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갈등과 열정의 교차로 '예루살렘'

입력 2018-03-10 08:01  

[연합이매진] 갈등과 열정의 교차로 '예루살렘'
인류가 고이 간직해야 할 공존의 종교역사 품다

(서울=연합뉴스) 중동 내 화약고의 원점은 예루살렘이다. 영토를 둘러싼 민족 간 갈등과 여러 종교적 열정이 도시 곳곳에서 교차한다.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과 억울함 가득한 눈을 가진 팔레스타인 주민의 가시 돋친 눈살이 도시의 공기를 서늘케 한다. 이 긴장 속에서도 종교적 열망을 담은 기도 소리가 퍼지고 회개의 눈물이 곳곳에서 흐른다. 전 세계 곳곳에서 모인 일반 관광객은 물론 성지를 탐방하는 종교인의 가슴 벅참도 도시의 공기를 채운다.

글·사진 서정민(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 일방주의가 일으킨 또 다른 긴장

복잡한 예루살렘의 정세와 정서에 다시 뜨거운 기름이 부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한 것이다. 행정도시 텔아비브에 소재한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도 지시해 분쟁 당사자로 볼 수 있는 아랍 및 이슬람권은 물론 국제사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국제법은 전쟁으로 획득한 영토를 인정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권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합의다. 이스라엘은 1948년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살고 있던 예루살렘 서부를 장악한 데 이어 1967년에는 동예루살렘까지 차지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에 점령지에서 철수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여러 차례 내놓았지만 번번이 먹히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슬림 간 갈등은 유럽에서 억압받던 유대인들 사이에 시온주의가 등장하면서 새 국가 건설을 위한 이주가 시작된 19세 말부터 본격화됐다. 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제국의 분열로 영국이 위임통치하던 기간에는 대규모 이주가 이어졌고 팔레스타인 거주 무슬림들과의 유혈충돌은 한층 거세졌다.
결국 유엔 총회는 1947년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채택했다. 유대인 중심의 이스라엘과 무슬림 중심의 팔레스타인을 별개 국가로 세우자는 것이었다. 당시 분할안은 예루살렘만큼은 국제사회 관할 지역으로 남겨놓았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의 중요 성지임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점유권을 인정했으니 동예루살렘을 점령당했다고 생각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 예루살렘의 어원 '이루 슐라임'

예루살렘은 이해 당사자의 생존과 3대 중동 종교의 자존심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곳은 사해와 지중해 사이의 황량한 사막 속 오아시스였다. 언덕에는 나무가 자라고, 골짜기에는 샘이 솟는다. 약 5천 년 전 가나안 인이 정착해 도시를 건설했다. 사막의 유목민에게는 최적의 삶을 제공했다. 주민은 풍족하고 평온한 삶을 영위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곳을 '이루 슐라임'이라고 불렀다.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로 예루살렘의 어원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갈 수 있는 요지에 자리 잡은 오아시스 도시는 모든 세력에 매혹적인 곳이었다. 3천300여 년 전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들도 주변에 정착했다. 유대왕 다윗은 왕국을 건설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다. 솔로몬왕은 성전을 건설했다.
그러나 바빌론 제국 등에 멸망하면서 많은 유대인이 바빌론 제국의 메소포타미아로 끌려갔다. 바빌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도시를 다시 일으키고 성전을 재건했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과 알렉산더 대왕의 연이은 정벌로 쇠락했다. 이후 로마제국은 다시 성전을 파괴하고 항전하는 유대인을 학살하고 추방했다. 이렇게 1천 년 이상 유럽과 중동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언젠가 돌아가야 할 정신적 수도였다.

◇ 성지를 둘러싼 충돌의 초점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에 등장한 기독교에서도 예루살렘은 신앙의 중심지였다. 사랑을 전파하며 헐벗고 소외당한 자들을 이끌던 예수가 입성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는 로마 통치세력과 유대인 기득권 세력 모두의 적이었다. 통치권을 강화하려는 로마 통치자에게는 반군 세력이었고, 유대인만이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 지도 세력에게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예수의 주장은 심각한 도전이었다.
예수는 도시 입성 후 3일 만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예수가 피를 흘리며 하나님 곁으로 간 도시 예루살렘은 기독교 최대의 성지일 수밖에 없다. 11세기 말부터 약 200년 동안 십자군 원정대가 성지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워 무슬림이 지배하던 예루살렘 탈환전쟁에 나선 것은 그런 배경에서였다.
유대교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슬람 신도인 무슬림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중대한 성지다. 이슬람 초기에는 무슬림도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를 행했다. 신성이 전혀 없던 인간 지도자로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가 유일하게 행한 기적은 예루살렘을 밤에 방문해 하늘로 승천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서기 7세기 출범한 이슬람 국가는 20년도 지나지 않아 예루살렘 정벌에 나서 장악했다. 종교적 열정이 담긴 중대한 정복사업이었다. 이후 20세기 초 이슬람을 신봉하는 오스만제국
이 멸망할 때까지 예루살렘은 무슬림의 도시였고 신앙의 중심지였다.

