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에 영감받은 '색채의 마술사' 겐조…형식파괴로 스타덤

입력 2020-10-05 18:11  

68혁명에 영감받은 '색채의 마술사' 겐조…형식파괴로 스타덤
기모노에 파리 리본 결합…꽃봉오리 디자인 향수병이 상징
여성복에서 남성복·향수·인테리어로 확장…코로나로 '마침표'



(파리·도쿄=연합뉴스) 현혜란 박세진 이세원 특파원 = "색채의 마술사가 프랑스에서 잠들다."
일본 언론은 5일 프랑스 파리 인근 뇌이쉬르센의 한 병원에서 전날(현지시간) 8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자국 출신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高田賢三)의 부고를 전하면서 이처럼 고인을 색채의 마술사로 칭송했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에 거주해 온 겐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양성 판정을 받고 지난달 10일 입원한 뒤 일본 측 관계자들과 메일을 주고받았지만, 곧바로 연락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10월 들어서는 한층 상태가 나빠져 결국 전날 파란만장한 삶을 자신의 꿈을 펼쳐온 프랑스에서 마감했다.

◇ 빈털터리로 파리 입성…풍부한 색상·기모노풍 옷으로 승부

1939년 일본 효고(兵庫)현 히메지(姬路)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겐조는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대한 꿈을 키웠다.
누나들이 보던 패션 잡지를 탐독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애초 고베시외국어대에 진학했다가 중퇴하고 도쿄의 패션 교육기관인 분카후쿠소가쿠인(文化服裝學院)에 원서를 냈다.

여학생만 받던 이 시설의 남성에게 문을 열자 겐조가 남자 교육생 1호가 된 것이다.
겐조는 패션 브랜드 니콜 창업자인 마쓰다 미쓰히로(松田光弘), 고시노 준코 등 나중에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 동급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신의 눈을 키웠고 재학 중에 신인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하는 소엔(裝苑)상 수상자가 됐다.
겐조는 졸업 후 산아이(三愛), 미쿠라 등 의류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1965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불어를 거의 못 했고 사실상 빈털터리였던 겐조는 패션 도시 파리를 한번 둘러보려고 갔으나 문화적 매력에 빠져들어 눌러앉았다.
당시는 1968년 5월 파리에서 절대적 자유를 외치며 기성세대에 대한 거대한 분노를 표출했던 '68혁명'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때였다. 이런 흐름을 가까이서 지켜본 것은 겐조가 기존 패션과 다른 흐름을 추구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부유층을 중심으로 한 주문형 의상에서 서민층을 즐겨 입는 기성복으로 패션업의 축이 이동하는 과정에 68혁명이 있었던 셈이다.
겐조는 이와 관련해 "나의 디자인 인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나는 정치적 논쟁이나 이데올로기에 별로 흥미가 없는 전형적인 탈정치적 인간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 분노하고 기존 관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만은 피부로 느꼈다"고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겐조는 프랑스 브랜드 레노마 보조 스타일리스트 등을 거쳐 만 30세인 1970년 파리에 자신의 첫 번째 부티크 '정글 잽'(Jungle Jap)을 열었다.
개점은 순탄치 않았으나 겐조가 유명해진 계기가 됐다.
씀씀이가 헤퍼서 변변히 모아놓은 돈이 없었던 그는 개점에 앞서 일본의 지인에게 부탁하고 고향 집에 가서 머리를 조아린 끝에 어렵게 500만엔(약 5천500만원) 정도를 마련했다.
겐조는 도쿄의 아사쿠사(?草) 일대를 돌며 전통 의상 원단 등을 사 모았고 파리에서 사들이 리본이나 면직물을 조합해 새로운 스타일의 양복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4개월에 걸친 준비 끝에 약 40개의 작품을 내놓으며 정글 잽의 문을 열었고 이때 내놓은 의상 중 한 벌이 패션지 '엘르'(ELLE)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갈채를 받았다.

겐조는 화려한 색채와 대담한 무늬를 조합한 민족의상에 착안해 디자인했고 겹쳐 입기 등을 활용한 옷을 내놓기도 했다.
기모노 원단과 여름용 무명 소재를 활용한 작품이 호평을 받았고 1970년대 중반에 겐조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고 1976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내놓았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겐조가 당시 기성복 패션을 선도한 한 디자이너로서 풍부한 색상과 기모노풍 디자인을 활용한 옷을 내놓아 파리 사람들에게 참신한 인상을 주면서 인기를 끌었다고 전했다.

◇ 의류에서 향수까지 영역 확대…인테리어에도 도전

여성 의류를 중심으로 유명해진 겐조는 이후에도 계속 활동 영역을 확대했다.
그는 1983년 남성 컬렉션을 선보였고 1988년에는 향수를 출시했다.

용량에 따라 각기 개화 정도가 다른 꽃봉오리가 디자인된 향수병은 겐조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1994년 여름 파리를 대표하는 다리 '퐁뇌프'를 꽃과 담쟁이덩굴로 수놓은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타올 등 생활용품에 패션을 입힌 라이선스 상품도 쏟아냈다.
겐조는 1993년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에 자신의 브랜드를 매각한다.
하지만 창업자가 떠난 패션 브랜드 겐조는 올해 초 신상품에 욱일기를 연상하게 하는 디자인을 넣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겐조는 1999년 패션계에서 떠나겠다고 선언했으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일본 선수단 유니폼을 디자인하는 등 창작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미야모토 아몬(宮本亞門)이 연출한 오페라 나비부인의 의상을 담당했고 올해 1월에는 인테리어 브랜드 '케이스리'(K三)를 만드는 등 도전을 계속했다.
매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가구 전시회에서 케이스리를 선보이고자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인은 1999년에 일본 정부의 자수(紫綏)포장, 2016년에는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장을 받았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세계적인 일본인 디자이너로 대활약을 하신 분"이라며 겐조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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