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김기춘·최경환 모두 무죄…직권남용 판결 깐깐해지나

입력 2018-10-07 15:02  

이명박·김기춘·최경환 모두 무죄…직권남용 판결 깐깐해지나
공무원 '직무권한' 엄격히 해석…"사법농단 재판 사전포석" 의심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의 직권남용 혐의를 같은 날 모두 무죄로 판결했다. 최근 공직사회 적폐청산 수사에 자주 등장하는 직권남용죄에 대해 법원이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수사 선상에 오른 인물들도 상당수가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다. 이 때문에 압수수색 영장을 줄줄이 기각하며 검찰의 수사를 견제하고 있는 법원이 본격 재판에 앞서 직권남용죄의 판단 기준을 까다롭게 가다듬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7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이 전 대통령의 두 가지 직권남용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대통령 재직 시절 다스의 미국 내 소송을 지원하고 차명재산의 상속세 절감 방안을 검토하는 데 공무원들을 동원한 혐의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소송을 위해 외교관 경력은 물론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을 LA총영사로 임명하는가 하면 개인 재산관리에 국세청 파견 직원까지 동원하는 등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으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우선 지시가 외형상 대통령의 권한에 속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소송 지원이나 상속세 절감방안 검토가 대통령으로서 공무원에게 지시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보수단체를 지원하도록 요구한 혐의를 받는 김 전 실장 역시 같은 논리로 직권남용 혐의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최병철 부장판사)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경련에 특정 시민단체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명문의 법령상 근거는 찾을 수 없다"며 강요죄만 인정했다. 검찰은 대통령 비서실의 경우 광범위하게 민간에 협조를 요청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한 인턴 직원을 채용하라고 압박한 혐의를 받는 최 의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 의원은 당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으로 중진공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수원지법 안양지원 형사합의1부(김유성 부장판사)는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중진공에 대한 감시·감독 권한을 행사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거나 이를 암시하는 언동을 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나온 이들 판결을 두고 법원이 직권남용죄를 판단하면서 공무원의 직무권한을 점차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판례는 "명문이 없는 경우라도 법·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해서 그것이 해당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되는 경우 직권남용죄가 전제로 삼는 공무원의 권한에 포함된다고 본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무원은 법령상 규정 이외에 직무권한의 폭을 넓게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법원은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내도록 요구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대통령인 피고인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볼 수 있다"며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명문의 법령상 근거가 없다"거나 "개인적인 관계로 지시·요청하게 된 것으로 보일 뿐"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무원의 권한에 대한 판단에는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며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직권남용 혐의는 뇌물죄를 적용할 때처럼 직무권한을 포괄적으로 넓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들의 재판에 대비해 직권남용죄를 좁게 해석하며 '사전 정지작업'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헌법과 법률의 명문 규정을 따지면 판사의 재판 업무에 간섭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유죄가 거의 확실해 보였던 최경환 의원까지 같은 날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특정한 메시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검찰 간부는 "법원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판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보호 논리가 은연 중에 작동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의심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 7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든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의 상고심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때도 불거졌다. 김 전 실장은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당시 "박 전 대통령과 공모관계가 인정되는지, 직권을 남용하거나 공무원을 협박해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 등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전합 회부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중요 사건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경우가 많아진 만큼 법원이 전반적으로 꼼꼼히 살펴보는 것 같다"면서도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대비한 사전포석 아니냐는 우려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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