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스위스판 브렉시트? 이번엔 이민상한제 도입하나

입력 2020-08-21 07:07  

[특파원 시선] 스위스판 브렉시트? 이번엔 이민상한제 도입하나
EU 시민의 이민 제한하는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결과 예측 어려워




(제네바=연합뉴스) 임은진 특파원 = 유럽에서 스위스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유럽 대륙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아니다.
EU 회원국 대부분이 속한 유로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인접국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건너갈 경우 유로에서 스위스프랑으로 환전해야 한다.
하지만 스위스는 사실상 EU 회원국과 다름없는 지위를 누리고 있다.
스위스가 다양한 분야에 걸쳐 EU와 맺은 120개의 양자 협약 덕분이다.
이 가운데 핵심은 지난 1999년 맺은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 관한 협정으로, 이에 따라 스위스와 EU는 경제 활동에 필요한 인력을 자유롭게 주고 받아왔다.
현재 스위스에 거주하는 인구 중 약 4분의 1이 외국인이고, 30만여 명이 주변국에서 스위스로 출·퇴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국민 투표가 다음 달 27일 진행된다.
스위스 제1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이 EU 시민권자의 이민을 제한하는 헌법 개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SVP는 지난해 8월 EU 띠를 두른 벌레가 스위스 국기 스티커를 부착한 사과를 파먹는 포스터를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을 정도로 반(反)EU, 반이주민을 주장하는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이다.
SVP는 헌법 개정안을 내면서 현재의 이주 체계가 노동 시장과 사회 서비스에 너무 많은 압박을 가하고 있다며, 스위스 정부가 EU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적으로 EU 시민권자의 이민에 상한을 두고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위스와 EU의 기존 관계를 재설정하자는 것으로 이른바 스위스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인 셈이다.



이런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위스는 지난 2014년 EU 시민권자의 이민에 상한을 두는 이민제한법 수정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SVP가 주도한 이 법안은 찬성률 50.34%로 통과됐고, 이는 곧 EU를 자극했다.
사람과 상품의 역내 자유로운 이동을 중요시하는 EU는 법이 통과되자마자 유럽의 연구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2020'과 EU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에서 스위스를 배제하는 보복 조치를 했다.
EU의 강력한 반발에 스위스 내에서는 국민 투표를 다시 하자는 여론도 있었지만, 정부는 상한제 대신 자국민에게 먼저 일자리를 보장하게 하는 절충안을 내며 EU와 보수층을 달랬다.
그러나 SVP는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유권자들의 뜻을 거슬렀다고 비난하며 국민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다시 한번 EU 시민권자의 이민을 제한하자고 나선 것이다.
법률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는 국민 5만 명의 서명이, 헌법 개정에는 1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결국 SVP가 요구하는 헌법 개정안은 국민 투표에 부쳐지게 됐고 5월 17일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 사이 스위스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들불처럼 번졌고, 그 여파로 정부는 투표일을 9월 27일로 연기했다.



스위스 정부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민 제한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SVP의 안이 통과되면 스위스는 근로자를 찾기 어려워지고 5억 명이 넘는 인구를 지닌 거대한 EU 시장을 잃게 돼 수출과 경제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20년 동안 4천600억∼6천300억 스위스프랑(약 598조∼819조원)의 비용이 들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또 EU 회원국에 체류 중인 스위스 시민들에 대한 호혜적 권리가 제한될 수 있으며, EU와 맺은 다른 양자 협정에 미치는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정부는 강조했다.
카린 켈러-주터 법무장관은 현지 뉴스 통신사 키스톤-SDA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순전히 도박이고 무책임한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SVP와 정부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현지 매체들은 투표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고 전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부결될 가능성을 조금 더 높게 봤지만,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하고 실업자가 늘면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만일 가결될 경우 스위스 정부는 1년의 유예 기간 EU와 노동의 이동에 대한 새로운 협정을 위해 협상을 벌여야 한다.


engi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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