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만찬]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수학을 공부한 사람은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죠”

입력 2019-02-0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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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사진=서범세 기자)

[하이틴잡앤조이 1618=박인혁 기자] “수학에는 철학이 들어 있다. 수학을 공부한 사람은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양심에 반작용이 생긴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은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버티고 수학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마침내 민선 교육감 3선에 성공한 그는 교육으로 청년들이 더욱 다양한 진로를 꿈꾸고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하이틴 잡앤조이 1618> 취재진이 1월 24일 강원도교육청에서 민병희 교육감을 만났다.



△ 장난꾸러기였던 유년시절. 맨 왼쪽이 민병희 교육감 (사진 제공=본인)

유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어떤 학생이었는가.



“6·25전쟁 정전 협정을 맺은 1953년에 태어났다. 당시에는 사회가 혼란하다 보니 나이나 호적도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동생과 형의 호적이 바뀐 경우도 본 적 있다. 나도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남들보다 이른 5살에 들어갔다.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기는데 늘 5번에서 7번 사이였고 많아봤자 17번 정도였다. 고3 졸업할 즈음에야 체격이 비로소 비슷해졌다. 어려서부터 온갖 말썽을 피우는 장난꾸러기였지만 절대 남을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계속 괴롭히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너무 심하게 괴롭히기에 하루는 날을 잡아서 지지 않고 대들었다. 하루 마음을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옷이 찢어져 없어질 때까지 항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니까 녀석이 그제야 먼저 그만하자고 했다. 소신과 집념을 토대로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는 성격은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 학교를 일찍 입학해 또래보다 작았던 고등학교 재학 시절 (사진 제공=본인)



고등학교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고등학교 교복에 1학년은 First의 F, 2학년은 Second의 S, 3학년은 Third의 T 모양의 배지를 다는 규정이 있었다. 입학하고 배지를 사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2학년 올라간 선배한테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2학년 선배가 멀리서 깍듯이 경례했다. 그러더니 가까이 다가와서 ‘뭐야 놀랐잖아’라며 벌컥 화를 냈다. 알고 보니 배지가 닳아서 F의 가운데 한 획이 떨어지니 T처럼 보였다. 초면에 서로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여러 과목 중에 수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국어, 영어, 수학 중에서 수학은 중간 정도 성적이었고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은 국어와 영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주번 종례를 하고 왔는데 영어 교과서가 없어져 버렸다. 다시 사달라는 말을 집에 차마 못했는데 교과서 없이 1년이 지나고 나니 그다음부터 진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대학도 처음에는 법학과나 신문방송학과를 가고 싶었다. 서울에 원서를 내려고 했는데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약속 장소인 춘천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혼자 가기도 찝찝해서 망설이다가 가지 않았다. 당시 강원대에 교육학부가 새로 생기면서 국영수와 체육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영어는 아무래도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고 국어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국어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책에다가 빈틈없이 무언가를 적어오고 시험문제 낼 때도 자필로 빼곡히 출제하던 걸 보아왔기 때문이다. 수학은 분필 하나로 모든 걸 가르칠 수 있는 명쾌한 과목이고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에 수학교육과를 선택했다. 

수학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사실 수학은 정답이 중요한 학문이 아니다. 수학을 공부하면 논리적인 사고력과 추리력,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생긴다. 그리고 수학은 문장이다. 가장 명확하고 간략하게 구성된 문장이 수학이다. 문장의 ‘그리고’를 수학에서는 콤마(,)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만큼 논리적인 내용이 수학에 집약됐다는 뜻이다. 수학은 증명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옳지 않으면 그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제대로 수학을 공부한 사람은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양심에 반작용이 생긴다. 그래서 수학이 철학적이라고 말한다.



△ 강원대학교 수학교육과 1학년 시절 (사진 제공=본인)

그럼에도 수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최근에는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동안 수학 교육이 정답 맞히기에만 치중해왔기 때문이다. 미분과 적분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유리컵의 부피를 재야 하는데 모양이 복잡해서 잴 수가 없다. 이때 컵을 쇠그릇에 집어놓고 가루가 되도록 부수면 그게 미분이다. 그걸 주워 담아서 다른 용기에 넣고 재면 그게 적분이다. 이런 개념을 먼저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동안의 수학교육은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기계적으로 풀게 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다. 나도 처음에는 수학교육과 선택을 후회할 정도로 공부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유급을 거쳐 마지막 학기까지 고생한 끝에 간신히 졸업했다. 나중 수학에 심취해서 공부한 끝에야 이렇게 심오한 학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수학을 공부하며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학생들이 이해를 못 한다고 다그치거나 혼낸 적은 없다.




