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이영주 교수의 '두보 & 이백' 이야기

입력 2017-04-10 08:01  

[연합이매진] 이영주 교수의 '두보 & 이백' 이야기

"이백 詩 낭만적 vs 두보 詩 사실적"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한시(漢詩)는 한문으로 지은 시다.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서 오래도록 이어온 문학의 한 갈래로, 1천300여 년 전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를 으뜸으로 친다. 이 시기에 한시의 양대산맥인 두보(杜甫, 712~770)와 이백(李白, 701~762)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두 시인의 작품은 지금까지 전해지며 사람들의 마음에 묘한 감흥과 감동을 주고 있다.

이영주(62) 서울대 중문과 교수는 두보와 이백을 연구해 온 전문가다. 그의 호(號)는 '운산'(韻山). "시로써 산을 이루라"며 은사가 지어주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한시 대가와 그들의 시를 파고 싶어 발을 디뎠다가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도록 그들의 시를 읽고 연구하고 있다. 이 교수가 전하는 두 천재 시인의 삶과 시 세계에 귀를 기울여봤다.


-- 한시는 무엇입니까.

▲ 흔히 한시라고 하면 한문으로 지어진 시를 말하는데, 중국인이 지은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 속한 지역에서 지어진 것도 한시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조와 조선조의 우리 할아버지들이 지은 시는 대부분이 한시입니다. 따라서 우리 고전문학을 이해하려면 한시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한시를 어떻게 공부하게 됐나요. 두보와 이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신 이유가 있나요.

▲ 어렸을 때부터 중국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한문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시절 삼국지 같은 것을 읽다 보니까 중국에 관심이 생겼죠. 이런 개인적 취향이 중국문학에 관심을 두게 했습니다. 문학에 적성이 맞는 것 같아 대학에서 중문학을 공부하게 됐죠. 그중에서도 한시가 가장 중국문학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한시는 제한된 형식 속에 함축적인 표현으로 인간의 다양한 정서와 사상을 담고 있어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시를 공부하게 됐는데 갈수록 재미를 느끼게 돼 평생 전공으로 하게 됐습니다. 두보와 이백의 경우 처음에는 제일 유명한 시인이니까 한번 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를 읽다 보니까 굉장히 매력적이고 왜 이들을 중국의 양대 시인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 계속 공부하게 됐습니다.


-- 두보와 이백은 어떤 인물인가요. 함께 여행하고 서로에 관한 시를 쓸 정도로 친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두 사람은 당나라 현종과 숙종 재위 기간에 주로 창작활동을 했습니다. 이 시기는 중국문학사에서 흔히 성당시기라고 하는 때입니다. 한시 중에는 당시(唐詩)가 으뜸이고 당시 중에서는 성당시를 최고로 평가합니다. 이백과 두보는 바로 이 시기에 활동한, 중국 한시를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두보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시인이자 궁중에서 벼슬까지 했지만, 두보는 아버지가 지방 사또 정도로 몰락해 가는 집안에서 태어났죠. 두보는 집안을 일으켜 가문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꿈을 꾸었죠. 당시 과거시험의 중요한 과목 중 하나가 시였습니다. 두보는 두 번이나 낙방했어요. 두 번째는 정치적인 이유로 응시자 전원이 떨어졌는데 첫 번째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두보의 시가 너무 어려워 심사위원이 이해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백은 출생지도 불분명한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에요. 100% 한족이라고 보기 힘들죠. 아버지는 한족이지만 어머니는 이민족(키르기스스탄)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당시 중국의 일반 사대부와 자란 환경이 다르고 교육도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것이 이백이란 특이한 사람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이백은 애당초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어요. 출신이 불분명하니까 일부러 과거를 보지 않은 것 같은데 또 다른 이유로는 과대망상을 들 수 있죠. '내가 과거시험을 봐서 뽑힐 사람이냐. 특채로 뽑아야지'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결국 특채로 뽑혀 벼슬을 하긴 하죠.

이백과 두보는 생전에 교유가 있었어요. 함께 여행을 다니며 시를 지을 정도로 친분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백이 두보보다 열 살 정도 나이가 많고 당시 명성도 대단했던 것에 비해 두보는 나이도 어리고 명성도 없었죠. 두보는 이백을 존경했고 이백은 두보를 기특한 후배 정도로 여겼을 것 같아요. 하지만 중국 최고의 양대 시인이 같이 어울린 것은 일대 사건이죠.






-- 두보와 이백의 삶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 이백과 두보가 활동한 시기는 안녹산의 난으로 당나라 전국이 격랑에 빠졌던 때입니다. 안녹산의 난은 번성하던 당나라를 초토화해 이후 당나라는 쇠락하게 되죠. 한마디로 당나라 흥망의 일대 전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시인은 이런 시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목도한 시대 상황을 시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험난한 시대 상황 속에서 시인의 역할은 어떠한지, 그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 시인으로서 두 사람은 어땠나요.

