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방탄소년단 생트집' 中환구시보 넌 누구냐

입력 2020-10-24 07:07  

[특파원 시선] '방탄소년단 생트집' 中환구시보 넌 누구냐
강성 민족주의와 안보 선정주의의 결합…중국서도 '너무 나간다' 비판
'먹잇감' 생기면 맹공하며 갈등 키워…사드 땐 한국에 "김치 먹어 멍청" 막말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종종 다른 나라를 맹공하는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방탄소년단(BTS)에 시비를 잘못 걸었다가 체면을 구기게 됐다.
최근 한중 양국을 뜨겁게 달군 방탄소년단의 '한국전쟁 발언 논란'이 수그러드는 모습이다.
사실 세간의 관심 밖이던 '밴 플리트상' 수상 소감을 공론장으로 끌고 와 뜨거운 이슈로 만든 것은 환구시보다.
'한미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는 수상 언급에 반감을 느낀 일부 중국 누리꾼의 반응을 전하는 형식의 기사를 만들어 지난 12일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크게 보도하면서 이를 모르던 대중들의 분노를 유도하는 '좌표 찍기'를 한 것이다.
환구시보가 짠 '중국 무시' 프레임은 중국 대중에게 효력을 발휘했다. '사드 보복' 악몽을 떠올린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은 본능적으로 방탄소년단 홍보물들을 내리는 등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환구시보의 공세는 곧바로 중국 당국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렸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보도 당일 브리핑에서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향하고 평화를 아끼며 우호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구시보를 두둔하는 대신 대신 한중 우호를 강조함으로써 갈등 확산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완곡히 표출한 것이다.
머쓱해진 환구시보는 15일 한중 누리꾼 갈등의 원인이 한국 언론의 선정적 보도에 있다는 뜬금없는 '해명성 보도'를 내놓았다.
방탄소년단 공격을 주도했다가 물러나면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자기 합리화' 차원의 행동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외교가에서는 환구시보가 '대국'(大局) 못 읽고 방탄소년단을 섣불리 '먹잇감'으로 삼으려 했다가 모양새만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중 갈등 증폭, 코로나19, 홍콩보안법 강행, 인도와 국경 분쟁 등의 여파로 중국의 대외 환경은 매우 악화한 상태다.
주요 20개국(G20)을 포함해 세계 주요국 가운데 중국과 관계가 원만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우군 확보가 절실한 중국은 최근 한국에 적극적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거칠게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배제하려 하고 한다. 또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피해 미국·일본·유럽·대만 등지 기업의 리쇼어링(자국 복귀)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메모리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전체 교역 규모도 큰 한국이 미국 주도의 '쿼드 플러스' 같은 '반중 연대'에 합류하지 않고 최소한 중립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전엔 우리가 사드 후 한중 관계의 정상화에 마침표를 찍는 측면에서 시 주석의 방한을 강하게 원했다면 지금은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더 원하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미리 계산서를 잘 준비해 내밀 때"라고 말했다.
결국, 중국이 한중 관계 개선을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시점에서 환구시보가 눈치 없이 휘발성이 큰 이슈를 굳이 만들어내 한중 양국 국민의 감정의 골만 깊게 패게 한 셈이다.
한국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도 자주 인용되다보니 한국에서도 환구시보라는 이름은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환구시보는 중국에서 매우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는 국제뉴스 전문지다.
중국 대부분 신문은 국제 뉴스 면을 만들 때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를 옮기는 것 외에 자율적 편집권과 기사 작성권이 크게 제약된다.
하지만 중국인의 시각으로 국제 뉴스를 전한다고 표방하는 환구시보는 비교적 자유롭게 국제 뉴스를 다룰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환구시보는 거칠고 공격적인 논조로 악명이 높다. 타국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가라앉히는 것보다는 확대하기가 일쑤다.
수익보다는 당 선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모기업 인민일보와 달리 환구시보는 발행 부수가 200만부에 달하는 상업지다. 이런 탓에 환구시보를 두고 '안보 상업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의 결합한 기묘한 매체라는 평가도 나온다.
때로는 언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저속한 표현을 동원해 상대국을 공격하는 일도 잦다.
사드 갈등 때인 2017년 9월에 한국을 향해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 같은 막말을 쏟아내면서 반한 감정 조성에 앞장서 한국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런 색깔을 주도하는 것은 창간 초기부터 환구시보를 이끌어온 후시진(胡錫進·60) 총편집인이다.


완장을 찬 듯 중국 공산당의 '비공식 대변인'처럼 행세하는 그는 지난 5월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호주를 겨냥해 "항상 소란을 피우며,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처럼 느껴진다. 가끔 돌을 찾아서 문질러줘야 한다"는 오만함이 가득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환구시보의 이런 행태를 '방치'하면서 때로 타국을 공격할 때 적절히 활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중국 당·정이 직접 입장을 밝히거나 무게감이 있는 인민일보나 중국중앙(CC)TV 같은 관영 매체를 통해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거친 말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압박하는 데 환구시보의 활용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에 대한 빗나간 공격에서 볼 수 있듯이 환구시보가 항상 당국의 기류를 정확히 읽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중국 내부에서도 환구시보의 '폭주'를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외교가 원로인 우젠민(吳建民) 전 외교학원장은 2016년 강연에서 후 총편집인이 전체 포석을 보는 시야를 갖추지 못한 채 국제 현안을 엉망진창으로 논한다고 꼬집으면서 강경 대외 여론을 주도해온 환구시보를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우한의 한 지하차도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구호로 내건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집권기에 중국인의 민족주의 정서와 '대국주의'는 날로 강해지고 있다. 강경파의 목소리가 온건파의 목소리를 압도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환구시보는 더욱 목청을 키우는 모양새다.
중국의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환구시보가 항상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다른 사회에서도 그렇듯이 매파 목소리가 큰 경향이 있어 매파 목소리만 듣고 중국이 이럴 것이라고 판단하면 착오가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가에서는 환구시보가 중국에서 갖고 있는 위상보다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면서 '제대로 보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의 한 외교관은 "중국 정부나 관영 매체들이 민감한 문제와 관련해 침묵할 환구시보가 나서 목소리를 내면서 한국 기자들도 자주 인용하게 되고, 이를 통해 환구시보의 존재감이 커진 측면이 있다"며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신문인지 의문이 들 때가 적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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