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조선 풍류객 송강 정철

입력 2018-07-09 08:01  

[연합이매진] 조선 풍류객 송강 정철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珠玉 작품' 쏟아내다

(서울·담양·고양·진천=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조선 시대의 천재 시인 송강 정철(1536∼1593). 그가 남긴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은 국문학사 최고의 시가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정철은 다른 모습이었다. 강직했지만 정적(政敵)을 향해서는 무척이나 가혹했다. 그래서인지 고난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자취를 따라간다.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관동 팔백 리에 방면을 맡기시니, 어와 성은이야 갈수록 망극하다"로 시작하는 관동별곡(關東別曲).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여러 명승지를 둘러보고 읊은 노래로, 조선 가사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학창시절 국어시험에 단골로 등장해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던 작품이다. 관동별곡 속 청간정, 낙산사,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아가 풍광을 찬미하는 동해안의 명소들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북녘땅에는 월송정, 총석정, 삼일포가 있다.
정철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은 곳은 전남 담양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정철의 고향을 담양으로 알고 있지만 그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경복궁 북서쪽에 있는 청운초등학교 옆 도로변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표석에는 '정철 선생 나신 곳 鄭澈 生家址, 이 언저리 장의동(壯義洞)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松江) 정철 선생(1536~1593)이 태어난 곳'이라 새겨져 있다. 학교 담을 따라선 '관동별곡' '성산별곡' '사미인곡' '훈민가' '산사야음' 등 대표작을 새긴 시비가 띄엄띄엄 서 있다. 작품비 안내판에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가사와 훈민가 등 많은 시조를 남겨 세계적인 시성의 반열에 올라 있다.…(중략)…송강께서 태어나신 유서 깊은 이곳에 그분의 투철한 충효사상과 선공후사의 공복정신을 기리고, 시가문학의 창의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그 대표작품을 수록한 시비를 세워 만세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고 씌어 있다.



◇ 유복한 어린 시절…을사사화로 고난의 길

송강 정철은 1536년(중종 31년) 음력 12월 6일 영일 정 씨 유침(惟沈)과 죽산 안 씨 사이에서 위로 형과 누나를 셋씩 둔 막내로 세상에 나왔다. 흔히 역사 속 위인에게 따라다니는 탄생과 관련한 기이한 이야기나 전설이 그에게는 없다. 단지 그는 태어날 때 '은수저' 내지 '금수저'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대로 큰 벼슬을 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그가 태어나기 3년 전 큰누이는 인종의 후궁이 됐고, 막내 누이는 월산대군(성종의 형)의 손자인 계림군에게 출가했다.
이런 연유로 어린 시절 정철은 궁궐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특히 2살 위인 경원대군(훗날 명종)과는 함께 놀며 지내는 두터운 사이였다. 훗날 명종은 송강이 과거에 급제하자 잔치에 직접 술과 안주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유복한 어린 시절은 10살(1545년) 때 일어난 을사사화로 막을 내렸다. 을사사화는 정국 주도권을 둘러싸고 왕실 외척 간에 빚어졌다. 문정왕후(명종의 모친)의 남동생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 세력이 장경왕후(인종의 모친)의 오빠인 윤임을 중심으로 한 대윤 세력을 몰아내며 발생했다. 이때 매형인 계림군이 역모 주모자로 몰리면서 정철의 부친과 당시 이조정랑이던 맏형이 잡혀갔다. 결국 계림군은 처형됐고 아버지는 함경도 정평으로, 맏형은 전라도 광양으로 유배됐다. 2년 후에는 문정대비의 수렴청정과 간신배를 비난하는 낙서가 양재역에서 발견돼 또다시 부친은 경상도 영일로 유배됐고, 큰형은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던 중 사망했다. 어린 정철은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를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했다.


