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뚜벅이' 베를리너 7개월 하승창 "도시혁신이 사회혁신"

입력 2019-05-26 07:15  

[인터뷰] '뚜벅이' 베를리너 7개월 하승창 "도시혁신이 사회혁신"
베를린서 전쟁·분단의 기억공간·재생공간에 주목
"문재인 정부, 패러다임 변화 추구…실행단계서 정치 더 강화돼야"
향후 거취엔 "사람들 만나 고민해볼 것"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걸으면서"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동네에서 '걸으면서' 만나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도시재생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도시혁신이 이뤄진다는 맥락에서다.
시민사회 출신인 하 전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 정부 출범과 함께 수석진에 들어갔다.
1년여 간의 청와대 생활을 마친 뒤 지난해 10월 중순 독일 베를린자유대 방문학자로 왔다. 이달 말 베를린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그를 지난 24일 만났다.
하 전 수석은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을 지내면서 문제의식을 키워온 도시재생을 파고들었다. 지난 7개월간 '뚜벅이'로 베를린 곳곳에 발자취를 남겼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벙커, 양조장, 가스저장소, 전쟁의 잔해로 쌓은 언덕 등이 어떻게 일상적인 공간이 됐는지, 동서독 분단의 상흔들이 어떻게 일상의 기억 속으로 들어왔는지에 주목했다.
그는 도시재생이 인구구조의 변화, 기후변화 등 시대의 변화, 소득 및 사회안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포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 전 수석은 "도시재생은 쇠퇴하는 도시를 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고령화와 기후변화 등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는 도시혁신이어야 한다"면서 "도시혁신이 사회혁신으로 이어져 공동체 발전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베를린에 있는 동안 많이 살펴보지 못했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벌써 내년 총선에서 출마 가능한 여권 인사로 언론에 이름이 오른다. 아직 그는 향후 진로에 대해선 물음표를 남겼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발전 전략은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것인데,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는 고령화와 기후변화, 청년실업, 4차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없다"면서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우리가 문제들을 풀어가는 실행단계에서 조금 더 정치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하 전 수석과의 일문일답.


-- 베를린의 도시재생에서 무엇을 느꼈나.
▲ 도시재생을 쇠퇴하는 도시를 경제적으로 다시 살리는 것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잘 살게 해주는 게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삶에 맞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주목해 도시재생을 추진해야 한다.
새로운 높은 빌딩이 가득한 공간이라고 해서 도시재생의 예외가 아니다. 파생되는 문제를 보완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에 맞는 공간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도심으로의 인구 쏠림 현상은 계속된다. 도시는 주요 삶의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도시재생을 고민해야 한다.


-- 베를린은 키츠(Kiez·도시의 구역) 중심 문화다. 키츠 내에서 이동과 소비가 많이 이뤄진다. 서울 등 우리나라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데.
▲서울은 1970∼1980년대 개발전략에서 아파트 지역, 사무공간, 놀이 공간 등이 확연히 나뉘어있다. 신도시도 베드타운화돼 있기 때문에 도시재생에서 더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제 환경이 변하고 있다. 서울에서 1인 가구가 30%가 넘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추세 속에서 도시에서 재생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어떻게 생산할지, 에너지 소비를 어떻게 줄일지 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시대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시의 삶을 어떻게 가꿔나갈지도 바뀌게 된다.
서울에서 과거 청계천 개발과 도시 중앙차선 폐지, 육교 대신 횡단보도 설치, 고가도로 철거 등의 과정에서 도시가 바뀌기 시작했다. 고가도로와 육교가 사라진 자리에 사람들이 걷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카페가 생기고 공간이 활기를 띠게 됐다. 조금 더 과감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이런 공간은 여러 이벤트로 이어질 수 있다.
-- 베를린은 지역의 작은 광장들 위주로 사람이 모인다.
▲ 우리와는 다른 점이다. 여기선 오래된 가게들이 여전히 잘되는 것 같다. 구매력 있는 연금생활자들이 동네의 오래된 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사회주택에서 많지 않은 임대료를 낸다. 임대료 상승 폭도 제한돼 있다. 주거 안정과 사회안전망이 갖춰진 상황에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 우리나라에서 도시재생에 대한 관점이 달라 많은 갈등이 빚어지는데.
▲ 독일 통일 후 다시 수도가 된 베를린을 재정비할 때도 갈등이 많았다. 당시 재정비 책임자가 한스 슈틸만이었는데, 1991년부터 2006년까지 재정비 작업을 지휘했다. 그는 '비판적 재건'을 내걸었다. 원형 복원을 중시하고 기존 구도심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은 공간에 새로운 건물을 세웠다.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현대적 감각으로 도시를 재구성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어쨌든 '비판적 재건'은 베를린의 특색을 만들었다. 자본이 몰려들지 않은 탓에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전 베를린 시장의 발언)라고 불리게 됐다. 1960년대 초까지 영화제작소였다가 수십 년간 방치됐던 우파 파브릭(ufa fabrik) 등은 주민들을 위한 생태적 공간이 됐다. 쇠락해가는 옛 서독의 구도심에 활기를 주기 위한 새 건물인 비키니베를린은 젊은 창작자들의 창업공간이 됐다.


