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30년]① '서서갈등' 관리 능력, 통일후 사회통합 원동력

입력 2020-09-30 07:19   수정 2020-10-01 01:48

[독일통일 30년]① '서서갈등' 관리 능력, 통일후 사회통합 원동력
서서갈등 극복 및 관리, 동서 관계 정상화 및 공존위한 '작은 발걸음'
서독, 신동방정책·동독시민 인권문제 놓고 첨예한 갈등
동서독 분단기 갈등 관리 및 극복 과정에 대한 국내 연구 부족



[※ 편집자 주 = 오는 10월 3일이 독일 통일 30주년 기념일입니다. 한반도의 유일한 분단 극복 참고사례인 독일 통일의 과정 및 현재를 통해 한반도의 현실에 맞는 시사점을 3일간 3편의 연재를 통해 살펴봅니다.]

①[독일통일 30년] '서서갈등' 관리 능력, 통일후 사회통합 원동력 ←←
②[독일통일 30년] "증오 집단엔 권력안줘"…'마음장벽'도 허물기 진행형
③[독일통일 30년]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 인터뷰…독일 통일과 한반도 정세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통일이 성공적이라는 것은 국내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통일 30주년을 맞이한 독일은 사실상 유럽의 맹주로 자리잡았다. 유럽에서도 시민사회가 가장 성숙한 국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왔다. 극우세력의 발호에 대해서도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성공에는 동서독 분단 당시 정치권 및 시민사회에 축적된 갈등 극복 및 관리 능력이 뒷받침돼 있다. 통일 후 혼란상 속에서도 통합의 길을 꾸준히 걸을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다.
이는 아직 한국 사회가 독일 통일 사례를 바라보면서 간과하거나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지점이다.
서독은 대동독 정책을 둘러싼 서독 내의 갈등을 극복 및 관리했고, 이를 통해 동독과의 관계 정상화 및 공존을 위한 '작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동독에서는 민주화를 열망한 시민이 주체가 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독일은 통일 이후 사회적 혼란과 높은 실업률 등으로 한때 '유럽의 병자'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까지 들었지만 이를 이겨내며 유럽의 경제 최강국 자리를 다져왔다.
경제적으로도 동서 간의 격차를 상당히 줄였다. 그러나 '마음의 장벽'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고, 새로운 문제를 파생시키기도 한다. 옛 동독지역에서 이른바 '2등 시민'이라는 자괴감은 극우세력의 자양분이 됐다.
성공한 통일을 이루며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독일의 모습은 분단의 질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반도에 유일한 통일 참고사례가 돼 왔다.
한국의 정상들은 독일에서 한반도 통일 및 평화 관련 정책 구상을 내놓아왔다.
한국 사회는 독일 통일과 관련된 기념일이 되거나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독일 통일 사례로 고개를 돌려보곤 한다.


이러한 움직임에는 유행도 있다. 정권의 지향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독일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2등 시민'론에 주목하는 경향이다. 동독 출신 시민의 서운함과 극우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꾸준히 이뤄져 온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연구 외에 최근 이뤄지는 게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 연구다.
이 문제는 독일 사회에서 난민 대량 유입과 커지는 양극화와 연관이 크다. 한반도 분단 극복 및 통일과도 관련이 있지만, 한국의 상황과 비춰볼 때 사실 정치·사회학적으로 의미가 있다.
저출생, 고령화 속에서 외국인 노동력의 유입이 늘어나는 등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 타자에 대한 혐오정서가 커지는 현실과 맞닿아있는 것이다. 독일이 동서독 통합에 이어 난민의 사회통합이라는 과제까지 떠안은 다면적인 사회이기에 이만한 연구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현재 한반도 상황과 연관지어 독일에서 교훈을 찾기 위한 연구는 상당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한반도에서는 비슷한 유형의 현안으로 남남갈등이 반복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이번 정권들어 급진전한 남북 관계는 북핵문제 및 북미관계의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뒷걸음질 쳤다.
과거 동서독 분단기에도 정도가 다르지만 한반도와 비슷한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서독 내, 동서 간 갈등은 큰 파열음을 내면서도 생산적인 에너지로 전환되며 통일의 길을 밟아나갈 수 있었다.
서독에서는 1950∼1960년대 동서독 간 대결적 구도로는 평화체제 구축 및 통일의 길이 요원하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1970년대에 교류·협력 추진 정책인 신(新)동방정책이 실시됐다.
반전과 탈권위를 내세운 '68 학생운동'의 유산도 기존의 질서를 배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신동방정책은 서독 사회에 극심한 분열을 낳았다. 보수와 진보 간에 '서서갈등' 속에서 동서독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인 기본조약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신동방정책을 추진한 여당 내에서도 의원들이 잇따라 탈당했고, 야당은 빌리 브란트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까지 진행하는 등 대결적 구도가 이어졌다.
1980년대에도 이전보다 덜했지만 대동독정책을 놓고 정치·사회적 갈등은 여전했지만, 갈등이 관리되면서 보수세력이 대동독 경제적 '퍼주기'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동독의 인권 문제도 '뜨거운 감자'로 서독 내 갈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지만, 동독에 대한 경제적 대가 제공과 동독 내 인권탄압의 지속적인 기록 등을 통해 접근했다. 역시 치열한 논쟁과 타협을 통해서다.
서서갈등이 관리되자 동서 간 여러 현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해법 찾기도 수월해졌다. 서독은 국내 갈등이 관리되다 보니 외교적으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도 상당히 유연하게 모스크바, 동베를린과의 대화 통로를 넓혀갈 수 있었다.
갈등을 딛고 최소한의 합의를 찾아갔던 분단기의 경험은 갑작스러운 통일을 맞이해 사회통합을 빠르게 이뤄나가는 데 중요한 지렛대가 됐다.
분단 상황 관리의 핵심이었던 이런 서독 내 정치·사회적 진통은 현재 한국에서 거의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분단기에는 유학생들을 통해 연구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통일 후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으로 연중 기획 '서독의 기억'을 연재하며 서서갈등의 극복 및 관리 과정을 살펴봤는데, 한국의 관련 연구가 현실 사례와 비교 연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됐거나 많지 않은 점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분단기의 연구는 대부분 20∼30년 전에 실시된 한국 정부의 용역 사업이 많았는데, 독일 진보와 보수 간의 정치적 갈등 구조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껴갔다. 당시 시민사회의 모습 역시 간과됐다.
이러다 보니 동서독 분단기의 잘못된 정보가 한국 사회에서 사실로 굳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옛 서독이 대가를 지급하고 동독 반체제 인사들을 데려온 '프라이카우프'(Freikauf)다.
기존에 한국에서는 서독 내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 없이 이어져 왔고, 언론이 정부 요청으로 보도 유예를 했다는 게 통설이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추진 과정에서 일찌감치 보도가 이뤄졌고 총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일 정도로 정치권에서 논란이 벌어졌다는 점을 '서독의 기억' 연재 과정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독일도 서독에 대한 기억을 점점 잊고 있다. 성공한 역사를 놓고 당시 갈등 상황을 조명할 필요성이 떨어진 셈이다.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은 "서독 사회에서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대동독 정책의 연속성이 담보됐던 이유는 첫째 대치 중인 상대와 대화를 해야 하지만, 둘째 우방과의 대화와는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는 데 진영을 넘어 최소한의 합의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며 "내부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정치문화 성숙의 계기로 삼았던 분단기 서독이 아직은 통일 독일보다 우리에게 더 큰 현재성을 갖는 이유"라고 말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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