◇ 인생 2막 시작한 자미탄

1551년 왕자(훗날 선조) 탄생에 따른 은사(恩赦, 일종의 특별사면)로 부친이 유배에서 풀려났다. 아버지는 선친의 묘소가 있는 담양 창평 당지산 아래로 거처를 옮겼고 정철은 그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다. 정철의 삶은 담양에서 김윤제란 인물을 만나면서 극적으로 변화한다.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는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현재 광주호로 흘러드는 증암천(옛 이름 자미탄) 옆 언덕에 환벽당을 짓고 후학을 기른 인물이다. 정철과 김윤제와의 만남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어느 여름날 어머니와 함께 둘째 형을 만나러 순천으로 가던 정철은 현재 식영정(息影亭)이 있는 성산(星山) 앞을 지나다 자미탄에 들어가 멱을 감았다. 이때 개울 옆 환벽당(環碧堂)에서 낮잠을 자던 김제윤은 개울에서 용 한 마리가 노니는 꿈을 꾼다. 깨어나 즉시 개울로 눈길을 돌리자 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는 것이었다. 소년의 비범함을 알아본 그는 순천행을 만류하고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철은 김윤제 문하에서 지내며 당대 명현인 송순, 임억령, 김인후, 기대승 등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고경명, 김성원, 임제, 이후백 등과 교유했다. 17세에는 김윤제의 외손녀인 문화 류 씨와 혼인도 했다.
이정옥 한국시가문학해설연구원장은 "송강은 송순에게 가사를, 김윤제에게 정치와 행정을, 임억령에게 한시를, 김성원에게 거문고를 배우는 등 각 분야에 조예가 깊은 이들에게 배우며 남도의 풍류를 익혀갔다"고 설명했다.
정철과 김윤제가 만난 공간은 환벽당 바로 아래에 있다. 춤추는 듯, 달리는 듯한 모습의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 '조대'(釣臺, 낚시터)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다. 바로 옆 들판에서는 수레국화와 꽃양귀비가 화사한 자태를 뽐낸다. 정철은 '성산별곡'에서 "한 쌍의 늙은 소나무를 조대(釣臺)에 세워놓고/ 그 아래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내버려 두니/ 붉은 여귀꽃, 흰 마름꽃 핀 물가를 어느새 지났는지/ 환벽당 용소에 뱃머리가 닿았구나"라고 조대의 풍경을 읊었다.
환벽당은 정철이 김윤제의 가르침을 받으며 학문에 정진한 곳이다. 환벽당은 이름처럼 푸름을 사방에 가득 두르고 있다. 뒤편으로 소나무와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앞쪽에도 초록빛 나무와 풀이 한가득하다.

◇ 정적에게는 가혹했던 정치인

송강은 담양 생활 10년 만인 27세에 과거에 급제하며 정치 무대에 등장한다. 성균관 전적을 거쳐 사헌부 지평, 이조정랑, 홍문관 전한, 예조참판,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까지 요직을 지냈다. 그의 출사 초반 출세 가도에는 어릴 적 함께 뛰놀던 명종이 재위했던 것이 한몫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40세와 43세 때 당쟁에 휘말려 낙향했고,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시작해 예조판서까지 승진했지만 49세에 동인의 탄핵으로 낙향해 4년간 담양에 머물렀다. 54세에 다시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됐지만 56세에 광해군을 세자로 주청했다가 선조의 미움을 사서 유배됐고, 결국 58세에는 동인의 모함으로 강화도에서 칩거하며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정치인 정철은 임금 앞에서도 의견을 굽히지 않을 정도로 강직했고 정적(政敵)에게는 무척 가혹했다. 명종의 사촌 형인 경양군이 처남을 죽인 사건을 맡았을 때 명종의 부탁을 거절하고 형 집행을 고집해 결국 요직에서 배제됐다. 1589년 정여립 역모 사건의 수사 책임자가 됐을 때는 조금이라도 연루되면 처형해 동인 탄압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때 옥사한 사람이 1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정철에 대한 평가는 극단을 달린다. 선조실록에는 "성품이 편협하고 말이 망령되고 행동이 경망하고 농담과 해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원망을 자초했다"고 기록됐지만 이후 서인들이 쓴 선조수정실록에는 "충성스럽고 청렴하고 강직하고 절개가 있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근심했다"고 적혀 있다.