▲ 두보는 가장 정통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인이에요. 시가 1천500수 정도 전해지는데 모두 심혈을 기울이고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두보는 "어불경인사불휴"(語不驚人死不休)라고 했어요. "나의 시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겠다"는 뜻이죠. 이 말에서 두보가 얼마나 치열한 작가 정신을 가졌고 작품에 공력을 들였는지 알 수 있죠. 또 안녹산의 난을 겪으며 나라를 생각하고 대중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시에 배어 있어요. 두보는 꿈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고 평생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런 마음도 진지하게 표현돼 있죠.

반면 이백은 천재입니다. 상상력이 아주 특출나죠. 자기가 꿈꾸는 세계를 아주 기막히게 표현했어요. 시를 읽다 보면 "아,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또 이백은 술 냄새가 진동하는 시를 많이 썼어요. 제가 젊었을 때, 달밤에 술을 마시면서 감정을 표현한 이백의 시를 보면 자꾸 술 생각이 날 정도였어요. 그 정도로 감흥력이 대단한 시인입니다. 하지만 이백의 시에서는 절대고독이 느껴져요.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고독이죠. 흔히 이백의 시를 호방하고 자유롭다고 하는데, 밑에는 비애가 깔렸죠. 이게 이백 작품의 매력입니다.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필치에 강한 힘이 담겨 있어요. 하지만 두 시인의 시를 비교해 보면 대척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상반되죠. 이백의 시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입니다.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자기감정 표출에 치중했습니다. 반면 두보는 현실을 반영한 시를 사실적으로 그렸고 필치가 침착하고 진중합니다. 사상에서도 이백은 도가적인 경향이 뚜렷하고 두보는 철저히 유가적입니다.

저는 논문으로 두보를 썼지만 이백을 더 좋아해요. 제자들이 기질로 보나 좋아하는 거로 보나 이백 쪽인 것 같은데 왜 두보로 논문을 썼냐고 물어보면 "이 친구야 애인은 분석하는 게 아니야"라고 대답하죠.



-- 두보를 시성(詩聖),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시의 특성 때문이죠. 두보의 시가 유가 사상을 담고 있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어서 두보는 성인이라는 평을 받은 것이고, 이백의 시는 도가적이고 내용이 환상적이고 시풍이 자유로워서 신선이라고 평가된 것입니다. 시성이나 시선이란 단어에는 그들의 시가 최고라는 칭송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또 성인이라는 평은 두보의 시가 한시의 규범으로 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신선이라는 평은 이백의 시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일반인이 따라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하죠.



-- 이들의 시는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줍니까.

▲ 이백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큰 성취를 이뤘습니다. 이백의 시를 읽으면 자유로운 상상력이 창조적인 작업에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있죠. 이백의 시구(詩句) 중에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잔, 한 잔, 또 한 잔'이라는 뜻이죠. 시어라면 뭔가 멋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시에 써버렸어요. 예사로운 것도 대단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죠. 개인이 자기 분야에서 남다른 성취를 이루려고 하면 단순히 남을 따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만 특출한 성취를 이룰 수 있죠. 이백의 시는 그런 점에서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반면 두보는 무한한 노력으로 성취를 이뤘어요. 두보의 시는 거의 모두가 공들여 쓴 작품입니다. 끊임없이 고치고 고쳤죠. 두보 시는 완벽한 설계도를 가지고 지은 건축물입니다. 두보를 보면 한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이면 반드시 이루어낸다는 느낌을 줘요. 두 시인을 보면 성공하려면 창조적인 생각과 끊임없는 열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 두보와 이백의 작품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 이백의 시로는 '월하독작'(月下獨酌)이 있습니다. 달밤에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싫어 하늘의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초청해 셋이 술을 마신다는 내용입니다. 천재적인 상상력과 절대고독에 힘들어하는 시인의 심사가 잘 표출되어 있어 이백 시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보의 시로는 '석호리'(石濠吏)를 소개합니다. 안녹산의 난 때 석호촌이라는 마을에서 목도한 참혹한 실상을 소개한 시입니다. 어느 날 관리가 병사를 징집하러 왔는데 아들 셋이 이미 끌려가 둘은 죽었고 남은 건 젖먹이 손자뿐입니다. 할머니는 밥이라도 짓겠으니 자기라도 데려가라고 합니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천 년 전 석호촌에 가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아요. 대중에 대한 두보의 애정과 연민이 진하게 배어 있어 두보 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보는 정말 어렵게 생활했어요. 아마도 하늘이 두보를 시인으로 만들려고 그런 시련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전란과 가난의 고통을 본인이 겪었기 때문에 내용이 아주 진실하죠.



