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혐오에 맞서다

입력 2018-06-21 17:19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혐오에 맞서다
1급 지체장애인 변호사 김원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1990년대 중반 강원도에 사는 한 부부가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게 된 책임이 임신 중 진단을 제대로 못 한 의사에게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소송에는 원고로 다운증후군 아이 본인이 들어갔다. 아이 입장에서 소송 청구 이유를 쓰자면 "당신의 실수로 내가 태어났으니 그 손해를 배상하라"는 주장이 된다.
이런 소송은 한국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장애아를 출산한 커플과 장애아 스스로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법학자들이 이런 유형의 소송에 '잘못된 삶(wrongful life) 소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풀이하자면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됐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변호사 김원영 씨는 신간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에서 이 소송을 소개한다.
그는 로스쿨 1학년 때 수강한 민법 수업에서 이 소송 이야기를 처음 접했는데, 이 소송이 담은 '태어난 것 자체가 손해인가'라는 질문은 그가 성장기 내내 자신의 삶에 관해 고민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유전 질환을 지니고 태어나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 특수학교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서울대 로스쿨을 나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잘못된 삶', 온전한 인간으로서 '실격'이라는 판정을 받은 이들을 위한 변론을 시도한다. 결론적으로 잘못된 태어남, 잘못된 삶이란 없다는 이야기다. 어떤 타고난 유전 조건을 피한다면 '나'라는 현재의 존재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습 그대로 태어나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면, 결국 우리의 장애나 질병은 그것이 설령 '잘못된' 것이라 평가받더라도 우리 자신의 일부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어떻게 싹트는지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해 자신의 결핍과 차이를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자신 또는 타인의 이런 결핍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지 모색한다.
특히 '장애'라는 몸 상태가 한 사람에게 고유한 이야기(내러티브)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누구든 고유의 스타일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애를 극복하거나 치료해야 한다'는 과거의 관점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수평적 교류를 통해 질병과 장애를 자기 정체성으로 수용할 것을 제안한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주인공 조제는 그 좋은 예다. 조제는 남자친구 가네오의 전 애인이 찾아와 뺨을 때린 후 "나도 차라리 너처럼 다리가 없으면 좋겠네"라고 말하자 마찬가지로 상대 뺨을 때린 후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존엄의 순환'을 강조하며 "순환 속에서 존엄은 더 구체화되고, 더 강해지고,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고 매듭짓는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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