◇ 송강 가사문학의 산실들

동인의 정치적 표적이 됐던 송강은 정권의 실세로 활동하다가 낙향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출사 이후 담양에 내려온 것이 총 다섯 차례였다. 그는 이곳에서 머물며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주옥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환벽당에서 개울 건너 성산에는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이 자리한다. 김윤제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서하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임억령은 식영정과 성산 인근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시 '식영정 20영'에 담았고 정철, 김성원, 고경명은 이 한시의 운(韻)을 빌려 시를 썼다. 이들 4명을 가리켜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한다.
식영정은 정철이 성산별곡을 비롯해 많은 시가를 지은 곳이기도 하다. 식영정 입구에 있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란 비석이 이곳이 송강의 시가문학의 산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커다란 노송(老松) 뒤로 정면 2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식영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루 벽 위에는 '息影亭' 편액과 석천 임억령의 식영정기(息影亭記), 송강의 식영정 잡영 10수 한시가 걸려 있다. 누정 뒤편에는 송강이 마흔 이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성산별곡' 시비가 서 있다. 시를 읽으면 식영정 주변 사계절의 변화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지금 누정에서 배롱나무가 개울가를 수놓던 옛 풍경은 볼 수 없다. 대신 누정 앞에 서면 우거진 송림 사이로 갈대가 군락을 이룬 광주호의 평화로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식영정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고서면 원강리에는 송강정이 있다. 송강은 1584년 동인 세력이 주도해 탄핵을 당하자 담양으로 내려와 죽록정(竹綠亭)을 짓고 이곳에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 국문학사 최고의 작품을 썼다. 지금의 송강정은 1770년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송강정에는 '松江亭'과 '竹綠亭' 편액이 모두 걸려 있다. 송강정 앞에서 내려다보면 도로 뒤편으로 개울이 보인다. 그곳이 바로 정철의 호가 연유한 죽록천, 일명 '송강'이다.


◇ 정철이 묻힌 곳 '고양 송강마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송강마을은 정철이 죽어 묻힌 곳이다. 마을 뒤편 산길을 10여 분 오르면 소나무가 무성한 산속에 무덤 4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쪽에는 큰형 내외, 다른 한쪽에는 부모가 묻혀 있다. 그리고 부모 묘소 아래에 송강의 초장지가 자리한다. 이곳은 35세 때인 1570년 부친상을 당한 송강이 2년여에 걸쳐 시묘살이를 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채 1년도 되지 않은 1573년 송강은 어머니마저 잃어 또다시 이곳에서 2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마을 바로 뒤편 언덕에는 '의기강아묘'(義妓江娥墓)가 있다. 정철이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좋아했던 남원의 기생 자미(紫薇)의 묘이다. 강아는 정철이 자미를 사랑하자 사람들이 송강의 강(江)자를 따서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강아는 송강이 1591년 평안도 강계에 유배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정철이 전라도와 충청도 도체찰사로 임명되며 길이 엇갈리게 된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던 중 왜군에게 붙잡히자 적장을 유혹하고 아군에게 첩보를 제공해 전세를 역전시켜 결국 평양 탈환의 공을 세웠다. 이후 승려가 된 강아는 정철이 죽자 묘소를 지키며 여생을 보내다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1582년 도승지에 임명돼 한양으로 떠나던 송강이 강아에게 지어준 '영자미화'(詠紫薇花)란 시가 전한다.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다 네 모습 사랑하리라

현재 송강의 묘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환희산 기슭에 있다. 1665년(현종 4년)에 우암 송시열의 권유로 이곳으로 이장됐다. 송강과 문화 유 씨를 합장한 묘소로, 아래에는 둘째 아들의 묘가 있다. 묘소 인근에는 송강의 영정을 봉안한 송강사와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 송강의 작품과 유물을 볼 수 있는 유물전시관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주차장에서 송강사로 가는 길의 '송강정철선생시비' 뒤편에 새겨진 '사미인곡' 글귀가 눈길을 끈다.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도 그지없다
무심한 세월은 물흐르듯 하는고야
염량이 때를 알아가는듯 고쳐오니
듣거니 보거니 느낄 일도 하도할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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