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금단의 선'에서 울려퍼진 음악…DMZ 깨웠다

입력 2018-06-23 22:56   수정 2018-06-29 15:15

[르포] '금단의 선'에서 울려퍼진 음악…DMZ 깨웠다
섹스피스톨스·차진엽·강산에 한자리…"평화 위해 밀고나가자"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열려



(철원=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쇠둘레(鐵原) 땅 강원도 철원, 반세기 넘게 짊어진 철책을 내려놓지 못한 땅이 23일 대낮부터 들썩였다.
비무장지대(DMZ)가 펼쳐진 철원은 주말 내내 전국에서 몰려든 6천여 음악 팬의 환호성으로 흥성이는 분위기였다. 제1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펼쳐진 현장이다.
축제는 4월 남북정상회담과 6월 북미정상회담의 감동이 가시기 전에 예술로 평화의 다리를 놓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뭐니뭐니해도 주인공은 춤과 음악이었다.



◇ 서울역→백마고지역, 철마는 달린다
'인생은 매우 짧아. 서로 으르렁대며 싸울 시간이 없어 친구여'(Life is very short, and there's no time for fussing and fighting, my friend.)
오전 9시 35분. 140여 명을 태운 DMZ 평화열차가 서울역에서 출발했다. 비틀스의 '위 캔 워크 잇 아웃'(We can work it out)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나이도 국적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들뜬 표정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일반 관객 70여 명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작가 교환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의 미술가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 영국·중국·스페인 취재진, 뮤지션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함께했다.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자신들의 노래인 '난 어디로'를 비롯해 '세계로 가는 기차'(들국화), '물 좀 주소'(한대수)를 선사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뉴턴 포크너도 즉석에서 무대를 펼쳤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이주현은 "철원에서 공연하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이렇게 기차를 타고, 다 같이 도시락도 먹으니 소풍 가는 것 같지 않으냐"며 싱긋 웃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비주얼 아티스트 필립 알라르 씨는 "전 세계가 북한과 미국이 만나는 순간을 지켜봤다. 나는 모든 평화에서 작업의 영감을 얻는데, 이번 페스티벌에서 영감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온라인매체 이티아오(一條)의 리포터 시밍(石鳴) 씨는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 (중국이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이웃나라의 핵 위협을 누가 원하겠느냐"고 말했다.
12시 20분. 열차는 남한의 최북단역인 백마고지역에 정차했다. 박원순 시장은 "곧 서울역에서 평양, 모스크바, 베를린까지 가는 기차표를 팔려고 한다"고 호기롭게 약속했다.



◇ 차진엽 콜렉티브A, 노동당사 아픔 어루만지다
태양이 중천에 오른 23일 오후 1시 30분. 버스를 갈아타고 노동당사로 이동했다.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발해를 꿈꾸며' 촬영지이기도 한 노동당사는 해방 직후인 1946년 북한이 지은 러시아식 건물이다. 수많은 주민이 이곳에서 고문, 학살당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지금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포탄과 총탄 자국으로 바스러진 외벽은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대변하는 듯했다.
그때 가녀린 몸을 새하얀 삼베조각으로 가린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안무감독을 맡은 차진엽이 이끄는 팀 '콜렉티브A'였다. 이들은 때로는 역동적인, 때로는 처량한 몸짓으로 노동당사를 누비며 아픈 역사를 묘사했다.
이는 차진엽이 지난해 무용 공연 '미인: MIIN'에서 올린 '바디 투 바디'란 작품을 각색한 것이다. 원작이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 변화를 탐색했다면, 이번 공연에는 노동당사라는 공간의 의미를 부여했다.



차 감독은 "지금은 관광지가 돼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공연도 하는 곳이지만 과거에는 고통스러운 곳이었다. 그런 모순이 이상했다"며 "너무 빠른 속도로 살고 있지만 돌이켜보자는 마음을 담아봤다"고 설명했다.
퍼포먼스 가운데 무용수들이 서로를 꼭 끌어안는 장면에 대해선 "누구나 상처와 어려움이 있다. 가족이나 이웃이 아니어도 살면서 마주하는 사람을 보듬어줄 수 있다면 그게 평화 아니겠냐"고 말했다.
여성 무용수들의 카키색 의상에서 인민복이 연상된다는 질문에는 "원작 공연에선 자연과 풀숲의 이미지를 살리려고 입었던 옷"이라며 "노동당사라는 공간에선 의미가 바뀌어 보여서 우리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그러려니'와 '비온다'를 선사하며 갈채를 받았다.


◇ 북녘이 지척인 월정리역 기찻길에서 '…라구요'
한여름이었다. 녹슨 기차만 남은 월정리역 기찻길에는 풀이 시퍼렇게 무성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판의 '평강 19㎞, 원산 123㎞'라는 거리 표시가 농담 같아 보였다. 직선거리로 4km 정도에 북녘이 있다고 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하루에 3천여 명이 사망했다"며 "탱크가 오지 못하게 벽을 쌓았는데, 벽 너머가 바로 북한이다. 여러분이 이곳에 평화를 몰고 오셨다"고 관람객들을 환영했다.
이어 어어부프로젝트 보컬인 백현진과 음악감독 방준석이 결성한 '방백'과 강산에가 철길 위 소박한 무대에 올랐다.






실향민 부모를 둔 강산에는 '명태'와 '라구요'를 불렀다. 그는 평양에서 두 차례 공연한 적이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전쟁과 피난 얘기를 들으면서 어여쁜 우리 엄마가 왜 이런 인생을 살아야 했나 절로 느꼈다. 그래서 어떤 명분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월정리역 옆 남방한계선 벽을 가리키며 "이 벽만 뚫리면 된다는 것 아니에요. 이걸 뚫는 데 70년이 걸렸다는 겁니까. 보수다 진보다 그런 진영논리가 무엇을 위해 있냐는 겁니다"라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1969년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부른 노래 '평화에 기회를 주세요'(Give Piece a Chance)를 언급했다. "우리도 평화에 기회를 줍시다. 존 레넌의 노래를 이어받아 다음 세대까지 물려줄 날이 오길 바랍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 글렌 매트록 "북한 뮤지션과 펑크록 연주하고파"
전설적인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 원년멤버 글렌 매트록도 귀한 발걸음을 했다. 섹스 피스톨스의 음악성을 규정하는 명곡인 '갓 세이브 더 퀸'(God Save the Queen)과 '아나키 인 더 유케이'(Anarchy in the U.K.)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난 20일 방한한 매트록은 22일 크라잉넛, 노브레인 출신의 기타리스트 차승우 등과 리허설하며 축제를 준비해왔다.
매트록은 한국이 혼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월정리역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과 만나보니, 여러분은 한반도 문제가 외부와는 동떨어진 여러분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며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계는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서양 뮤지션으로서 평화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아이작 뉴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통일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지난한 시간이 걸려 이뤄지는 것이겠지만, 이 위인의 말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다. 계속 밀어붙이면(Keep on pushing), 이건 내 노래 제목이기도 한데 여러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음악인들과 펑크록을 연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트록은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물론 북한분들은 좀 어색해하실 수 있지만(웃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트럼프는 자기가 뭘 하는지 알고 행동한 것 같진 않지만, 어쩌다 보니 북한이 세계로 나올 물꼬를 터준 것 같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이날 철원 고석정에서 펼쳐진 본공연에는 강산에, 이디오테잎, 장기하와얼굴들 등이 출연했다. 24일 공연에는 글렌 매트록을 비롯해 크라잉넛, 이승환, 새소년, 세이수미가 선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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