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브렉시트·코로나19에 영국 연합왕국 '흔들'

입력 2020-09-11 07:07  

[특파원 시선] 브렉시트·코로나19에 영국 연합왕국 '흔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제2 주민투표 요구…최근 지지율 50% 넘어
존슨 총리 '불허' 입장 고수…북아일랜드-아일랜드 통일 가능성도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서 차로 약 1시간을 달리면 스털링 성이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자유와 독립 투쟁의 현장인 스털링 성에 오르면 멀리 들판 위로 13세기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인 윌리엄 월레스의 기념탑이 보인다.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평이지만 월레스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잉글랜드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스코틀랜드인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잉글랜드 정규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살고 싶다"며 겁에 질린 스코틀랜드 농민들을 앞에 두고 월레스는 "적들에게 우리 목숨을 가져갈 수는 있지만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다고 외쳐라"라며 사기를 고양시킨다.
대립을 이어가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는 1600년대 들어 전환기를 맞는다.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후손 없이 죽자 인척간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제임스 1세)에 취임한다.
스코틀랜드가 영국 왕실에 통합된 것이다.
이때부터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합쳐서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후 제임스 2세의 차녀 앤이 1702년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완전히 통합됐다.

◇ 통합 300년 지나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염원 여전
그러나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잉글랜드와 하나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과거 앵글로 색슨족에 밀려 추운 북쪽으로 쫓겨난 켈트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민족적 반감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여전히 토속어인 게일어를 비롯해 자신만의 전통문화와 관습을 유지하며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인은 축구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아닌 상대팀을 응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니컬라 스터전 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이자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는 2018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신 아이슬란드를 응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300년 이상 영국의 일원으로 지내오던 스코틀랜드는 지난 2014년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통해 연합왕국에서 떨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투표는 독립 반대 55.3%, 찬성 44.7%로 부결됐고, 분리독립 움직임은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가 꺼진 듯한 불씨를 다시 살렸다.
2016년 6월 영국은 브렉시트를 결정했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EU 잔류 지지가 더 많았다.
이를 근거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중앙정부에 다시 한번 분리독립 주민투표 개최를 요구했다.
여론에도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스터전 수반이 이끄는 스코틀랜드 자치정부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중앙정부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분리독립 움직임에 탄력이 붙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분리독립 지지율이 꾸준히 50%를 상회하고 있다.
이에 스터전 수반은 내년 5월 예정된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 이전에 분리독립 관련 법안 초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직전 테리사 메이 총리는 물론 현 존슨 총리 역시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을 결코 허용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존슨 총리는 2014년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일생에 한 번 있는 투표였던 만큼 불과 몇년만에 이를 재차 허용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주민투표 실시 여부는 최종적으로 영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하원 절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요구는 결국 가로막힐 가능성이 크다.

◇ 영국, 스코틀랜드 독립→아일랜드 통일로 확대될까 우려
엘리자베스 2세(94) 영국 여왕의 속마음도 결코 연합왕국의 해체를 바라지 않는 쪽에 있다.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여왕은 지난 1977년 노동당 정부가 스코틀랜드의 자치권 확대를 제안하자 의원들에게 "본인은 (잉글랜드가 아니라) 영국(United Kingdom)의 여왕에 즉위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바 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의 독립 추진 움직임이 북아일랜드 등 다른 곳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바다 건너 아일랜드섬은 오랜 기간 잉글랜드의 지배 하에 있다가 1921년 북부 얼스터 지방의 6개주만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영국의 일원(북아일랜드)으로 남고, 나머지 3개주 및 남부 아일랜드는 독립해 아일랜드 자유국을 구성했다.
북아일랜드 내전 종식을 가져온 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굿프라이데이 협정)은 남·북 아일랜드 국민 대다수가 원하면 통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둔 시점에 북아일랜드의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당은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스코틀랜드처럼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묻는 주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아일랜드 일부에서는 영국이 EU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면 유럽 단일시장 접근이 차단되고, 아일랜드와의 자유로운 왕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아일랜드 총리인 미홀 마틴 공화당 대표 역시 브렉시트 투표 직후 다수가 지지하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통일을 묻는 투표가 열려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최근 영국은 EU와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내년 1월 아무런 무역협정 없이 EU와 완전 결별하는 사실상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 불확실성에 코로나19 대응, 여기에 자치정부의 독립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영국의 정식 국명인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pdhis9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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