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년] 남아공 용사 "전투기 몰려 참전…비상 동체착륙도"

입력 2020-06-17 07:05  

[6·25전쟁 70년] 남아공 용사 "전투기 몰려 참전…비상 동체착륙도"
88세 피세르, F-51 머스탱 타보고 싶어 19세에 먼 한국행 자원
"초가집과 가난한 모습 떠올라…선진경제 성장 안 믿어져"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와중에 6·25 참전용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만에 하나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로 고령의 참전용사를 직접 대면 인터뷰한다는 건 서로에게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서쪽으로 차로 약 50분 거리의 마할리스버그에 사는 참전용사 피트 피세르(88) 옹에게 지난 4일 한국대사관 이병철 무관이 보훈처에서 지원한 마스크와 초콜릿 선물을 직접 전달하는 길에 동행했다. 선친이 참전용사인 더크 러우 현 남아공 참전용사협회장이 직접 안내를 해줬다.
피세르 옹이 사는 곳은 '골든 하비스트 은퇴자 주택단지'. 한적하고 골프 코스 나인홀이 있으며 군데군데 게이트볼도 칠 수 있는 곳이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니 저 멀리 노인 몇몇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단지 내 공동회관에서 마스크를 쓴 채 만나 인터뷰가 이뤄졌고, 피세르 옹은 부인 지네트(83) 여사와 나란히 앉아 한국 방문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피세르 옹은 19살에 생면부지의 먼 나라인 한국까지 가 참전했다.
참전 이유를 묻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라는 식의 거창한 말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이 만들어 2차대전에서 활약한 전투기 F-51 머스탱을 타보고 싶었단다.
그는 "편안히 남아공에서 비행 교관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전투대형을 이뤄 비행훈련을 하는데 기왕이면 직접 비행기를 몰고 전투에 참여하고 싶었다"며 "머스탱을 타는 데 흥분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험심과 호기심에 찾은 곳은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곳이었다.



프로펠러 추진인 머스탱기는 대체로 제트엔진인 소련 미그기의 공중전 적수가 되질 못했다. 또 어려운 저고도 정찰과 지상 폭격 임무를 주로 하다 보니 적의 대공 화기에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남아공의 참전 전투기 97대 중 74대가 떨어졌다. 80%에 가까운 손실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남아공 조종사들은 한국전에서 탱크 44대와 차량 900여대를 파괴하고 후방 보급선을 차단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피세르 옹은 당시 소위로 머스탱을 타다가 제트기인 F-86 세이버를 타고 고도 3만 피트(약 9천m) 상공에 올라가니 적의 대공포 사정거리로부터 멀어져 "소풍 나온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세이버라고 안전한 게 아니었다.



1953년 4월 19일 세이버615기로 폭격 강하 임무 도중 기체가 피격됐는지 기지로 돌아오는 길에 제트기의 전기계통이 고장 나 통신도 아예 꺼져버렸다.
관제탑과 교신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착륙하려고 했지만 지상통제 요원들이 바퀴도 안 내려온다면서 계속 착륙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차라리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하고 비행기를 다른 곳에 추락시켜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K-55 비행장(현 오산비행장)을 3차례 선회하고나서 다른 사람이 앞서 남아공에서 바퀴 없이 착륙한 것을 떠올리고는 과감히 '동체착륙'을 시도했다.
세이버는 착륙 바퀴 없이 바닥에 불꽃을 튀기며 땅위에 내렸다. 마지막에 활주로를 벗어나긴 했지만, 가까스로 기지 가장자리에 멈췄고 소방대가 급히 와서 화재를 막았다.



피세르 소위는 영화처럼 바퀴도 없이 착륙을 해냈다면서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했지만, 상관은 "활주로에서 착륙 중 불이 났다면 다른 전투기의 이·착륙에 큰 지장을 줬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야단만 쳤다.
이 세이버기는 다시는 공중에 띄울 수 없어 폐기됐지만, 그래도 비싼 부품들은 다른 비행기에 재활용됐다.



그는 굴하지 않고 다시 다른 전투기로 출격했다.
이처럼 곤경에 빠지거나 심지어 추락을 경험했더라도 다시 조종간을 쥔 불굴의 조종사들이 남아공 참전용사들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예로 존 데이비스 대위의 경우 자신의 손상된 머스탱기로 비상 착륙해 간신히 아군에 구조됐지만, 다시 작전에 나서 1951년 3월 10일 결국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40년 후 기적이 일어났다. 1991년 한국재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한 부인 등 가족이 그의 전투기 추락 장소를 알던 농부를 찾아내 마침내 유해를 발견했다.
데니스 어프 당시 소위는 자신의 머스탱기가 격추되는 바람에 중공군에 포로로 잡혔다. 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남아공 출신으로서 북한의 혹한을 비롯해 약 2년의 모진 포로 생활을 견뎌야 했다. 나중에 포로교환으로 풀려나 공군참모총장까지 역임하고 지난해 5월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피세르 옹은 참전 당시 한국에서 뭐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초가집과 지독히 가난한 모습을 떠올렸다.



이어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싸운 나라가 지금은 세계 선진 경제권"이라면서 "한국인은 근면하고 지적이다. 아름다운 나라다. 존경스럽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이 핵무장을 한 상황이지만 분별 있는(sensible)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이 잘 대처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이 끝나고 귀국해 공군 교관생활을 2년 정도 하다가 제대, 금융 자문가의 길을 걸었다. 남아공 참전용사협회장을 역임하고 현 러우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현재 부인 지네트 여사와 사이에는 자녀 2명을 두고 있다. 크리스마스면 증손자까지 17명이 집에 모이는 '축복받은' 가정이라고 소개했다.
이미 3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죽기 전에 다시 갈 기회가 있으면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전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걷기도 힘들어졌지만, 이날은 지팡이를 짚은 채 느리게나마 걸었고 눈빛도 형형했다.
현재 남아공 내 생존한 참전용사 1세대는 1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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