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우리민족 정체성 담았다…문학적 역량 쏟아부은 대표작"

입력 2018-12-11 18:11   수정 2018-12-11 18:31

윤흥길 "우리민족 정체성 담았다…문학적 역량 쏟아부은 대표작"
등단 50주년 맞아 대형 장편소설 '문신'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소설가 윤흥길의 5부작 장편소설 '문신'(문학동네)은 짧고 가벼운 호흡의 글을 선호하는 현 시대를 역행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다양성을 고취해 한국 문학을 풍요롭게 한다는 측면에서 노 작가의 역작은 우리 사회에 분명한 의의를 갖는다.
윤흥길 작가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한 식당에서 진행한 '문신'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소설이 미세담론으로 많이 흐르는 현재, 나이 먹은 나라도 큰 문제를 크게 다루는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문신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문신'은 '장마', '완장',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 소설로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그가 20년 만에 선보인 대형 장편소설이다.
올해 1∼3권이 출간됐고, 내년 상반기에 4∼5권이 나온다.
등단 50주년을 맞이한 윤 작가의 '문신'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노역이 한창인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그리고 갈등을 그려낸 작품이다.
산서 지방 천석꾼 대지주 최명배 가문을 중심으로 같은 시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인물들의 삶을 손에 만져질 듯 생생히 그려냄으로써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제목인 '문신'은 전쟁에 나가 죽으면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염원 하에 몸에 문신을 새기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에서 왔다.
부병자자 풍습은 '밟아도 아리랑'과 더불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다.
윤 작가는 "부병자자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치열한 귀소본능을 상징한다"며 "탄광 강제노역을 하는 조선 남자들이 아리랑 곡조에 맞춰 개사해 부른 '밟아도 아리랑'도 '밟아도 죽지만 말아라. 또다시 꽃피는 봄이 오리라'는 가사처럼 죽지 않고 살아서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윤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어휘 선택, 수사법 등 문장에 공을 가장 많이 들였다,
전라도의 판소리 정서, 율조 등을 다뤄 독자들에게 전라도 시골 토박이 정서를 전달하려 했다.
"불행과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의 험준한 고빗사위들이 고향과 가족들 두고 멀리 떠날 수밖에 없는 젊은 남정들 신체에 입묵된 부병자자 하나하나에 돋을새김으로 강조되어 있는 듯싶었다. (…) 굵다란 대바늘로 살을 쪼고 그 생채기에 먹물 넣어, 반드시 살아서 고향집 가족들에게 돌아오고 싶다는, 죽을 경우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선영에 묻히고 싶다는, 마지막 비원이 담긴 '生歸'(생귀)를 자자하던 그때, 죽음을 전제한 그 입묵 행위에 임할 당시 진용이 형님은 기분이 어떠했을까."(2권 84∼85쪽)
윤 작가는 특히 "최명배를 그리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며 "최명배는 못된 인간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굉장히 가장 잘 드러내는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짧게 등장하는 인물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윤 작가는 강조했다.
어릴 적 열병을 앓아 정신지체아가 된 머슴 춘풍이, 부엌 어멈 섭섭이네 등도 개인의 성격적, 언어적 특성 등을 살려 차별화했다.
'문신'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러한 살아있는 묘사는 윤 작가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젊을 적 자신이 작가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국어사전을 외우는 등 노력과 뚝심으로 부족한 재능을 극복했다.
"5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국어사전의 단어를 익혀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동안에는 가독성을 위해 단어 선택 등에서 타협을 많이 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독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가 쌓아온 모든 것, 제 문학적 역량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윤 작가는 최근 문학이 한 곳을 향해 모두가 일제히 달려가는 모노컬러(단색) 현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모노컬러 현상은 문학을 왜소화, 궁핍화하는 만큼 다양한 문학 형태가 공존해야 사회가 문화적 다양성과 풍요성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문신'은 현재 문학계에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작품은 시대를 역주행하는 듯 보입니다. 다들 글로벌 시대를 얘기하고 있는데 우리 민족,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죠. 하지만 우리가 거쳐온 과거를 되돌아봐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낡은 주제와 일제 말기라는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하소설, 장편소설, 단편소설 등 다양한 형태와 분량의 소설이 존재하는 것이 이상적인 문학 풍토라고 생각한다는 윤 작가는 후배들도 다양한 작품을 집필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독자의 취향이 '경박단소'(輕薄短小)로 흐른다고 해서 작가들이 꼭 그에 맞춰 작품을 '주문 생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또 문학을 하는 이들만이라도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기억하고 지켜나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는 거대 담론, 미세 담론 모두가 필요하죠. 대하소설, 단편소설을 작가들이 다양하게 생산하는 가운데 읽고 싶은 사람이 읽는, 그런 풍토가 형성됐으면 합니다."

bookman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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