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마스크 착용, 21세기에 흑사병 대처하는 식"이라는 독일

입력 2020-03-06 07:07  

[특파원 시선] "마스크 착용, 21세기에 흑사병 대처하는 식"이라는 독일
마스크 대신 손 씻기 권장하는 독일 정부…외근 플랫폼 노동자는 무방비
'아프면 병가' 문화 속 마스크 불필요 시각…밀폐공간 미착용에 우려도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마스크 쓸 정도로 아픈데 왜 밖에 나오나요?"
'독일 사람들은 왜 마스크를 안 쓰냐'고 물어보면 흔히 듣는 대답이다.
마스크는 아픈 사람이 불가피하게 집 밖으로 나와야 할 때 타인에게 질병을 옮기지 않기 위해 사용한다는 게 독일 시민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독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며칠 만에 300여명이 추가되고 베를린에서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베를린 거리에서 마스크 착용자를 보기는 쉽지 않다.
독일에서도 코로나19 확산이 시작하자 정부와 언론에서는 마스크 착용 문제 등 개인 예방법을 놓고 언급을 많이 한다.
독일 보건당국은 마스크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전문가도 언론을 통해 그렇게 조언한다.
독일의 대표적인 정론지 중 하나인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지난달 29일자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에 대한 공포'라는 제목의 오피니언을 통해 마스크 무용론을 펼쳤다.
오피니언은 "일본인들은 남을 위한 예의상 마스크를 착용하는데 유럽에서는 이런 액세서리는 착용할 경우 당사자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에게도 어색함을 유발한다"고 표현했다.
특히 "중세 시대에 흑사병 전염을 막기 위해 새 부리 마스크에 허브를 넣은 것처럼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여부와 상관없이 손 씻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세 시대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의사들은 공기를 통해 감염된다고 믿고선 새 부리처럼 길게 만든 마스크에 필터 격으로 허브를 채워 넣었다.
현재 관점에서는 당시 과학적인 무지에서 비롯된 우스꽝스러운 모양의 대처 방식을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에서 마스크 착용 문화에 비유한 셈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독일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일반 시민이 마스크 공급 문제에 대해 표면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있고, 손 놓고 있던 정부는 뒤늦게 의료진을 위한 마스크 장비 확보에 나서고 있다.
마스크가 일상의 필수적인 개인 보호장비가 되고, 마스크 공급의 원활성이 정부 역량의 척도처럼 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 독일 당국·언론, 마스크 효과성에 '글쎄'…손 씻기 우선 강조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독일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 등 보건당국이 가장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개인 보호 방법은 손 씻기와 기침 예절, 타인과의 거리(1∼2m) 두기다.
감기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마스크가 유용하다고 안내한다. 그러나 그 외에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할 경우 감염 위험을 낮춘다는 증거는 불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마스크 사용이 '손 위생을 소홀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도 경고한다.
독일감염학회의 베른트 잘츠베르거 학회장은 언론에 여러 차례 "마스크 착용과 같은 시민의 개인적인 보호 조치는 불필요하다"고 언급해왔다.
독일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묻은 마스크를 손으로 만질 경우 감염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경고하다.
많은 언론에서 전문가들은 유럽 마스크 등급 'FFP2' 이상의 마스크가 아닌 이상 바이러스를 막는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많이 내놓는다. 일반 수술용 마스크는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코로나19가 비말로 전파되기 때문에 수술용 마스크도 예방 효과가 있다는 우리나라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에서 마스크 사용이 과도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최근 들어 점점 커지고 있지만, 독일의 인식은 우리 당국 및 의학계와는 온도 차가 상당히 나는 셈이다.
모든 언론에서 마스크 사용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마스크 사용 효과가 제한된 범위에서 나타나지만, 바이러스를 막고 얼굴이 가렵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기침 예절 등에 대한 정부와 전문가들의 권고를 시민이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밀폐된 다중 이용 시설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쉽다는 우려도 있다.
베를린 교민 서다희 씨는 최근 베를린국제영화제 기간에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를 관람하던 중 관객석 곳곳에서 나는 기침 소리를 들었다. 입을 막지 않고 기침하는 모습도 꽤 보였다. 이에 서 씨는 목도리로 코와 입을 슬그머니 감쌌다.
독일 당국이 최근 "유행병의 시작"이라고 인정한 후에도 지하철에서 입을 막지 않고 기침하는 모습이 쉽사리 눈에 들어온다.
일상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찾기 쉽지 않으나, 마스크 구매 수요는 상당하다.
애초 약국이나 마트에서 판매하던 마스크 물량이 적은 데다 도매상의 재고 역시 많지 않은 탓인지, 한 달여 전부터 마스크는 자취를 감췄다. 온라인에서도 품귀 현상이 벌어진 데다 가격마저 폭등했다.
그러자 뮌스터대학병원과 마부르크병원 등 여러 대형 병원에서는 며칠 사이 상당한 양의 마스크와 소독제가 도난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의료진이 착용할 마스크와 방호복이 부족해지자 독일 정부는 지난 4일 개인보호구의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 '아프면 병가' 문화가 확산방지막 될까…사각지대 노동자 예외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마스크 착용자가 보이지 않는 데에는 질병에 걸렸을 경우 대처하는 독일 사회의 문화가 밑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독일에서는 병가 문화가 뿌리 내려 있다. 질병에 걸렸을 경우 이틀간 출근을 안 해도 되고, 그 이후부터는 병원 진단서만 회사에 제출하고선 쉬면 된다.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직장인 1인당 병가 일수는 10.6일에 달했다. 물론 연차휴가 일수와는 별개다.
병가 일수가 일정 기한을 넘어가 직장에서 무급으로 전환될 경우 사회 보험이 급여의 상당 부분을 보상해준다.
학생들도 감기에 심하게 걸렸을 경우 다른 학생에게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결석하고 집에서 쉬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 벌어지는 생필품 사재기 현상도 도시 봉쇄나 공급 단절 등에 대한 무조건적인 두려움보다는 감염 및 의심 증상 시 자가 격리에 대비하는 차원이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기자가 4일 만난 사회민주당 청년당원인 베를린자유대 학생은 병가 문화와 관련해 문제점을 제기했다.
우리나라의 아르바이트 격으로 직업 안정성이 높지 않은 '미니잡'(월 급여 450 유로 미만 직업) 종사자와 프리랜서에게는 병가가 사치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코로나19 긴급 상황에서는 이들에게 보조를 해줘야 질병에 대처가 가능하다는 지적도 독일 사회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여론조사기관 INSA의 조사결과, '독일 정부가 위기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20.5%에 불과했다.
이진 베를린 정치+문화연구소장은 5일 통화에서 "특히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배달업체 직원 등 외근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마저도 마스크나 손 소독제를 찾기보다는 손을 자주 씻으라는 독일 정부의 주문은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이번 기회를 통해 병가 제도의 문화적 정착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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