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급부상 '노점상 경제' 놓고 시진핑-리커창 갈등설(종합)

입력 2020-06-08 19:31  

중국서 급부상 '노점상 경제' 놓고 시진핑-리커창 갈등설(종합)
리커창 "노점상, 일자리 문제 해결" 적극 권장하자 곳곳 번창
"'빈곤층 6억명' 발언에 열 받은 시진핑, 언론 통제 나서"
시진핑 최측근이 당 서기 맡은 베이징시, '노점상 경제' 공격 선봉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최근 중국에서는 '노점상 경제'의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있다.
쓰촨(四川)성의 중심 도시인 청두(成都)를 필두로 충칭(重慶), 상하이(上海), 우한(武漢), 칭다오(靑島) 등 중국 전역의 대도시에서 노점상이 불길처럼 번지고 있으며, 그 바람은 수도 베이징(北京)까지 불었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베이징 내 노점상 밀집 지역 109곳의 위치를 보여주는 '베이징 노점상 지도'가 인기를 끌고 있을 정도다.
'만능 장사 트럭' 출시를 예고한 중국 자동차 업체 우링(五菱)의 주가는 지난 3일 장중 120% 폭등하기도 했다.
산둥(山東), 장시(江西)성 등 일부 지방 정부는 지금껏 강력한 단속의 대상이었던 노점상을 임시로 합법화해 그 영업시간과 지점, 영업 방식 등을 지정했다.
사실 중국에 부는 노점상 열풍의 근원에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리 총리는 지난달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중국 서부 지역 모 도시의 노점상 경제를 언급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10만 명의 일자리를 해결했다"고 극찬했다. 이 도시는 청두시로 여겨진다.
이어 지난 1일에는 옌타이(煙台)시 주택가의 노점상을 찾아가 "노점 경제는 중요한 일자리 근원으로서 중국 경제의 생기"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리 총리의 격려에 힘입어 지금껏 단속이 두려워 노점상을 열지 못했던 소시민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입 감소 등을 충당하고자 과감히 거리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는 월급쟁이, 주부, 학생, 노인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점상 경제 열풍에 급제동이 걸릴 조짐이 보인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중문판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지난 4일 주요 관영 매체에 '노점상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중국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앞다퉈 노점상 경제의 부상을 다뤘던 중국 각지의 관영 매체는 일제히 관련 보도를 중단하고 나아가 기존 기사까지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부 관영 매체는 노점상 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에 나섰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7일 논평을 통해 "노점상 경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맹목적으로 이를 추구할 경우 뜻하는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이징일보도 베이징시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노점상 경제가 "도로 점거, 짝퉁 판매, 소음 발생, 교통 마비 등 각종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베이징시 도시관리국은 노점상이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는 불법 행위 등에 대해 철저하게 단속,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분위기 반전에 대해 베이징 정가에서는 의미심장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바로 리 총리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갈등설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시절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던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는 익히 알려졌지만, 최근에 두 사람의 갈등이 표출된 것은 지난달 28일 전인대 폐막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리 총리는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천 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며, 1천 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중요한 것은 시 주석이 선전해온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반부패 사정과 함께 '빈곤 탈피'를 자신의 최대 정치적 성과로 내세우면서 2020년까지 샤오캉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코로나19 확산으로 실업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러한 약속은 사실상 '공염불'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는데, 리 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그 비판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지난 1일 중국 공산당 이론지 추스(求是)는 "전면적인 빈곤 탈피와 샤오캉 사회 건설은 평균주의가 아닌, 국가 전체의 목표"라며 리 총리의 발언을 반박하는 내용의 글을 싣기도 했다.
이후 중국 중앙선전부가 각 관영 매체에 노점상 경제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고, CCTV 등이 노점상 경제에 대한 비판에 나선 배경에는 리 총리의 '도발'을 괘씸하게 여긴 시 주석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시가 노점상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천명한 배경에는 시 주석의 최측근인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 서기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차이 서기는 시 주석의 저장(浙江)성 서기 시절 부하 인맥을 뜻하는 '즈장신쥔'(之江新軍)의 대표주자다.
지난 2014년 저장성 부성장에서 신설된 중앙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으로 이동한 뒤 2016년에는 당 중앙위원이나 후보위원도 아니면서 베이징 시장에 발탁됐다.
이어 2017년 베이징시 당 서기 자리에 오른 데 이어 19차 당 대회를 거치며 평당원에서 일약 정치국 위원으로 2단계나 승진했다.
이처럼 시 주석의 최측근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차이 서기가 리 총리가 주창하는 노점상 경제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선 것은 결국 시 주석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홍콩 빈과일보는 "리 총리는 '자유 경제'를, 시 주석은 '당의 통제'를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갈등이 축적돼 왔다고 볼 수 있다"며 "노점상 경제를 계기로 이러한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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