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체육계 성폭력, 전형적인 권력 구조 문제라는데…

입력 2019-01-11 11:05  

[팩트체크] 체육계 성폭력, 전형적인 권력 구조 문제라는데…
10여년 전 양상 그대로 되풀이…"대책 관철될 때까지 지켜보며 추적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심석희 선수의 폭로를 계기로 부상한 체육계 성폭력 문제.
'조재범 코치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청원 글에 11일 현재 24만여명이 서명하는 등 많은 사람이 조 전 코치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가운데, 체육·시민단체는 선수와 지도자 간 권력 구조에 주목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빙상인연대와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100인의 여성 체육인,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8개 단체는 전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수와 지도자 관계의 전형적인 권력 구조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를 지낸 여준형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는 "체육계 전반의 수직적인 구조가 (폭력의) 가장 큰 요인이며 특히 빙상은 특정인의 권력이 커서 공론화가 힘들다"고 말했다.
수년간 성폭행과 폭행에 시달렸고,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용기를 냈다는 심 선수의 지적 역시 이러한 사건이 체육계에서 빈번하게 되풀이된 관행임을 짐작게 한다.



이들의 지적대로 지도자와 선수 사이의 폭력·성폭력 문제는 구조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특정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지도자가 선수의 미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다, 폐쇄적인 운동 시설에서 훈련이 이뤄지고 때때로 합숙까지 하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인권 침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한다.
오랜 기간 체육계 성폭력 문제를 연구해 온 주종미 호서대 교수는 지난해 8월 '체육계 성폭력 문제 원인분석과 해결방안 모색'을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체육계의 특수성과 성폭력의 특징이 맞닿아 있다"며 "폐쇄적인 상황에서 신체 접촉이 있고 (선수와 지도자 사이에)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인권 침해의 온상인 합숙소를 전면 폐지하고 지도자 선발 시 성폭력범죄 경력 조회와 인권 보호 서약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검증 체계를 강화해야 하며, (선수에 대한) 지도자의 절대 권력도 분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육계 폭력·성폭력 문제가 10여년이 넘도록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도 위계적인 권력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체육·시민단체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 2007년 여성 프로농구단 우리은행의 박명수 당시 감독은 선수를 성추행해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한국여자농구연맹에서 영구 제명됐다.
그로부터 얼마 뒤 한 시사프로그램은 박 전 감독 사건을 비롯해 체육계 전반의 성폭력 실태를 보도해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고, 정부가 실태 파악에 나섰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5월부터 6개월간 전국 중·고등학교 남녀 학생선수 약 1천2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여 조사 대상 약 78%가 폭력을, 64%가 성폭력 피해를 겪었고, "성폭력 발생은 불평등한 권력 구조나 위계적인 폭력 문화와 구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펴냈다.
그러나 최근 심 선수의 폭로에서 알 수 있듯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점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학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체육계 폭력·성폭력 문제에 대한 비판 역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핸드볼 선수 출신 최희윤 씨는 2013년 서강대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 '한국에서 핸드볼 선수로 살아가기 : 은퇴 여자핸드볼 선수의 삶에 관한 내러티브 연구'에 폭언과 폭력, 성추행에 시달린 전직 고교 핸드볼 선수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한 전직 선수는 이 논문을 통해 "인간 취급도 못 받으면서 운동한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이 논문을 지도한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문제를 일으켜) 잘라낸 사람들도 얼마 있다가 다시 받아들여지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피해 선수들이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학습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금처럼 국민적 관심이 있을 때 뿌리부터 바꿀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면서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을 문제인 만큼 5년, 10년 동안 대책이 관철되는지 지켜보고 끝까지 추적하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gogog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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