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성공신화 '세기의 경영자' 잭 웰치 전 회장 별세(종합3보)

입력 2020-03-03 08:56   수정 2020-03-03 14:27

GE 성공신화 '세기의 경영자' 잭 웰치 전 회장 별세(종합3보)
GE 성장 주도…대규모 감원에 '중성자 폭탄' 별명도
"개선하라, 그렇지 않으며 문닫거나 매각하라" 애용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세기의 경영자'로 불리던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별세했다고 미 경제매체 CNBC 방송을 비롯한 미국 언론들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년 84세.
CNBC는 웰치 전 회장이 전날 집에서 부인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며 사인은 신부전증이라고 그의 부인을 인용해 전했다.
웰치 전 회장은 1981년 최연소로 GE 회장에 올라 20년간 회사를 이끌며 GE `성공 신화'를 이뤘다.
그는 구조조정과 인수를 비롯한 사업확장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미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으로부터 1999년 '세기의 경영자'(manager of the century)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GE 수장으로서 재임 기간 1천여 건의 각종 거래를 성사시켰다. 회장 취임 7년 만에 'GE 캐피털 뱅크'를 설립했다. NBC가 보유하고 있던 전자 회사 'RCA'를 비롯해 증권회사 '키더 피보이'를 인수하고 GE 에어로스페이스를 매각하기도 했다.
웰치 전 회장은 GE의 시가총액을 120억달러에서 한때 4천100억달러로 키웠다고 CNBC는 평가했다. 같은 기간 GE의 매출은 270억달러에서 1천300억달러로 급증했다.
그의 재임 기간 GE 주주들에게 돌아간 수익률은 개인 배당금을 포함해 연 21%, 총 5천%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가 거둔 수익률인 연 14%, 총 1천400%와 크게 대비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GE의 뿌리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 GE'는 웰치 전 회장이 일궜다고 평가했다.
그는 "GE의 모든 사업 부문은 '시장 리더'가 돼야 한다"면서 "개선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을 닫거나 매각하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웰치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감원 등 대규모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회장 취임 5년 만에 인력이 41만1천명에서 29만9천명으로 줄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전체 인력의 4분의 1이 넘는 10만명 이상의 인력을 감축한 것이다.
그는 저서 '끝없는 도전과 용기(Jack: Straight From the Gut)'에서 경영자급 직원들을 열정으로 가득 차고 무엇인가 일을 해낼 `상위 20%(A그룹)', 회사에 긴요하며 A그룹으로의 합류를 고무시킬 `중요 70%(B그룹)', 퇴출 대상인 '하위 10%(그룹C)'로 분류하는 이른바 '활력 곡선'(vitality curve)이라는 개념을 창안하기도 했다.
CNBC는 웰치 전 회장은 대규모 감원으로 인해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중성자 폭탄'(neutron bomb)이라는 조롱섞인 별명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중성자 잭'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포천의 제프리 콜빈은 웰치 전 회장을 '세기의 경영자'라고 칭할 당시 "그는 전광석화 같은 공격으로 행동했지만, 수년 뒤 더 신속히 움직이지 못했다는 후회를 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기존 것을) 부수기가 두렵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것을 부쉈을 뿐 아니라 잘 변혁시켜, 상상 이상으로 가치를 배가시켰다"고 평가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도 그의 2001년 웰치 전 회장의 은퇴 당시 사설을 통해 "그는 화이트칼라 혁명가였다"면서 "급격한 변화와 기존질서에서의 안주를 깨부수는 데 열중했다"고 평했다. 또 "웰치 전 회장의 레거시(유산)는 GE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미국 기업의 기풍을 변화시켰다. 그것은 안정과 충성, 영속과 같은 오랜 이상과 대비해 민첩성과 스피드, 쇄신을 중요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웰치 전 회장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과 교류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웰치 전 회장은 정주영 회장과 사업협력 방안을 논의하다 이해관계가 엇갈리자 정 회장의 제안으로 팔씨름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웰치 전 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 대해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네 가지는 책임감과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능력, 올바른 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회장은 그 네 가지를 고루 갖춘 경영자"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1999년 방한해 고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하고, 이 자리에서 "한국의 경제는 세계 모든 나라에 좋은 모델이 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이 한국 국민들의 에너지와 경제회복속도에 대해 놀랍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웰치 전 회장은 물러나면서 제프리 이멜트 전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지만 GE는 이후 버블닷컴 붕괴와 9·11 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악재를 만났다.
발명왕 에디슨이 세운 GE는 전구, 기관차 사업으로 산업화 시대를 이끌며 세계 최대 제조업 공룡으로 성장했지만,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고전 중이다.
GE의 시가총액은 현재 951억달러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한때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이었던 GE는 지난 2018년 시가총액 감소로 다우지수 구성 종목에서도 빠지는 수모를 겪었다. 래리 컬프 CEO 하의 GE는 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WSJ에 따르면 웰치 전 회장은 GE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고통스러워했다고 그의 친구들이 전했다. 웰치 전 회장은 자신의 경영은 'A(학점)'이지만 후임자 선택은 'F(학점)'이라면서 후회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웰치 전 회장은 2017년 12월 한 인터뷰에서 후임 이멜트 회장에 대해 "나는 끔찍이 실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웰치 전 회장은 1935년 11월 미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철도기관사였다.
메사추세츠 에머스트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1960년 일리노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60년 화학 엔지니어로 GE에 첫발을 들인 뒤 1972년 부사장, 7년 뒤에는 부회장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1981년 4월에는 45세의 나이로 GE 역사상 최연소 회장에 올라 2001년까지 20년간 수장을 지냈다.
그는 두 번의 이혼 끝에 지난 2004년 세번째 부인 수지와 결혼했다.
lkw77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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