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탈출] '한겨울 딸기꽃처럼'…안동 '딸기왕자' 손진수씨

입력 2019-03-11 08:01  

[도시탈출] '한겨울 딸기꽃처럼'…안동 '딸기왕자' 손진수씨

(안동=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하다가 안 되면 시골서 농사나 짓지…"
이런 식의 자세를 갖고 덤벼들면 백전백패한다고 귀농·귀촌 선배들은 입을 모은다.
어느덧 찾아온 은퇴, 시골에 살면서 농사나 짓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출발했다면 꿈을 깨라.
SNS와 기동성을 갖춘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뛰어들고 있다.



"20분 안에 배달됩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한 청년이 전화로 딸기 주문을 받는다.
그는 미리 수확한 딸기 몇 상자를 승용차 뒷좌석에 실은 뒤 안동 시내의 한 마트로 향한다.
도착해 몇 박스를 내려놓은 뒤 현금을 건네받았다. 중국음식점의 짜장면 배달 만큼이나 간단하다. 딸기가 산지에서 마트까지 납품되는 과정이다.
유통 과정에서 가장 짓무르기 쉬운 과일 가운데 하나가 딸기지만, 경북 안동시 남후면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딸기 왕자' 손진수(29)씨의 상품은 짓무르는 법이 없다.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아 수확에서 배송까지 하루가 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딸기 왕자'는 친숙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그가 사용하는 닉네임이다. SNS와 명함, 전단물 우편 발송 때 주로 활용한다고 한다.
손씨는 2016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부모님이 귀농한 안동으로 내려갔다. 부모가 모두 그의 귀농을 반긴 것은 아니다.
어머니 최화연(51)씨는 심지가 굳은 아들이 농촌에서도 잘 해낼 것이라며 기왕 내려올 것이라면 빨리 오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아버지 기봉(53)씨는 반대했다.
아들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편하게 일하는 직장을 계속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기껏 대학까지 보내 키워낸 자식이 농사를 짓겠다니…



◇ 깔끔한 사무실 같은 비닐하우스

그러나 손씨가 일하는 비닐하우스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일하던 도시의 건물 내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비닐하우스 안은 쾌적했다. 밖은 영하의 날씨였지만 내부는 20도가량을 유지했고, 하얗게 핀 딸기꽃 위로 꿀벌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또 비닐하우스 바닥부터 천장 끝까지 흙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존의 땅 위에 딸기를 심는 토경(土耕) 재배가 아니라 양액(養液) 재배이기 때문이다.
양액 재배는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양분을 수용액으로 만들어 공급하는 재배 방법으로, 땅에서 띄워 높이 설치한다고 해서 고설(高設) 재배라고도 부른다.
보통 지상 1.5m 높이에 설치한 베드에 딸기 모종이 담긴 상자를 놓은 뒤 관을 통해 양액(영양분)을 공급한다.
토경 재배보다 30%가량의 노동력 절감과 생산량 증가, 각종 질병 발생 감소 등의 이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허리를 구부려 작업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손씨의 비닐하우스는 일정한 온도가 되자 환기 시스템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마치 잘 관리되고 있는 공장 같은 느낌이다. '이것이 어떻게 농업이란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우스 내·외부에 설치된 CCTV는 손씨의 스마트폰과 연결돼 한눈에 현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남후면 딸기 작목반 27개 농가, 하우스 90동 가운데 양액 재배를 하는 곳은 손씨네가 유일하다.