-- 2015년 이백 시 완역 작업을 끝내셨습니다. 작업이 만만찮았을 것 같습니다.

▲ 중문학 공부를 시작할 때 우리나라에 중국 유명 시인의 시가 완역된 것이 거의 없었어요. 이백과 두보라도 완역을 해봐야겠다고 해서 1994년 중문학 전공 교수, 학자와 함께 '두시독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매주 한 번씩 모여 연구했어요. 이제 30년 가까이 됩니다. 두보 시 완역은 지금도 하고 있는데 현재 7권까지 나왔어요. 1천 수 이상 했지만 아직 많이 남았죠. 3년 후 정년 때까지 끝내려 하는데 모르겠어요. 1~2년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97년부터는 이백 시도 완역해야겠다 싶어 대학원생들과 독해 모임을 만들었어요. 이백 시를 읽으면서 작업한 내용을 컴퓨터에 저장했죠.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모임이 중단됐다가 2011년 한국연구재단 명저 번역사업으로 이백 시가 공모로 나와서 응모했죠. 이백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임도현 박사, 베이징대에서 이백 시를 연구한 신하윤 교수와 함께 3년 내내 연구해 마침내 1천72수 완역을 끝냈습니다.

이백 시 완역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우리가 세 번째로 한 거예요. 완역 작업을 하면서 일본이나 중국에서 나온 참고자료를 읽었으니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이게 보람이죠. 물론 시는 문장과 달라서 맥락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과연 이게 완벽할 것인가는 훗날 알게 되겠죠.



-- 강의나 강연할 때 어떤 점을 강조하시나요.

▲ 고리타분하게 1천 년도 더 된 한시를 읽는다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있을 거예요. 시를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중국인의 어떤 의식이 있는가, 시를 통해 구현하려던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까지 무엇이 이어지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두보 시는 짜임새가 완벽해요. 두보는 시를 통해 '조화로운 질서'를 구현하려 했죠. 유가에서 보면 공자님은 예(禮)를 중시합니다. 공자의 제자 안회가 "인(仁)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님은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해요.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라는 거죠. 여기서 예는 단순히 사람 간의 예의범절이 아니라 인이 포함된 개념이죠. 사심을 극복하고 사회질서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두보는 이런 유가의 정신을 시라는 형식으로 표현한 거죠. 공자부터 이어지는 중국인의 세계관, 인간의 규범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한시를 직접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 직접 지어봐야 한시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짓기 시작했어요. 직접 한시를 지어보니까 옛날 시인들이 고민했고 애썼던 부분을 파악할 수 있었죠. 벌써 1천 수 가까이 지었고 시집도 6권을 냈습니다.

최근 합천박물관에서 용봉문환두대도(龍鳳文環頭大刀)를 보고 '多羅國大刀'(다라국대도)란 시를 지었어요. 봉황과 용 문양, 은실을 감은 기술을 보니 가야 문화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가야를 일본이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터무니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죠.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千年古墳地(천 년 옛 분묘에서)

問世出神刀(세상에 알리려 신성한 칼이 나왔으니)

身刻鳳龍斐(봉황과 용의 아름다운 문양 새겨진 몸체에서)

氣沖牛斗高(뻗쳐 나온 기운은 밤하늘 견우성과 남두성을 찔렀으리)

儀嚴曾鎭岳(엄숙한 의태는 일찍이 산악을 눌렀을 터)

芒利尙吹毛(날카로운 빛은 지금도 가는 털을 벨 수 있을 듯)

此以徵倭史(이 칼로 왜국의 역사 징험할 수 있으리니)

驚魂衆寇逃(혼비백산 도적들 줄행랑을 쳤으리라)



-- 한시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쉽게 접근할 비결이 있나요.

▲ 한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그 이유는 한시가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단 명시를 번역한 번역본을 통해 한시를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한시도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다양한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거예요. 또 한시 특유의 함축적이고 멋들어진 표현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재미를 느끼다 보면 절로 한시와 친해질 것입니다.



-- 한시 연구자로서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 당나라와 송나라의 대문장가를 당송팔대가라고 합니다. 당나라의 한유·유종원, 송나라의 구양수·소순·소식·소철·증공·왕안석이죠. 이 중 한유(韓愈, 768~824)의 시를 완역하려고 합니다. 한유는 이백·두보와는 다르게 시를 지어보려고 애썼던 사람이에요. 한시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죠. 완역 작업을 이제 절반 정도 했는데 내년 말이면 끝날 것 같습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4월호 [인문학 이야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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