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모범국' 무너질라…레바논 불안에 미·유럽 몸단다

입력 2020-08-07 14:30  

'중동 모범국' 무너질라…레바논 불안에 미·유럽 몸단다
권력분점한 기득권 실정에 일찌감치 민생 초토화
개혁지체 속 폭발 참사로 '이게 나라냐' 재확인
국민, 외국에 '정권타도' 요청할 정도로 정치 혐오
서방 '요충지 잃을라' 구호물자·금융 소나기 지원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대폭발 참사의 여파에 서방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폭발 사고가 행정 마비의 단면이자 심지어 국가붕괴 신호로 비치는 만큼 레바논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려 그 자체다.
레바논을 '중동의 민주주의 모범'으로 인식해온 서방 국가들은 정정불안 때문에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7일 외신들에 따르면 레바논은 작년에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할 때부터 이미 위험한 상황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을 받아왔다.
당시 레바논 시위대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며 정치인들을 행정에서 전원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 경제 무너지고 민생 초토화한 지 오래
레바논의 경제는 1975∼1990년 내전이 끝난 뒤 집권한 세속 정치인들의 실정으로 파탄에 이르렀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레바논은 10년 전까지 연간 경제성장률이 8∼9%에 이르는 활력 있는 국가였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은 최근 수년간 1∼2%에 머물다가 재작년 -1.9%, 작년 -5.6% 등 급기야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런 과정에서 수입이 많지만, 수출이 거의 없는 레바논은 국가채무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레바논의 국가채무는 850억 달러(약 101조원)로 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150%에 달하고 있다.
정부 재정지출 중 큰 몫이 채무이자 상환, 과도하게 비대해진 공무원 조직의 운영에 빨려들어 경제는 늪에 빠진 형국이다.
결국 사회 기간시설이 확충되지 않아 열악해지고 고용도 창출되지 않아 35세 미만 청년들의 실업률은 37%에 이르렀다.
국가부도 우려가 점점 커지면서 레바논의 통화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물가는 상승하면서 민생고는 더 악화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의 악순환이 뚜렷하게 인지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개혁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 고인 물이 썩었다…평화로운 권력분점의 역설
경제 붕괴와 민생 초토화는 이웃 시리아의 내전, 중동 정세 불안이 한몫했으나 고질적 부패와 실정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레바논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레바논 특유의 권력분점 체계 때문에 개혁이 지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른 중동국가들과 달리 레바논은 권력자 1명이 통치하지 않고 다수 정파가 권력을 균등하게 분할해 국가를 운영한다.
공직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19개 정파가 나눠 갖고 의회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절반씩 점유한다.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의회 의장은 이슬람 시아파에게 돌아간다.
이 같은 권력분점 체계 아래에서 공인된 지배계층은 권력을 사실상 무기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이점을 누린다. 정치인들로서는 자신의 결정 때문에 퇴출 압박을 받을 우려가 작아 국가이익보다 개인적 이익을 추구할 유인이 크다.
싱크탱크 카네기중동센터의 모하나드 하지 알리 연구원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자기중심적 정치 기득권층은 아직도 사태 심각성을 모른다"며 "그들은 현 체계 안에서 사욕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베이루트항 참사는 실정과 행정마비의 연장선
베이루트 항구의 대폭발 사건은 매우 위험한 폭발물인 질산암모늄이 무려 7년 동안 항구에 방치됐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항구와 세관에서 수차례에 걸쳐 법원에 제거 요청을 했으나 묵살됐다는 점에서 국가 운영이 마비된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인재(人災)로 불릴 수밖에 없는 이번 대형참사가 경제붕괴나 민생고와 같은 뿌리인 기득권 정치인들의 부패와 무능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수그러든 반정부시위도 이 같은 인식 때문으로 인해 이번 참사를 계기로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이다.
어처구니없는 인재에 격분한 레바논 시민들은 프랑스와 같은 외국의 정부에 레바논 정권을 타도해달라고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애널리스트 하이코 윈멘은 "이런 분위기가 득세해 시위가 지속하면 레바논은 장기간 불안정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레바논은 내전이 끝난 지 30년 정도 지난 국가로 분쟁이 격화할 갈등 요인들이 산재한 터라 국제사회는 더 긴장하고 있다.



◇ 서방 초긴장…중동 모범생 살리고 전략 요충지 보호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레바논 정세가 통제 불능으로 빠져들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베이루트 폭발과 동시에 큰 우려를 쏟아내던 서방 국가들은 곧바로 대규모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수송기로 구호물자를 보내기 시작했고 유럽연합(EU)은 3천300만 유로(약 465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휴가를 중단한 채 베이루트로 날아가 현지의 고충을 듣고 개혁을 강조했다. 레바논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로, 여전히 정치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잔뜩 긴장한 배경에는 레바논이 다양성과 서방의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는 중동의 모범생이라는 인식이 있다.
레바논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이슬람 시아파, 수니파 등이 공존하며 종파간 차이가 정파의 분쟁으로 변질하지 않도록 노력해온 국가다.
게다가 이 지역은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헤즈볼라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반목하는 이란과 연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정정불안으로 레바논에서 시아파 세력이 득세해 최근 이라크처럼 친이란 반미성향이 강해질까 우려하는 면도 있다.
서방 국가들은 레바논이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이를 다른 중동 국가들로 전파해야 한다는 지향점을 공유하면서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요구해왔다.
jangj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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