◇ 부모와 농민사관학교로부터 농업을 배우다

손씨 가족은 부모가 먼저 귀촌을 한 케이스다. 안동에 살던 아버지는 1980년대 후반 스무살의 나이에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 상업에 종사하다 2008년 다시 안동으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시내에서 고깃집을 하던 그는 2014년 고향인 남후면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들 진수 씨는 그해 9월 대전의 한 의료기기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2년이 지나자 갑자기 회사생활에 회의가 밀려왔다.
"샐러리맨의 미래가 뻔해 보였다"는 그는 과감히 사표를 썼다.
가끔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농업의 가능성을 알게 된 것도 결심에 영향을 줬다.
부모 옆에서 같이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빨리 정착하면 농업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대전 생활을 정리한 그는 부모님이 하던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



농업에 대한 배움이 짧다고 느낀 그는 이듬해인 2017년부터 경북도에서 진행하는 1년짜리 프로그램인 '농민사관학교' 과정을 2년 연속 이수했다.
이 프로그램은 경북도가 매년 수백 명의 농업인을 선정해 이론과 실제를 교육하는 과정이다.
손씨는 4H 클럽 활동도 시작했다. 4H 클럽은 농업구조와 농촌 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적인 청년 민간단체로, 회원들 간에 친목은 물론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지난해 4월에는 국가에서 뽑는 청년창업농으로 선정되는 행운까지 얻었다.
청년창업농은 농업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창업 초기 생활 안정을 위해 매월 최대 100만원을 최장 3년간 지원하는 제도다. 지난해 1천400명을 선정했는데, 안동에서는 손씨를 포함해 모두 14명이 뽑혔다.



◇ 재배는 어떻게? 어디로 팔리나?

딸기 수확을 위해서는 모종이 필요하다. 10월께 다음 해 모종을 위한 '모주'를 준비해서 키운다. 수확이 한창인 3월에 모주를 심으면 넝쿨이 뻗어나온다.
8월 말이나 9월 초에 베드에 정식(定植·아주심기)을 하게 되면 11월 중순부터 시작해 5월까지 수확이 이뤄지게 된다. 이런 식의 재배 방법을 쓰는 농가는 이 동네에서 손씨네가 유일하다.
손씨가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는 이중 구조로 돼 있다. 지하수를 끌어올려 바깥 하우스와 내부 하우스 사이를 뿌려주면 한겨울에도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해 뜨기 전 기온이 더 떨어지면 내부에 설치된 열풍기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손씨와 함께 1박 2일 동안 머무르며 딸기 배달을 함께 다녔다.
처음 딸기를 배달한 곳은 용상동의 진마트. 용상동은 안동의 전통적인 딸기 산지다. 진마트 부근에도 딸기 농가가 있지만, 마트 측은 20여 분 거리의 손씨 농장으로부터 딸기를 배급받는다.
이유가 뭘까? 진마트 업주는 "무르지 않고 단단한 딸기 육질과 신선함 덕분"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들이 손씨의 딸기를 선호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전거리의 '츈츈'이라는 작은 카페다. 이곳에서는 딸기를 재료로 한 케이크를 팔고 있었는데 달콤하고 신선한 그의 딸기가 능숙한 제빵사들의 손끝을 통해 새로운 디저트로 거듭났다. 딸기의 재탄생이다.
이곳에서는 딸기 케이크가 유독 인기가 높다고 한다.
손씨는 이후 여러 매장을 돌며 딸기를 납품했다. 안동의 요지인 옥동에 차려진 사회적 기업 '커피킹덤협동조합' 카페에는 딸기 수십 박스가 한꺼번에 배달됐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지원으로 설립된 이 카페에서는 딸기를 갈아 만든 딸기우유인 '로얄 딸기 보틀'이 시그니처 음료로 팔리고 있었다.
손씨의 딸기를 재료로 한 음료가 요즘 안동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카페의 메인 메뉴로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 규모와 수입은 얼마쯤?

손씨 가족이 일하는 하우스는 모두 4동이다. 3천500㎡ 부지에 지어진 4동의 하우스는 모두 이런 양액 재배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4동을 짓는 데 총 1억원이 들었다. 비용 절반은 지원을 받았다. 물론 땅은 본인 소유다.
하우스 가격을 제외한 내부 시설을 만드는 데도 1억여원이 들었다. 일꾼은 가족 3명이 전부다. 일손이 달리는 명절 전에는 가끔 알바를 쓰지만 1년 내내 거의 3명이 일한다.



