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유저 '소라넷'…여자들에겐 지옥이었다"

입력 2018-08-31 11:11  

"100만 유저 '소라넷'…여자들에겐 지옥이었다"
정미경 소설 '하용가' 몰카 피해자들 끔찍한 고통 그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한동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불법 사이트 '소라넷' 문제를 다룬 르포 성격의 소설이 나왔다. 정미경 소설 '하용가'(출판사 이프북스).
20대 중반의 평범한 여성 세 명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소라넷'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지옥 같은 공간인지 절절하게 보여준다. 소설은 대기업 계열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지수'가 금요일 밤 퇴근 후 친구 '희주'로부터 한 웹사이트 링크 주소를 메시지로 받으며 시작된다.
소라넷의 '여친게시판'이라는 곳에 "초대남 모집) 철주시 무호역사거리 골뱅이 따먹으실 용자"란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글이 게시돼 있었다.
"술 먹고 모텔방에 뻗어 계신 이분, 제 여친입니다. 술이 약해 소주 두 잔이면 기절 상태인데 오늘 무려 넉 잔을 마셨죠. 레몬소주가 달달하다고 홀짝거리더니 완전 골뱅이ㅋㅋㅋ 술 사줘, 가방 사줘, 여행 보내줘, 지극정성 다했더니 딴 놈이랑 XXX 다니다가 딱 걸렸습니다. 걸레 중에 대걸레, 오늘 마음대로 조져보시죠. (…) 용자님, 딱 세 분 초대하겠습니다. (…) 댓글 달아주시면 이곳 위치 쪽지로 보내드립니다." (9쪽)
'초대남 모집'은 정신을 잃은 여성의 나체를 찍어 공개하며 집단 강간을 함께할 범죄자를 실시간으로 모집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모인 남성들에 의해 윤간이 이뤄지고, 어떤 남성은 여성의 몸에 치욕적인 문구를 써넣기도 한다. 소라넷에서는 이런 게시물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관심을 끌고, 무려 100만여 명이라는 이용자들은 이런 끔찍한 범죄를 방조한다.


취업의 관문에서 허덕이며 제 일만으로도 벅차 남의 일에 별 관심이 없던 지수는 이런 현장을 보며 큰 충격을 받고 이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공포를 느낀다. 그러다 회사에서 동료 인턴 중 하나인 '화영'이 다른 인턴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콧대가 높다는 이유로 남자 인턴들에게 '김치년' 운운하는 욕을 먹는 것을 본다. 그러다 어느 날 친한 남자 동료 '시형'에게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섹스 동영상 속 여성이 화영인 것 같다는 얘기를 듣는다. 지수는 이 사실을 화영에게 전하고,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화영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화영은 동영상을 몰래 찍어 올린 범인이 누구일지, 과거 남자친구들을 되새겨 보지만 감이 잡히지 않다가 얼마 전 잠시 정신을 잃은 일을 떠올린다. 한 어학원에서 몇 달간 중국어 강사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일이 끝나고 남자 원장과 맥주 한 잔을 한 적이 있다. 화영은 당시 원장이 맥주잔에 수면제와 최음제를 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화영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소라넷에도 올라 입에 담지 못할 말들과 함께 놀잇감이 된다.
대학 시절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희주는 '메두사'라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하며 소라넷에 맞서려 한다. 메두사 회원들은 소라넷에서 벌어지는 성폭행 증거를 모두 채집·기록하고, 소라넷 사이트를 일시적으로나마 마비시키기 위해 '너 소라넷 하지?'라는 제목의 글로 도배해 공격하기도 한다. 소라넷에 관해 처음 문제 제기한 국회의원 진선미(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게 후원금을 십시일반으로 보내기도 한다.


이런 활동으로 소라넷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소라넷을 10여년간 방치해온 경찰은 2016년 네덜란드 경찰과 공조해 핵심 서버를 압수수색, 폐쇄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장을 지내고 소설가로 데뷔해 지난해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기도 한 정미경 작가는 이 소설에 '다큐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라넷은 대한민국 모든 여성의 창녀화를 꿈꾸었고, 여성의 몸을 저주로 만들어버렸다. 여성의 몸은 찍히고 파헤쳐지고 전유되며 침탈당하고 있었다. 그것을 목도한 여성들이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또 최근 다시 뜨거운 여성들의 '불법촬영 근절' 촉구 대규모 집회에 관해 "이 '붉은' 시위는 여성 피의자에 대한 편파수사로 촉발되었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인 불법촬영 범죄를 방관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과 여성의 일상을 앗아가는 디지털 성폭력의 카르텔을 고발하고 있다. 싸움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겨야 한다. 소라넷을 폐쇄시킨 것처럼, 불법촬영 범죄를 근절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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