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들의 야학 선생님 된 고교생들

입력 2019-05-31 11:11  

외국인 노동자들의 야학 선생님 된 고교생들
홍천 내면고 학생들, 농촌서 일하는 외국인 위해 한글교실 열어



(홍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지난 30일 저녁, 강원도 시골 고등학교의 캄캄한 운동장 너머의 한 교실이 환히 불을 밝혔다.
야간 자율학습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은 선생님으로 변해 수업에 열중이었다.
이들이 가르치는 학생은 어눌한 발음과 삐뚠 한글로 자기소개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따라 공책에 자기 이름을 쓰는 이들은 바로 주변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다.
홍천 내면고등학교 학생 10명은 매주 목요일 오후 8시 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한글 야학을 열고 있다.
낯선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손·발짓만으로 대화하기에 어려움을 느낀 이들은 일과를 마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실을 찾았다.
네팔, 태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이다.



외국인을 위한 한글학교는 올해로 3년 째다.
2017년 한 학생이 부모님의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한글을 가르치면 어떨까?' 생각해 친구들과 야학을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이를 반갑게 여겨 기꺼이 교실을 내주었다.
학생들은 한글교실에 '서다함'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서로 다른, 그러나 함께하는'이라는 뜻이다.
낯선 외국인이 처음 교실을 찾으면 먼저 이들의 한국어 실력부터 확인한다.
자음과 모음 등 한글 기본부터 시간·날짜표현, 병원에서 쓸 수 있는 말들, 시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 등 실생활에서 쉽게 쓰는 회화까지 다양한 수업이 준비돼 있다.
교실을 찾은 외국인이 많으면 1대 1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이날은 3명이 수업에 참여해 1대 3의 그룹 수업을 진행했다.



이날 처음으로 수업에 참여한 몬 라즈 용항(35·네팔)씨가 예상을 뛰어넘은 한국어 실력을 보여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는 고작 1개월 전에 한국에 들어왔지만 "목이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하죠?"라는 학생의 질문에 "이비인후과"라고 정확히 대답할 정도로 한국어에 능통했다.
알고 보니 네팔에서부터 한국어 공부에 열중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노동자는 지난주에 받은 숙제를 다 풀어와서 학생들을 흐뭇하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수업은 학생들이 주도해 이뤄진다. 교실을 담당하는 교사가 1명 있었지만 조금의 도움만 줄뿐이다.
학생들을 돕는 이은빛 교사는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수업하면서 다양한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처해 새삼 감탄하곤 한다"며 "이는 학생이 교사가 돼 주도하니 그런 면모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한국어를 가르칠 뿐 아니라 한국을 알리기도 한다.
매주 목요일에 교실이 열리는데, 다음 주는 현충일로 학교가 쉬는 탓에 한 주 쉬게 된다.
이를 설명하던 학생들은 갑자기 역사 선생님으로 변해 '현충일'과 '한국 전쟁'을 외국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소 어려운 주제였지만 스마트폰의 번역기 앱 덕을 톡톡히 봤다.
때론 각 나라의 문화를 외국인들로부터 배우기도 한다.
2년째 한글 야학 선생님으로 활동하는 김민지(18)양은 "1학년 때 선배들을 보면서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자연스레 함께하게 됐다"며 "때로는 교실이 가득 차도록 외국인이 오기도 하고 가끔은 썰렁할 때도 있지만 늘 즐겁게 수업하고 있다"며 미소지었다.
오후 9시, 1시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칠판 앞에 한 줄로 서 양팔로 크게 하트를 만들며 다음 시간을 기약했다. 외국인들도 함께 하트를 만들며 화답했다.
'서다함'은 오는 10월까지 올해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yangd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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