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작업물량 '0' 현대중 해양공장…말뫼의 크레인도 멈춰

입력 2018-08-20 19:47  

[르포] 작업물량 '0' 현대중 해양공장…말뫼의 크레인도 멈춰
마지막 해양 수주물량 출항…근로자 떠난 현장엔 적막감
상가·원룸 직격탄…외국인 특화거리 '점포임대' 수두룩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현대중공업 해양공장이 4년 전 마지막으로 수주한 원유생산설비가 완공돼 출항하던 20일 오후 6시.
서쪽 산으로 넘어가는 햇빛을 받은 해양설비운송선이 서서히 해양공장 부두에서 멀어지며 울산 동구 방어진 앞바다로 나아갔다.
육각형 모양의 고층 아파트 한 동 크기만 한 거주구(Accommodation·1만8천700여t, 근로자들이 사는 곳) 플랫폼은 'Xiang Yun Kou'라는 이름이 검은색으로 쓰인 운송선에 실려 점점 더 바다로 멀어져갔다.
공사 당시 수천 명이 달라붙어 작업하던 모습과 달리 부두에는 5∼6명만 남아 자신들의 손을 거쳐 아랍에미리트(UAE) 앞바다까지 떠나는 마지막 설비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이 플랫폼은 현대중공업이 지난 2014년 11월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수주한 나스르(NASR) 원유생산설비 총 5개 중 마지막 물량이다.
이후 45개월째 해양플랜트 수주가 없어 더는 작업할 해양 물량이 남아 있지 않다.
나스르 설비가 떠나고 남은 해양공장(75만㎡)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스웨덴 말뫼에서 단돈 1달러에 가져온 골리앗 크레인을 포함해 세계 최대(1천600t)의 골리앗 크레인 2기가 바다를 향해 덩그러니 서 있는 거대한 모습은 오히려 쓸쓸함을 더했다.
골리앗 크레인 옆 야적장에는 패널 모양, 원형 모양의 큰 철재 구조물과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이 수백 개, 수천 개씩 쌓여있었다.
모두 해양플랜트 설비를 만들 때 받침대로 쓰이는 것이지만, 이제 긴 휴식에 들어간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공장 내 도로를 제외하고는 야적장 곳곳에 나스르 설비와 비슷한 플랫폼들이 줄줄이 들어차 근로자들이 일벌처럼 붙어서 작업하던 현장이었다.
지금은 언제 분주했느냐는 듯 조선공장에서 넘겨받은 선박 1기만 홀로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해양사업 매출이 최고조에 이르던 2013년과 2014년(4조6천530억원)에는 원청 근로자 수는 4천명, 협력업체 근로자 수는 2만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전체에서 절반가량 줄었고, 지금은 원청 근로자 600명만이 조선 물량 일부를 맡아 해양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마저도 올해 말이면 일감이 바닥난다.
마지막 나스르 물량 작업을 할 때 2천명 정도는 남았던 협력업체 직원은 이제 소속 업체와 현대중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대부분 해양공장을 떠났다.
한 협력업체 근로자는 "일부는 조선 쪽으로 옮겼지만, 대부분 울산을 떠나 건설 현장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갔다"라고 말했다.



수주 절벽이 이어지면서 근로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인근 상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점심때 찾아간 해양공장 인근 '외국인 특화거리'는 한때 현대중공업 마크가 찍힌 점퍼를 입은 근로자 및 외국인 근로자들이 서로 어깨가 부딪히며 걸을 정도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점심시간이었는데도 근로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거리는 2016년 조성돼 횟집과 음식점, 카페와 레스토랑 등 30여 개가 바다를 바라보고 들어섰지만, 지금은 거의 한 집 건너 한 집씩 문을 닫았다.
한 음식점 앞 유리창에 붙인 영어로 쓴 '당분간 점심시간 문을 열지 않습니다'라는 글이 현실을 투영했다.
아예 '점포임대'라고 써 붙인 가게도 군데군데 보였다.
5년 전부터 이곳에서 피자와 맥주 등을 파는 레스토랑을 운영해 온 최준환(35) 씨는 "몇 년 전에는 점심시간에 10여 개 테이블이 모두 꽉 차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라며 "지금은 점심때 10명 정도가 온다"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이 거주하는 원룸가도 피해를 비껴갈 수 없었다. 호황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 하던 것이 지난해에는 월세가 30만원가량으로 떨어지더니, 올해 들어선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는 25만원으로 내려갔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부동산중개업을 한 소장은 "예전에는 거래가 너무 많아 새벽 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이 소장은 "월세가 워낙 내려가다 보니, 이제는 드문드문 남구나 북구에서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 숨을 쉬고 있다"라며 "최소한 1년 정도는 계속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cant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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