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지사 '도쿄봉쇄' 언급 논란…시민들 "무책임하다"

입력 2020-03-27 10:29   수정 2020-03-27 10:59

고이케 지사 '도쿄봉쇄' 언급 논란…시민들 "무책임하다"
도쿄 시민들 '우한市 봉쇄령' 떠올려…생필품 사재기 촉발
도시봉쇄 가능한 법적 근거 없어 …시민 협력 촉구 수준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정책 방안의 하나로 거론한 도쿄 '록다운'(lockdown·도시봉쇄)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현행법상 법적인 근거가 없는 데다가 실제 봉쇄 가능성을 우려한 사람들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는 등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고이케 지사는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 연기가 결정된 지난 23일 도쿄도청에서 느닷없는 기자회견을 열어 도쿄에서도 감염자의 폭발적 증가가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각종 행사와 외출 자제 등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도시 록다운 등 강력한 조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보를 울렸다.



고이케 지사는 또 41명의 추가 감염자가 확인된 25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으면 록다운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평일엔 재택근무를 하고 야간과 이번 주말에는 자택에서 지내 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고이케 지사는 봉쇄의 법적 근거와 누구의 권한으로 봉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납득할 만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는 또 47명의 추가 감염자가 확인돼 도쿄도 내 감염자가 전국 광역지역 가운데 가장 많은 259명으로 늘어난 26일에는 중앙정부에 제출한 긴급건의서를 통해 폭발적으로 감염자가 늘어날 경우 취할 수 있는 정책적 선택지로 도시봉쇄 같은 조치를 강구하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면서 코로나19 확산에 대비한 강경책을 제안했다.
도쿄 등 수도권에서는 고이케 지사의 봉쇄 발언을 계기로 식료품을 중심으로 한 생활용품 사재기가 촉발되는 등 사회적 불안감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이케 지사가 언급한 도시 봉쇄가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武漢)이나 감염자가 급증해 강력한 이동 통제가 시행되고 있는 유럽국가의 상황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우한시는 올해 1월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도시 봉쇄령을 내려 외부로 이어지는 교통편을 차단하고 왕래를 전면 금지했다.
또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중국 우한만큼 엄격한 수준은 아니지만 약국이나 식료품점을 이용할 때 신고서를 지참토록 하는 등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이다.
도쿄도 거주 인구(2018년 기준)는 1천364만명이고, 주변을 둘러싼 가나가와(神奈川)(917만명), 사이타마(埼玉)(736만명), 지바(千葉)(630만명) 등 3개 현까지 합친 수도권 인구는 일본 전체 인구(1억2천770만명)의 30%에 육박한다.
우한식 봉쇄령이 적용되면 수도권 주변에서의 대규모 인구 이동은 물론이고 물류가 멈추면서 수도 기능이 마비돼 일본 전체가 휘청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신문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럽 등지에서도 주민의 외출이나 이동을 금지하는 도시봉쇄가 주목받고 있지만 일본에선 법적 근거가 없어 현실적으로 실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담은 '신종 인플루엔자 등 대책 특별조치법'에 따라 26일 '대책본부'를 설치해 이 기구 본부장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했다.
아베 총리가 코로나19가 폭발적인 확산 상황이라고 판단해 긴급사태를 선포하면, 고이케 지사 등 광역단체장은 외출 자제와 학교 휴교 등을 요구하거나 지시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법상으로는 법적인 강제력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인 시민의 협력이 필요하다.
또 특별법에는 교통 제한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고 총리나 지사가 철도사업자 등에게 운행정지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이것도 강제력은 없다는 게 일본 정부 관계자의 해석이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신문은 "수도권에서 인구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면 수도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며 "정부 내에선 정치, 행정, 경제 등 모든 기능이 집중된 도쿄 봉쇄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27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만일 (도쿄) 록다운 같은 사태가 초래되면 일본 경제에 한층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선 일본 정부가 26일 코로나19 대책으로 건물 출입 제한이나 교통제한을 할 수 있도록 감염증법 시행령을 고친 점을 들어 도시봉쇄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후생노동성은 소독 작업 등을 위해 일시적 조치로 필요할 경우에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일 뿐 장기적인 도시봉쇄를 전제로 한 조항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도시 봉쇄를 불쑥 시사한 고이케 지사의 발언이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쿄 시부야(澁谷) 거리에서 도쿄신문과 인터뷰를 한 고다이라 히카루(19·미용전문학교 재학)는 "생활비와 학비를 벌려면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아르바이트해야 한다. 집에만 있으면 보상해 줄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보상 대책도 없이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도쿄도는 고이케 지사의 발언을 과도하게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기쿠치 도모하루 도쿄도종합방재부 정보총괄 담당과장은 "고이케 지사가 말한 도시봉쇄는 중앙정부가 긴급사태를 선포했을 때 각 지사가 주민을 상대로 요청할 수 있는 외출 자제 등에 의한 봉쇄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긴급사태가 선포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이번 주말에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한 것도 어디까지나 요망사항에 불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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