-- 서울에서도 재생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가.
▲ 송파구 인근의 한 기업의 창고 자리에 생긴 헌책방인 서울책보고를 주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채우면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 베를린에는 부자동네도 있고 슬럼가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다른 여러 계층이 공존하는 지역이 많다. 서울은 지역 간에 계층적 벽이 있는데.
▲ 개발시대부터 만들어진 서울의 특징이다. 지금의 고시원보다 나은 1인 주택을 포함해 여러 가구 형태가 공존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그러면 한 공간에서 아이들 목소리도, 어르신들의 목소리도 듣게 된다.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중심에 놓은 뒤 사람 간의 관계가 형성되도록 해야 하는 게 도시재생의 핵심이다. 그래야 활기를 띠는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 유럽에서 난민과 이민자가 많이 몰린 일부 도시는 생활환경이 악화하는 부작용도 발생하는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 마이너리티의 공간에서 문화예술의 역할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이 변화를 이끈 부산 감천마을이 좋은 예이다.
-- 청와대에 몸담았다가 떨어져서 바라보니 어떤가.
▲ 문재인 정부의 발전 전략은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것인데,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는 고령화와 기후변화, 청년실업, 4차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없다.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우리가 문제들을 풀어가는 실행단계에서 조금 더 정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 도시재생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중요할듯한데
▲ 베를린에 와서 돌이켜보니 수석 시절 추진했던 행정절차의 개혁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 주도의 공청회를 열 수 있는 여지를 넓혀 주민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행정적 절차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개발시대의 산물과 공간도 우리의 현재다. 주민들이 전문가와 함께 의미 있는 공간으로 채색하는 과정이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을 관료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귀국 후 계획은. 언론에서 차기 총선 출마 예상자로 언급되기도 한다.
▲ 귀국 후 어떤 일에 쓰임새가 있을지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고민해보겠다. 시민사회, 사회혁신에 대한 키워드를 계속 안고 가려 한다. 이런 부분과 관련된 생태계를 넓히고 제도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
-- 지난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데 이어 청와대에 들어갔지만, 박원순 서울시장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
▲ 어떻게 보면, 서울시 생활과 문재인 정부 수석으로의 활동, 박 시장과의 인연은 모두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다. 베를린에 온 뒤 서울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모른다.

하 전 수석과는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근지역은 리모델링한 집에서 높은 임대료를 내는 젊은 고소득층, 임대료 상승 제한 속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를 내는 기존 세입자들, 터키인 등이 섞여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하는 곳이다.
인근 공원에는 유모차를 끄는 가족들과 동네 한량들, 난민들이 섞여있다.
이곳 주민들과 예술가들은 몇년 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속에서 임대료의 급작스러운 상승으로 쫓겨날 뻔한 터키 마켓을 시위를 통해 구해냈다.
'공존'하는 베를린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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