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과학자 삼촌

입력 2020-05-10 07:07  

[특파원 시선]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과학자 삼촌
'슈퍼천재 유전자' 본능과 직감의 정치…'보이지 않는 적' 물리칠수 있을까
WP "삼촌이 살아있다면 트럼프에게 '과학을 봐라' 경악했을 것"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트럼프의 삼촌이 살아 돌아온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저명한 과학자 삼촌이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40년 가까이 교편을 잡았던 공학자이자 물리학자, 발명가였던 존 G. 트럼프(1907∼1985)가 바로 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이더 기술을 통해 미군의 승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고 방사선 등 암 환자 치료용 의료장비를 개발했으며 훗날에는 환경 정화 분야로도 눈을 돌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국가과학훈장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삼촌과 자신이 '슈퍼 천재'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며 입버릇처럼 자랑해 왔다.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와는 다른 길을 걸은 삼촌은 '가문의 자랑'이자 자신의 '지적 콤플렉스'와 과시욕을 채워주는 존재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기 꼭 일주일 전인 지난 3월 6일(현지시간) 조지아주(州) 애틀랜타에 있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본부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코로나19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는 와중에 대뜸 삼촌의 이름을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의 삼촌인 존 트럼프 박사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기록적 기간 MIT에서 가르쳤다. 그는 위대한 슈퍼 천재였다"면서 "모든 의사는 나에게 '어떻게 이에 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느냐'고 말한다. 어쩌면 나는 선천적 능력을 타고났다. 어쩌면 나는 대통령에 나오지 말고 이 일을 했어야 한다"며 코로나19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를 자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국면인 2016년에도 CNN방송에 '천재삼촌' 이야기를 하며 "천재가 내 피 안에 흐른다. 나는 똑똑하다"고 했고, 미 일간 보스턴 글로브 인터뷰에서도 자신과 삼촌이 매우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촌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지성'의 소유자임을 내세워온 트럼프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국면에서 '비(非)과학적' 발언들을 쏟아내 수차례에 걸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말라리아약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코로나19 치료 효능을 극찬하는가 하면 살균제 인체 주입 검토 발언으로 의사와 보건 당국자, 전세계 전문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작고한 존 트럼프 박사가 만일 살아있다면, 그래서 조카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리얼리티 TV쇼'를 봤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과학자 존 트럼프의 궤적과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을 비추는 기사를 실었다.
존 트럼프도 생전에 환자의 피부에 원자를 직접 주입함으로써 병을 치료하는 이론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혈장 내 간염 바이러스를 파괴하거나 비활성화하기 위해 원자를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존 트럼프는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그 누구도 이것을 하도록 설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원자 가운데 일부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코로나19 TF 브리핑 도중 살균제 인체 주입 검토 발언을 꺼냈을 때 희미하게나마 삼촌의 이러한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과학적 지식의 소유자를 자임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몇 주간 보여준 노력은 두 사람 사이의 엄청난 간극만 부각시킬 뿐이라고 WP는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존 트럼프의 오랜 사업 파트너였던 과학자 로버트 밴더그래프의 아들 존 밴더그래프는 WP에 "내가 아는 존 트럼프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에 대해 엄청나게 상심하고 경악했을 것"이라며 "아마도 '과학을 봐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밴더그래프는 존 트럼프와 부친의 대화에 여러 번 함께 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디어에 대한 철저한 검증에 헌신적이었던 존 트럼프가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불쑥 내뱉은 위험한 치료법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 '쓴소리'를 하는 태스크포스(TF)내 과학자와 의사들을 못 견뎌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 달여 간의 '백악관 칩거'를 깨고 탈(脫)워싱턴 재선 행보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경제 정상화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 발맞춰서다.
'트럼프 쇼'의 무대가 코로나19 TF 브리핑장 안에서 그 밖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천재적 본능과 직감'에만 계속 기댄 채 당국자들과 전문가 그룹에 귀를 닫고 마이웨이를 이어간다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 미국 국민과 전 세계가 감당해야 할 '트럼프 리스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마스크 생산시설인 허니웰 공장을 찾았을 때도 당국의 방침과 달리 마스크를 쓰지 않아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이 되자 "일정 시간 동안 썼다. 못 봤으면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이를 직접 '목격'한 동행 취재단은 없었다.
지난 8일 2차 세계대전 유럽 전승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워싱턴DC 기념비에서 열린 헌화식에 참석했을 때에도 그는 마스크 미착용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학자 삼촌'에게서 물려받은 '피'를 주장하며 본능과 직감에 의존하는 동안, 그가 '보이지 않는 사악한 적'으로 규정해온 코로나19는 백악관 웨스트윙(집무동) 깊숙이까지 '침투'했다.
미국의 최고 국가지도자가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직접 노출됐다는 우려마저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본능과 직감의 정치만을 이어갈 수 있을까.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에 있는' 이 적을 어떻게 물리치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리더십을 보이느냐가 대선을 앞둔 그의 정치적 운명을 상당 부분 좌우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hanks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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