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비껴간 한국의 '바리'들, 세계 현대미술 중심에 서다

입력 2019-05-09 21:10  

역사 비껴간 한국의 '바리'들, 세계 현대미술 중심에 서다
한국관, 최승희·여성국극·바리설화 엮어 주체적 여성의 삶·미학 조명
감각 뒤흔드는 정은영 영상 호응…몸 강조하는 경향 두드러져



(베네치아=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9일(현지시간) 언론에 사전공개된 2019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주인공은 '바리'였다.
한국 전통설화 주인공인 바리는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지지만,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부모를 구한 뒤 신이 된다. 김현진 예술감독과 남화연·정은영·제인 진 카이젠 작가가 꾸민 한국관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외치는 '바리'의 몸짓과 목소리로 가득 찼다.
가장 인상적인 작업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미학'을 찾아 나선 정은영 작업이었다. 정은영은 1950년대 전후 남장 여자 배우가 참여해 엄청난 인기를 끈 여성국극을 10여년간 연구해왔다.



정은영은 먼저 전시장 입구에서 2세대 여성국극 배우 이등우의 연기를 기록한 영상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후 별도 전시장에서 트랜스젠더 음악가 키라라·레즈비언 배우 이리·중증장애인 배우 서지원·드랙킹 아장맨의 삶을 조명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3면을 통해 펼쳐진 영상은 온몸의 감각을 뒤흔들었다. 외국인 관람객 대다수는 영상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빠른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정은영은 "이들 넷은 한국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살면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일궈내면서 독창적인 미학을 만들어 냈다는 공통점이 있다"라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늘 존재했던 이들"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에 입양돼 자란 제인 진 카이젠은 '버려진 딸' 바리 설화를 재해석한 영상 '이별의 공동체'를 선보였다.
영상은 철원 지역에 버려진 지뢰를 밟고 다리를 잃은 여성과 동두천 낙검자(성병 감염인) 수용소를 전전한 여성, 카자흐스탄 고려인 이주 여성 등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전하면서 "우리가 모두 바리"라고 읊조린다. 작품은 제주 4·3사건 생존자이기도 한 무당의 퍼포먼스와 리듬을 같이한다.
제인 진 카이젠은 "성차별 문제를 경계 문제로 해석했다"라면서 "이는 전쟁과 국가주의, 이주 등 근대 사회의 선 긋기와 더불어 사유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남화연이 영상 '반도의 무희'에서 불러낸 논쟁적 무용가 최승희 또한 식민과 제국주의, 분단의 복잡한 현실 속에서 삶이 뒤엉킨 인물이다.
"다큐멘터리를 지양한" 아름다운 영상은 '코스모폴리탄 안무가' 궤적을 따라가는 한편, 최승희가 구현하려 한 동양 무용을 상상해 펼쳐 보인다.



이들 작업은 춤과 굿, 안무 등 '몸'을 부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여성국극과 바리설화, 최승희 등 전통에 뿌리를 둔 것도 공통점이다.
김 감독은 "동양적 가치를 오리엔탈리즘 적으로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 문화를 달리 보는 하나의 창구이자, 쓰이지 않은 관점과 역사를 다루려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1995년 전통 국가관 권역인 자르디니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선 한국관은 원체 협소하고 구조도 복잡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 전시는 이를 고려해 각자 작업이 서로 방해하지 않으면서 관람객이 유연하게 감상하게끔 동선을 짜려고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남화연 작업 앞에는 계단 형식 구조물을 설치, '반도의 무희'와 도시 풍경을 한눈에 감상하도록 했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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