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크루즈선 코로나19 집단감염, '미즈기와' 대책이 부른 참사

입력 2020-02-12 17:15   수정 2020-02-14 17:28

日 크루즈선 코로나19 집단감염, '미즈기와' 대책이 부른 참사
일본 감염병 전문가 "환자 치료 위주로 방역대책 전환할 때" 지적
20대 일본인 승무원 "배안에서 전멸할 수도"…조속한 전원검사 요구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 정부가 해상에 격리한 채 검역 중인 크루즈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미즈기와'(水際) 방역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중국에서 전염성이 감한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세운 정책 방향은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武漢)에 특별전세기를 보내 자국민을 데려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항이나 항만을 통해 이 바이러스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이른바 '미즈기와' 전략이다.
이 전략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각료 전원이 참석하는 범정부 기구로 지난달 30일 출범한 '감염증 대책본부'가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골간으로 삼고 있다.
미즈기와는 일본어로 물가를 뜻하는 말로, 통상 작전이란 말과 붙어 사용된다.



'미즈기와' 작전은 해상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물가로 끌어들여 육지에 제대로 받을 들여놓기 전에 섬멸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의미가 발전해 병원균의 국내 침입을 막기 위해 공항이나 항구에서 물샐 틈 없는 방역정책을 펴는 것을 미즈기와 대책으로 부르게 됐다.
아베 정부는 신종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직후부터 미즈기와 방역대책을 강조했다.
코로나19 감염자를 태우고 다닌 것으로 드러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애초 출발지인 요코하마항으로 지난 3일 들어오려는 것을 막아 해상격리한 것은 그 대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는 지난 5일 승객과 승무원 등 3천711명의 승선자 가운데 10명의 집단 감염이 처음 확인된 이후 거의 매일 추가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밤 해상격리 검역이 시작된 이후 9일째인 12일 현재까지 전체 승선자의 4.7%인 174명이 감염된 것으로 나타냈다.
일본 당국은 이 크루즈선에 남아 있는 약 3천500명 중 발열 등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검체를 채취해 추가 검사를 계속하고 있어 선상 감염병 참사(慘事)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승객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급히 만든 조직인 '긴급네트워크'는 승선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조속한 검사를 진행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가타부타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면세점 직원이라고 요미우리신문에 자신의 신분을 밝힌 20대 일본인 여성승무원은 12일 "이대로 배 안에 있다가는 전멸할 것"이라고 불안감을 드러내면서 전원 검사만이 해결책이라고 일본 정부의 조속한 대응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가 전세기 편으로 중국에서 귀국시킨 자국민들과는 다르게 외국인이 절반 이상인 유람선 승선자들을 상대로 초기부터 전원 검사를 검토하지 않은 것은 현행 의료 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 하나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전세기편으로 4차례에 걸쳐 분산해 귀국한 일본인(중국인 배우자 등 포함)은 763명인 반면에 유람선 승선자는 4.9배인 3천700명을 넘는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19를 검사할 수 있는 일본 의료기관은 국립감염증연구소와 전국 83곳의 지방위생연구소다.
이들 기관을 완전가동할 경우 하루 최대 1천500명 정도의 검사가 가능하지만, 코로나19 대응 경험이 아직 부족해 기관별로 판정 능력 등 숙련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2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는 하루 최대 300건 정도의 검사능력이 있다"며 "오는 18일까지 하루 1천건이 넘는 검사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늦긴 했지만 전원 검사로 대응할 방침을 시사했다.
그러나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고령자가 많이 타고 있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는 밀폐된 선상 환경 속에서 환풍기 등을 통한 2, 3차 감염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돼 감염자가 늘어날수록 일본 정부의 초기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승무원을 제외한 유람선 승객 2천666명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60대 910명, 70대 1천8명, 80대 215명, 90대 11명 등 60대 이상이 2천144명으로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당뇨병, 고혈압 등 지병을 앓는 사람이 적지 않아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일단 걸리면 합병증으로 중증 환자가 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실제로 12일 감염자로 확인된 승객 29명 가운데 중증자로 분류된 일본인 3명과 외국인 1명 등 60~70대 남성 4명은 모두 지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감염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중국 우한에서 전세기를 타고 귀국한 뒤 1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가 추후 증상이 나타나 재검사에서 양성 확진을 받은 사례도 11일 2건 나왔다.
유람선 승선자를 포함한 확진자 수에서 일본은 12일 현재 총 202명으로, 확진자가 4만명을 넘는 중국 외의 국가로는 가장 많은 신종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일본 방역전문가 사이에선 아베 정부가 코로나19가 산발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 항만이나 공항에서 틀어막는 '미즈기와' 대책에서 벗어나 감염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쪽으로 정책전환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카베 노부히코(岡部信彦) 가와사키(川崎)시 건강안전연구소장은 12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사람 간 전염이나 무증상 감염자가 일본에서 확인돼 이미 곳곳에 코로나19가 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상황에선 미즈기와 대책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에서 대응을 주도했던 오카베 소장은 "지금까지 일본의 미즈기와 대책은 일정한 효과를 냈지만, 지금은 가속페달을 느슨하게 밟을 때"라며 미즈기와 대책으로 초래될 수 있는 두 가지 역효과를 거론했다.
그는 미즈기와 대책의 원래 목표는 바이러스 침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늦추는 것이라며 국민이 과도하게 이 대책의 효과를 기대하면 바이러스 유행이 현실로 확인될 경우 패닉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미즈기와 대책에 따라 무차별적인 바이러스 검사 등에 과도한 의료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면서 실제 중증 환자 치료 등을 못 하게 되는 등 의료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일본 정부가 미즈기와 전략에 얽매이지 말고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쪽으로 정책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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