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시위 10일째] 유언 된 한마디 "숨쉴 수 없다"…인종차별 저항의 상징 돼

입력 2020-06-05 06:31   수정 2020-06-05 19:59

[미 시위 10일째] 유언 된 한마디 "숨쉴 수 없다"…인종차별 저항의 상징 돼
미 전역 140여개 도시에서 시위…흑인 겨냥한 반복적 경찰 폭력이 원인
코로나19 사태 속 드러난 의료·경제적 불평등의 고통·분노도 한몫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 휴일이었던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오후 8시께.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의 식료품점 앞에는 등 뒤로 양팔에 수갑이 채워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경찰 3명에게 목과 등을 짓눌린 채 땅에 엎드려 있었다.
미니애폴리스경찰 소속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44)은 "숨을 쉴 수 없다"는 플로이드의 거듭된 호소에도 그의 목 뒤를 짓누르고 있는 자신의 무릎을 떼지 않았다.
쇼빈이 무릎으로 목을 누르기 시작한 지 6분쯤 지나자 플로이드는 조용해졌다. '숨 쉴 수 없다'는 말은 플로이드의 유언이 됐고 미 전역으로 번져나간 인종 차별 항의시위의 상징적 구호가 됐다.
경찰은 플로이드가 이 식료품점에서 20달러짜리 위조지폐로 담배를 샀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은 플로이드가 체포에 저항해 그를 진압했고 의료 사고로 그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행인들이 촬영한 체포 동영상은 밤새 소셜미디어를 타고 미 전역에 분노를 실어 날랐다. 동영상 속 플로이드는 가혹하게 무릎으로 목이 눌린 채 쉰 목소리로 '엄마'와 '제발'을 외치며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무기력한 남성이었다.

이튿날인 26일 미니애폴리스경찰은 플로이드 체포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 4명을 해고했다. 의료 사고라는 경찰 설명은 동영상 속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였다.
그날 밤 수백명의 시위대가 미니애폴리스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차가 파괴됐고 쇼빈 등이 일하던 경찰서는 불에 탔다. 전 세계로 번진 인종 차별 항의시위의 시작이었다.
그다음 날이 되며 시위는 더 거칠어졌다. 시위대는 수천 명으로 불었고 식당과 대형마트, 자동차 부품점 등은 불길에 휩싸인 채 약탈 대상이 됐다.
다른 도시에서도 시위대가 들고 일어섰다. 사람들은 플로이드 사건 전 억울하게 숨진 흑인 아머드 아버리, 브레오나 테일러 사건까지 떠올리며 멤피스와 로스앤젤레스(LA) 등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위 사흘째인 28일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미니애폴리스시가 파괴와 방화를 이유로 도움을 요청하자 주 방위군을 동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의 분노에 군 투입과 총격으로 맞서겠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새벽 시위대를 '폭력배'로 규정하면서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 표현은 1967년 흑인 시위에 대한 폭력적 보복을 공언한 월터 헤들리 당시 마이애미경찰서장이 만든 문구여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날 미네소타주 헤너핀카운티 검찰은 쇼빈을 체포하고 3급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협박이나 쇼빈의 체포 소식은 대중의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날 밤 수도 워싱턴DC와 애틀랜타, 브루클린, 맨해튼, 디트로이트 등 주요 도시로 시위가 확산했다.
경찰을 향해 물병과 돌이 날아가고 경찰은 최루가스와 곤봉으로 맞섰다.
시위의 폭력성은 일요일인 지난달 31일 정점에 달했다. 전국 각지에 모인 수십만명의 시위대는 낮 동안 대체로 평화롭게 시위를 했지만 밤이 되자 경찰과의 충돌, 약탈 등이 벌어지며 수백명이 체포됐다.
미 언론들은 플로이드 사망 후 미 전역에 걸쳐 수십만명이 140개 이상 도시에서 시위를 벌인 것으로 집계했다. 또 21개 주에서는 주 방위군이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 가운데 6명이 지금까지 숨졌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과정에서 식당 주인이 숨진 켄터키주 루이빌에서는 경찰서장이 해임됐고, 반대로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흑인 시위자가 총에 맞아 위중한 상태다. 세인트루이스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경찰이 총에 맞아 다쳤다.


대규모 항의시위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플로이드의 억울한 죽음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다른 여러 가지 맥락이 중첩되며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됐다고 보고 있다.
그 하나는 미국에서 흑인에게 차별적으로 가혹했던 경찰 폭력의 역사다. 총기 발포 등 과도한 폭력으로 흑인이 죽어도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는 일을 소홀히 해온 역사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게 했다는 것이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은 과속운전 혐의로 잡힌 흑인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구타한 백인 경찰관들이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나면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한몫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최근 '미국은 불쏘시개 통-자유낙하하는 한 국가의 풍경'이란 칼럼에서 "지금 너무 많은 일이 미국을 불붙기 쉽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골드버그는 그 사례로 대량 실직, 살인적인 의료·경제적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코로나19 사태, 할 일이 거의 없는 10대들, 경찰의 폭력, 2차 내전을 부추기는 우파 세력, 모든 불씨에 기름을 부으려는 대통령 등을 들었다.
그는 "이번 시위는 특정한 경찰 폭력의 사례로 촉발됐지만 유색인종,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불평등하게 가해진 의료·경제적 황폐화의 맥락 속에서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미네소타주 검찰총장 키스 엘리슨은 "많은 사람들이 두 달간 갇혀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실직했으며 일부는 집세를 낼 돈이 없다. 그들은 분노했고, 그들은 좌절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항의시위가 얼마나 더 오래 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3일 미네소타주 검찰총장이 플로이드 사망에 연루된 경찰관 4명을 전원 기소한 뒤 시위의 기세가 다소 수그러드는 움직임도 보인다.
필라델피아에서는 3일 1천명 규모의 시위대가 통행금지가 발령된 지 30분쯤 뒤 기도를 한 뒤 평화롭게 해산했다.
디트로이트는 3일부터 통행금지를 시행하지 않기로 했고, 시애틀과 LA, 샌프란시스코도 통행금지를 더 이상 시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이날 미니애폴리스에서는 플로이드의 추모식이 열렸고, 오는 9일에는 플로이드가 자란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장례식이 예배 형태로 열릴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시위대의 분노가 다소 진정될지 주목된다.




sisyph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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