담보다 혜택이 많을 것으로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 강세에 따라 가장 우려되는 수출과 경기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주력수출상품이 고질병이었던 환율에 의존적인 천수답 구조에서 탈피해 기술, 품질, 디자인 위주로 개편된 점을 감안하면 크게 줄어들었다.
오히려 외국인 자금 유입에 따른 ‘부(富)의 효과’로 경기를 부양시키는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최근처럼 금융이 실물을 주도(leading)하는 성장 여건에서는 버냉키 독트린에 따라 주식 등 자산시장 여건을 포함시켜 경기 대책을 추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본 수출’이 ‘상품 수출’ 이상으로 중시돼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화 퇴조와 자급자족 성향이 강해지는 교역 환경에서는 우리 경제의 독립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수출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개선하면서 내수를 육성시켜야 한다. 다른 인위적인 정책수단보다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원화 강세는 부작용 없이 내수를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달러 투자자도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달러 약세는 실제보다 더 심하다. 달러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보편적인 잣대인 달러인덱스를 처음 발표됐던 1973년 이후 달라진 세계교역비중을 감안해 종전의 구성통화에서 스웨덴 크로네화를 빼고 위안화를 넣어 재산출하면 ‘85’ 내외로 나온다. 지난주말 ‘93’보다 10% 가깝게 더 떨어지는 수준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강세’를 예상해 달러를 사둔 투자자(기업 포함)의 환차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140원대로 떨어진 틈을 타 환차손을 물타기 하기 위해 체리 피킹(저가 매수)하기보다는 과도한 달러 보유분을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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