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박은옥 "시대가 날 깨워…다시 새로운 깃발 들라네요"

입력 2019-03-07 16:42   수정 2019-03-07 17:08

정태춘·박은옥 "시대가 날 깨워…다시 새로운 깃발 들라네요"
데뷔 40주년 기념 프로젝트…내달 앨범 '사람들 2019' 내고 순회공연
"음악 다큐 영화 촬영 중…'시장 밖 예술'이란 파도 기대"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시대가 저를 깨웠어요."
정태춘(65)에게 "노래는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그는 노래로 자신이 디딘 농촌 사회의 향수를 목가적으로 그리고, 시대의 부조리에 눈뜨면서 분노도 드러냈다.
그래서 그에겐 상반된 수식어가 한 몸처럼 붙는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음유 시인', 사회 모순에 저항한 '노래 운동가'.
나아가 그는 1980년대 말부터 전교조 합법화 순회공연, 가요 사전심의 철폐 운동, 고향인 평택 대추리 미군 기지 확장 저지 공연 등 사회 변혁을 위한 실천주의 예술가로 투쟁했다.
1978년 데뷔한 정태춘과 이듬해 데뷔한 박은옥(62) 부부가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정태춘의 걸음에는 맑은 음색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동반자 박은옥이 있었다.
정태춘은 7일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의 존재와 실존적인 고민,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냈으니 노래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은옥도 "다음 생에 태어나도 또다시 음악 하는 사람이고 싶다"며 "소망은 정태춘 씨처럼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 예술가 부부 40년을 조명하고자 지난 1월 144명이 모인 기념 프로젝트 사업단이 꾸려졌다. 이달부터 앨범과 공연, 출판, 학술, 전시를 망라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다.
4월 초 부부의 7년 만의 앨범 '사람들 2019'가 출시되며, 4월 13일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공연 '날자, 오리배'가 개최된다. 정태춘 시집 '노독일처'가 복간되고, 다른 시집 '슬픈 런치'와 에세이 형식의 가사 해설집도 출간된다. 프로젝트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부부의 다큐멘터리 음악 영화도 촬영 중이다.
절필하듯 한동안 음악 창작을 중단한 정태춘은 이날 그 이유로 자신의 음악과 대중의 거리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또 시장성이 없으면 존재가 사장되는 최첨단 문명사회를 꼬집으며 "주위에서 다시 깃발을 들라 한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하지 않고 대중과 공유하는 '시장 밖 예술'이란 파도가 저희 내부에서 이야기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프로젝트 사업단 김준기 총괄감독도 "두 분의 예술 활동을 돌아보며 지금 예술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할지 고민"이라며 "두 분의 현재성을 풀어나가기 위해 '시장 밖 예술'이란 키워드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정태춘-박은옥 부부와 일문일답.



--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회는.
▲ 특별한 소회는 없다. 노래 창작을 접은 지 오래고 시장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일을 벌이면서 만난 사람들, 팬들 반응을 보며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진지하게 들어준 분이 많아 감사하다.(정태춘, 이하 정)
▲ 제 나이가 50·60세 넘어가도 심란하지 않을 정도로 숫자에 예민하지 않다. 정태춘 씨와 생각이 비슷하다. 오래 노래할 수 있게 해준 많은 분이 있구나, 정태춘 씨가 인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정태춘 씨가 1978년, 내가 1979년 데뷔해 2009년 나의 30주년 때 함께 공연한 터라 이번엔 정태춘 씨를 위해 공연하겠다는 생각이 크다.(박은옥, 이하 박)
-- '촛불',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등 한국 정서를 담은 목가적인 노래를 부르다가 7집 '아, 대한민국...'이 활동 변곡점이 됐는데.
▲ 제게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그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있었다. 저뿐 아니라 그 시대를 함께한 사람들이 똑같이 체험했듯이 군사 독재 시절, 광주 민주 항쟁, 시민들의 저항 이런 것이 제게도 똑같이 영향을 미쳤다.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저도 깨어나고 변화했다. 비로소 어른, 시민이 됐다고 할까. 나를 깨워준 건 우리 시대다. 많은 것과 연대하면서 그 시대 변화를 위해 동참했다. 그땐 그 노래가 제게 정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앨범을 안 듣는다. 내가 저항 가수가 되겠다, 가수 활동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 속에 나온 게 아니라 분노에서 나온 앨범이다. 창작자의 마음에 그런 분노가 없고서야 어떻게 제삼자처럼 그런 노래를 만들겠나. 그 당시엔 노래 미학이나 고정관념을 고민할 필요 없이 제 안에서 솔직히 나온 분노를 담았다. 자연스러운 흐름의 앨범이었고, 이후 변화도 내 생각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 내게 네 번째 깃발을 들라고 하더라. 하하.(정)
▲ 얼마 전 방탄소년단 소속사 방시혁 대표의 서울대학교 졸업 축사를 봤는데, 분노와 불평이 동력이 됐다고 하더라. 그걸 읽으며 정태춘 씨를 생각했다.(박)