딸기의 수확 철은 11월부터 다음 해 5월 말까지다. 1년에 6개월가량 수확이 가능하다.
바로 앞에서 40년간 딸기 농사를 지어왔다는 김모 노인이 하우스로 들어와 한마디 한다. "이 사람들 너무 잘 팔아. 배 아파 죽겠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이 사람들은 한 상자에 몇천원씩 더 받아요. 공판장에 내다 팔지 않고 직접 소매를 하니까…"
노인이 공판장에 내다 팔면 박스당 2만원짜리 상품의 경우 6%의 수수료를 뗀다. 수수료 1천200원에다 운반비로 200원을 더 떼니 김 노인 손에 들어오는 돈은 상자당 1만8천600원이다.
중간상인은 이 딸기를 2만원에 인수해 자기 이익을 보고 소매점에 넘기면 소비자들은 보통 2만5천원 내외로 산다.
그러나 손씨네는 소매점을 직접 공략해 딸기 한 상자를 2만2천원가량에 판다.
다른 농가보다 상자당 3천원 이상 더 버는 셈이다. 많이 나갈 때는 하루에 70상자가 팔릴 때도 있다고 하니 다른 농가와의 수익 차이는 하루 20여만원이 되고, 한 달에 20일만 일한다고 해도 400만원이 넘는다.



이처럼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소매상을 직접 공략해 수익이 늘게 된 건 손씨의 귀농으로 정보와 기동력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4동의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수익은 1년에 7천500만원가량.
손씨는 안동 시내 유치원 등에서 단체로 방문해 딸기를 직접 따가는 체험 활동도 유치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연간 2천여만원의 추가 수익이 나온다. 지난해에만 1천600명이 체험 활동을 하고 갔다고 한다.

◇ 다양한 인맥 형성과 끈끈한 가족애 장점

손씨는 도시에서 샐러리맨으로 생활할 때보다 인맥이 훨씬 넓어졌다고 말한다.
도시에서는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만을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농업을 하면서부터 손씨의 농업에 흥미를 느낀 지역 공무원이나 정치인, 약사, 의사, 실업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손씨는 "부모님과 함께 일하면서 성장하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고 했다. 손씨는 하우스에서 작업할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그에 맞춰 어머니와 덩실덩실 춤도 추면서 딸기를 수확하고 모종을 낸다.
그는 이런 순간들이 너무 좋고, 도심에서 바쁘게 살았으면 결코 접할 수 없었던 행복이라 말한다.



◇ 청년창업농의 꿈과 그가 생각하는 귀농 전략

그는 가까운 시일 내 본인 만의 비닐하우스를 열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땅만 확보되면 인근에 하우스 몇 동을 지어 독립할 예정이다. 몇 년 동안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독립한 뒤에 자리를 잡으면 결혼하겠다는 꿈도 꾸고 있다.
그는 귀농인들은 무엇보다 자신처럼 최소 몇년간은 시골에 내려와 몸으로 부딪혀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작물을 할 것인지, 어떤 농지가 적합한지는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경치가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덜렁 귀농해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일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농업은 진입이 쉽지만, 누구나 끝에 웃기는 힘든 일이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재배 붐이 일었던 아로니아의 예를 들면 이해가 된다.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요즘 아로니아 가격은 폭락했다.



그는 작물 선정과 도시 접근성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딸기의 경우 대도시 인근이 좋다. 체험 활동을 원하는 유치원 등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소도시 지역도 잘만 고른다면 손씨처럼 승산이 있는 경우를 만날 수 있다.
군 단위로 귀농하는 경우에는 사과처럼 보관이 용이한 작물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군 지역 가운데 귀농 지원을 많이 해주는 곳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잘 살펴보면 옥석을 가릴 수 있다고 손씨는 강조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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