◇ 다채로운 역사 간직한 예루살렘 올드시티

현대 대도시로 성장한 예루살렘 동부 지역에는 고대부터 존재한 올드시티(구시가지)가 위치한다. 성벽 밖 현재의 시간과는 다른 3천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곳이다. 올드시티는 면적이 0.9㎢에 불과하다. 작은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16세기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제국의 술레이만 대제에 의해 완성됐다. 도시 내부는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관할돼 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아르메니아 정교 구역이다. 네 구역 사이에 물리적 장벽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각각의 종교적 열망과 아픔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전 세계 유대인이 찾는 통곡의 벽

올드시티 남동쪽에 위치한 유대교 구역은 차분하고 엄숙한 지역이다. 종교색이 짙은 약 5천 명의 유대인이 거주한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제외하고는 경건함이 가득하다. 머리에 키파(kippah)라는 작은 천을 얹고 다니는 신실한 유대인이 많다. 때로는 검정 코트와 중절모를 쓴 정통주의 유대인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외국인을 맞이한다. 그리고 소총을 둘러멘 정복과 사복의 군인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지나는 사람을 감시한다. 긴장 속의 경건함이 유대교 구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 구역 동쪽의 높은 담벼락 주변에는 종교적 열정과 감흥이 넘친다. '통곡의 벽'(Wailing Wall)이 있기 때문이다. 통곡의 벽은 전 세계 유대인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성지다. 이곳에서는 역사적 아픔을 되새기며 벽에 가까이 머리를 파묻은 채 몸을 앞뒤로 움직이며 격렬한 기도를 행한다.
간절함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통곡을 한다. 통곡의 벽 위의 성전산(Temple Mount)은 모두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아산이다. 유대왕국의 솔로몬왕과 헤롯왕이 제1, 2 성전을 건설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로마제국 시절 모두 파괴되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은 흔적은 통곡의 벽을 이루는 담벼락뿐이다. 유대인들이 세계를 떠돌아야 했던 디아스포라(이산)를 잊지 않도록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상징물이 통곡의 벽이다.



◇ 인구밀도 가장 높은 이슬람 구역

통곡의 벽을 지나 북쪽으로 향하면 바로 이슬람 구역으로 이어진다. 4개 구역 중 상대적으로 가장 큰 지역이다. 약 3만여 명의 무슬림이 거주한다.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작은 집과 상점이 가득하다. 북적거리는 시장의 분위와 향기가 넘쳐난다. 점령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처절하게 생존하려는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몸부림이 느껴진다. 좁은 골목의 벽 곳곳에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문구가 가득하다. 삼엄한 이스라엘의 감시 속에 낙서를 통해서라도 저항의 끈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슬람 구역의 민간인 거주지역과는 달리 성스런 곳은 분리되어 있다. 성전산에 있는 바위 돔(Dome of the Rock) 사원은 무슬림의 자존심을 상징한다. 무함마드가 천상여행을 출발한 장소로 전해지는 이슬람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이다. 691년 완공되었다. 자긍심을 표현하기 위해 돔 부분을 금박으로 입혔다.
바위의 돔 위에 지은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황금돔 사원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유다. 이곳을 찾는 무슬림들은 1천300년 이상 예루살렘이 이슬람 통치 아래에 있었다는 자긍심을 되새기곤 한다. 이 사원은 햇빛을 반사하는 금박 때문에 멀리서도 잘 보여 예루살렘 올드시티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통한다.

◇ 한적하고 조용한 기독교 구역

올드시티의 북서쪽에 위치한 기독교 구역은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연속이다. 관광객을 맞이하는 골목골목의 상점들을 제외하고는 6천여 명의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물려온 집을 유지한다. 곳곳의 교회들에 관광객이 넘쳐나는 가운데 골목마다 집 밖에 내건 화분에선 화사한 꽃이 피어난다.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오랜 전쟁과 싸움에서 벗어나 있으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하다.
그러나 기독교 최대의 성지라고 불릴 수 있는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에는 종교적 감흥이 넘쳐난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장소라고 믿어지는 곳에 세워져서다. 예수의 시신이 있던 관이 비어있었다는 점에서 부활한 곳으로도 여겨진다. 서기 4세기에 처음 지어졌다는 이곳에 들르는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 장소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다. 예수의 마지막 아픔과 부활의 기적이 공존하는 장소를 가슴에 담기 위해서다.





◇ 올드시티에서 가장 작은 아르메니아 구역

기독교 구역 남쪽에는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가장 작은 구역이 존재한다. 아르메니아 정교회 구역이다. 현재 정교회 교인의 수도 약 800명을 넘지 않는다. 규모가 작고 인구도 적지만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활동은 상당히 활발하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간의 갈등 속에서 강력한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올드시티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은 대부분 종교인이다. 종교학교도 설립해 전 세계 정교회 신도들의 신학 공부와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정교회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곳이 바로 야고보(St. James) 수도원이다. 아르메니아 구역 정중앙에 있는 이 수도원은 교회 역할을 하면서 정교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아직도 수도사들이 고행을 수반하는 수련을 한다. 주변의 다양한 종교와 정치세력의 침탈 속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1천200년 이상 수도원을 유지해 왔다. 소수 종파의 지난한
역사와 인고의 시간이 교회 내부의 화려하지 않은 엄숙한 장식에 잘 나타나 있다.
예루살렘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역사적 아픔. 그리고 번영을 상징하는 도시다. 1947년 유엔 총회가 국제사회의 관할 지역으로 설정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일방적인 영유권이 주장된다면 더욱 큰 아픔이 다른 민족이나 종파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은 그래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루살렘은 인류가 고이 간직해야 할 공존의 종교역사를 품고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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