-- 네 번째 깃발이란.
▲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공연을 통한 전교조 합법화 싸움, 음반 사전 검열 철폐 운동, 평택 미군 기지 확장 반대 운동에 이은 깃발이다. 시장이 모든 걸 장악하고 이윤이 발생하지 않으면 존재가 사장되는, 최첨단 산업문명 사회에서 시장 밖의 무언가를 만들자란 이야기다. 시장 메커니즘을 통하지 않고 대중과 공유하는 예술과 문화, 즉 '시장 밖 예술'이란 파도가 저희 내부에서 이야기되고 있다.(정)
-- 부인은 이런 남편의 사회적인 활동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 정태춘 씨가 '촛불'과 '시인의 마을'로 혜성같이 등장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가 1987~1988년 기점부터 노래가 변했다. 이 사람은 '초기 노래는 개인 일기였고,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 모두의 사회 일기였다'고 말한다. 그게 가장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 초기 노래를 좋아한 분은 '변해서 충격이다, 배신감 느낀다'고 했지만 7집 '아, 대한민국...'과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낼 때는 다른 세대를 만나 호흡했다. 어떤 앨범이든 정태춘의 노래에는 관통하는 한 가지가 있다. 서정성과 서사성이다. 가장 안쓰러웠던 때는 1990년부터 음반 사전 검열과 맞서 싸울 때다. 6년 만인 1996년 법(음반 사전 심의제도)이 없어져 후배들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정태춘 씨가 가장 잘한 일이다.(박)


-- 2012년 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7년 만에 기념 앨범 '사람들 2019'를 낸다. 신곡 2곡과 8집의 '사람들'을 개사하고 기존 곡도 다시 불렀다고.
▲ 딸(일러스트레이터 겸 가수 정새난슬)이 앨범 콘셉트를 '늙은 목소리로 젊은 시절의 노래를'이라고 했다. 그것만으론 아쉬울 것 같아 새 노래 '외연도에서'와 '연남, 봄날'을 수록했다. 좀 묵힌 곡인 '외연도에서'는 과거 한 방송사 여행 프로그램 출연 때 대천 앞바다 외연도에 들어갔다 나와서 만든 노래다. '연남, 봄날'은 오래 노래를 안 만들다가 1월 가족을 위해 썼다. 우리가 한 몇 년간 힘든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상황이라 가족이 봄기운을 느끼며 새 출발 하자는 마음을 담았다. 정작 박은옥 씨와 딸은 '노래 별론데' 하더라. 난 열심히 녹음했다.(정)
▲ 40년 살던 송파에서 지난해 연남동으로 생활 공간을 옮겼다. 저도 한 곡 불러달라며 '연남, 봄날'을 만들어줬는데 본인은 가사를 쓰며 울컥했던 모양이지만, 저는 그 감정까진 안 생기더라. 그래서 당신이 부르라고 했다. 정태춘 씨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노래가 아닐까.(박)
-- '사람들'을 개사한 '사람들 2019'는 어떤 노랫말로 바뀌었나.('사람들'에는 '작년엔 만삼천여명이 교통사고로 죽고/ 이천삼백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고…'란 가사가 있다)
▲ 가사를 지금 시점에서 다시 정리했다. 이 한 곡에만 시사적인 내용이 들어갔는데 가족 이야기, 이웃 풍경도 나온다. 2018년 자료가 없어서 2017년 자료를 갖고 우리 사회에서 어떤 죽음이 있었는지 담았다. 우리 사회에 가장 심각한 단어가 차별이라 생각한다. 그 이야기도 얼핏 '사람들 2019' 속에서 드러나기를 바랐다.(정)


-- 오랜 시간 음악 창작 활동을 하지 않았다. 동력을 상실한 이유는.
▲ 9집 '정동진/건너간다'와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내며 시장에서 철저히 반응이 없는 상황을 맞았다. 노래 정서와 대중성 측면도 있겠지만, 나름 고민을 담았다고 여겼는데 피드백이 없었다. 대중예술이라면 대중의 기호와 취향을 따라가야 하는데 난 그 부분이 부족한 사람이고 내 생각으로 깊이 들어갔다. 세계가 변하고 한국 사회가 나아지고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에 동의하지 않았다. 과거 우리 시스템 내부 문제를 갖고 싸우는 데서 나아가 세계, 인간과 문명의 문제로 관심이 변하게 됐다. 문명이 만든 산업 시스템, 산업주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고 대중의 취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노래는 나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었는데 그걸 담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진, 가죽공예를 했고 지금은 붓글씨를 쓴다. 붓글로는 계속 내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야기 통로가 생기니 노래에 매달리지 않게 됐다. 난 서예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어서 '막글'이다. 글씨의 조형성도 중요하겠지만, 내겐 글의 내용이 중요해 임의로 붓글이라 표현한다.(정)


-- 두 분 삶에서 노래는 어떤 의미인가.
▲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또다시 음악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소망은 정태춘 씨처럼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난 40년간 목소리로 표현했지, 글을 쓰고 곡을 만들고 해보지 못해 옆에서 부러웠다.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이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란 절망도 느꼈다. 음악이 없는 삶은 생각해보지 않았고 다음 생에도 노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박)
▲ 초등학교 때 시골 농촌 마을에서 기타를 처음 만났고, 바이올린을 배운 뒤 창작을 했다. 얼떨결에 가수가 돼 창도 하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마구 진행된 노래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정을 다해 뛰어들었다. 나의 존재와 실존적인 고민,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냈으니 노래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정)
mim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