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다서 내맘대로'…영·EU 미래관계 암초로 떠오른 어업

입력 2020-09-05 07:00  

'내 바다서 내맘대로'…영·EU 미래관계 암초로 떠오른 어업
영국, 자국 수역에서의 어획쿼터 50% 요구…EU는 현 상태 유지 원해
브렉시트 후 영국 통제권 회복 여부 상징성…국가 보조금 시스템 놓고도 의견차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영국이 유럽연합(EU)과의 미래관계 협상에서 영국 수역에서의 자국 어획쿼터를 두 배로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EU측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 만큼 양측간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 결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앞서 영국은 지난 1월 31일 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를 단행했다.
영국과 EU는 브렉시트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올해 말까지로 정한 전환기간 내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만약 양측이 전환기간이 끝나는 연말까지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게 된다.
이미 브렉시트를 단행한 상황인 만큼 엄밀히 말하면 영국이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EU를 탈퇴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는 아니지만, 사실상 '노 딜' 브렉시트와 다름없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영국 "어획쿼터 두배 늘려야"…EU "현 상태 기반으로 안정성 유지"
4일(현지시간)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미래관계 협상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영국 수역 접근권이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단행하면서 2021년부터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 조업 수역을 관리하게 된다.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 이후 영국은 자국 수역에서도 EU 공동어업정책(EU Common Fisheries Policy)에 따라 총어획량이나 어획쿼터 등을 배분받았다.
영국은 EU를 탈퇴한 만큼 새로 체결할 어업협정에서는 영국 어선의 어획쿼터를 대폭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과거 어획통계를 기반으로 한 EU 공동어업정책이 아니라 현재의 어장상태를 평가해 배분하는 시스템(Zonal attachment)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 정부는 현재 영국 수역의 전체 어획쿼터 중 25%에 불과한 자국 어선의 몫을 50%로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현재 영국에 허용된 몫은 켈트해에서 잡히는 해덕 쿼터의 10%에 불과하며, 프랑스 어선이 66%를 가져가고 있다.
영국은 북해 가자미 쿼터의 4%만 할당받았으며, 영불해협 대구 쿼터의 91%는 유럽 어선들이 차지하고 있다.
반면 EU는 현상유지를 토대로 상대적인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영국의 요구대로 어획쿼터를 배로 늘려줄 경우 이는 EU의 어획쿼터가 30%가량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수석대표는 그동안 어업협정 없이는 무역협정 합의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영국 측 협상대표인 데이비드 프로스트 총리 유럽보좌관이 유럽의 어업을 인질로 삼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율리아 클뢰크너 독일 식품농업부 장관은 전날 유럽의회에서 영국이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원한다면, 유럽의 어선 역시 영국 수역에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U 측의 한 취재원은 "바르니에는 이것이 협상 테이블에 있는 한 절대 의견을 바꿀 수 없다"면서 "만약 그랬다가는 호되게 비판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EU는 우리 제안을 논의하기를 거부했다"면서 "계속해서 EU의 어업정책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독립된 연안 국가로서의 영국의 지위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정부가 수역 접근권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와 연결돼 있다.
사실 전체 경제의 80%를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영국에서 어업의 비중은 크지 않다. 전체 산업 규모는 5억 파운드(약 7천900억원)로, 런던 명품 백화점인 해로즈의 매출보다 적다.
8억 파운드(약 1조2천700억원) 규모인 어류 가공산업을 더하더라도 영국 전체 경제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존슨 총리를 비롯한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그동안 브렉시트가 EU에서 벗어나 국경과 규제의 통제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대표적인 예로 EU에서 벗어나면 영국 수역에서의 통제권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수역 통제권 회복이 브렉시트를 통한 영국의 독립성을 회복하는 상징적인 사례로 여겨지게 된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영국 수역 접근권과 관련해 EU에 양보하거나, 현행처럼 EU 어선에 유리한 어획쿼터가 유지될 경우 당장 존슨 총리는 어민과 지역사회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반대로 EU 핵심이자 영국 이웃나라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영국 수역에 대한 접근권을 잃으면 어민 단체의 분노를 피하기 어렵다.
2022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마크롱 대통령 입장에서는 강력한 로비그룹인 프랑스 어부들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 영국, 독자 국가 보조금 시스템 추진…EU는 경쟁 저해 우려
영국과 EU의 미래관계 협상의 또 다른 걸림돌 중 하나는 공정경쟁환경(level playing field), 그중에서도 국가 보조금 시스템에 있다.
존슨 총리는 전환기간 후 영국의 재원을 미래 기술 분야에 집중 투자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EU는 영국이 독자적인 국가 보조금 시스템을 통해 영국 기업을 지원할 경우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는 EU 기업들이 뒤처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영국의 자유로운 국가 보조금 지급을 제한할 경우 미래관계에 합의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 EU 역시 마찬가지다.
바르니에 수석대표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영국이 어떤 국가보조금이나 지원금 시스템을 채택할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장기적인 경제 파트너십에 합의할 수 있겠는가"라며 "영국이 새로운 규제 자율성을 경쟁 왜곡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핵심 쟁점 관련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시한 내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합의 도달 가능성은 점차 작아지고 있다.
영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합의 가능성을 30∼40%로 보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영국 정부 일각에서는 만약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전환기간 종료 후 몇 달간 영국이 잘 버틸 수 있다면, 향후 재개될 EU와의 협상에서 더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다는 낙관도 나오고 있다.
바르니에 수석대표는 이미 협상 상대방인 프로스트 유럽보좌관에게 연말까지 비준 절차를 마치기 위해서는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영국과 EU가 미래관계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양측은 최근 브뤼셀에서 7차 협상을 마무리했으며, 다음 주 런던에서 추가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pdhis9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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