첫 교직생활부터 3선 교육감에 이르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나.



강원대학교에서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정선여자중고등학교에 수학교사로 발령 났다. 군대 다녀와서 복직 발령받고 교사의 길을 걷다가 1989년 전교조 주동자로 해직 명령을 받았다. 4년 반을 거리의 교사로 있다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이 되면서 1993년 소양중학교로 복직했다. 그 후 몇 개 학교를 거쳐서 교육위원이 됐다. 4년 임기를 두 번 채워 8년 동안 교육위원을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주도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교육감에 도전했다. 주민직선제로 도민들의 선택을 받아 초대교육감으로 당선됐고 그 후 3선까지 하게 됐다.

3선 교육감으로 특성화고 관련해 어떤 정책을 펼쳤는가.

강원도교육청에서는 취업지원관을 2006년부터 배치하고 취업에 활용해왔다. 취업지원관은 취업하고 싶은데 적성을 모르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전문 인력이다. 강원도교육청 본청은 물론 지역마다 취업지원관이 있다. 학생들은 취업지원관에게 상담을 신청하고 취업지원관은 우수 취업처를 발굴해 학생과 연결한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도 꾸준히 지속해왔다. 강원도는 이미 6년 전부터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급식비를 포함해 돈이 전혀 들지 않는 무상 교육을 시작했다.

특성화고 지원으로 좋은 결과가 나타난 구체적 사례가 궁금하다.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의 경우 학교 리모델링도 하고 체육관도 제대로 짓는 등 그럴듯하게 투자했더니 교사와 학생이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 시설이 좋아진 만큼 존중받는 느낌을 받게 되니 특별한 생활지도 없이도 사건 사고가 줄어들고 학생들이 공부도 열심히 한다. 교육감으로 처음 취임했을 당시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 취업률이 14% 수준이었는데 취임 이후로는 매년 50% 이상을 기록했다. 홍천농업고등학교도 좋은 예다. 과거에는 많은 농업고등학교가 있었고 졸업생들이 농업은 물론이고 정치와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많은 농업고등학교가 신입생 입학이 줄어드니 이름을 ‘농생명고등학교’와 같이 바꾸면서 순수 농업고등학교는 거의 남지 않았다. 2019년 현재 순수 농업고등학교는 전국에 두 곳뿐이고 그중 하나가 1946년 개교한 강원도 홍천농고다. 2017년 홍천농고를 창조농업 선도학교로 지정하고 기숙사와 실습장을 최신 현대화 시설로 마련했다. 현재 학생들이 농사지은 농작물에 대한 홍보와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뿐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들이 와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농업교육의 메카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홍천농고의 변화를 통해 농업학교가 왜 중요하고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일깨우고 누구나 농업학교에 가고 싶게 만들겠다.

강원도 내 마이스터고등학교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강원도의 마이스터고등학교는 2010년 의료기기 관련 전공으로 문을 연 원주의료고등학교와 2013년 발전설비 분야로 개교한 삼척마이스터고등학교가 있다. 원주의료고는 의료기계과 및 의료전기전자과를 개설해 매년 80% 넘는 취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산업수요 변화를 고려해 2019년부터는 지정 분야를 일부 변경해 바이오의약 분야 신입생을 두 학급 선발할 예정이다. 2013년 첫 신입생을 선발한 삼척마이스터고는 2015년부터 3년 연속 취업률 100%를 유지하고 있다. 두 마이스터고는 강원도 직업계고의 취업 선도모델 역할을 한다.

2018년도에는 소방청장과 심도 있는 협의를 진행한 끝에 영월공업고등학교가 소방 분야 마이스터로 지정됐다. 2020년 4개 학급 80명 신입생을 전국 단위로 모집할 예정이다. 소방공무원은 현재 전국단위 모집을 하는데 마이스터고 설립을 계기로 강원도 학생들이 많이 합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성화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강원도교육청만의 정책은 무엇인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것에 맞게 교육과정을 바꿔줘야 한다. 강원도형 마이스터학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마이스터고등학교는 교육부가 지정해야 하지만 마이스터학과는 교육감 권한으로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신기술을 필요로 하는 신산업이 등장하는데 기존에 있던 학과들은 연계되는 부분이 미흡하다. 강원도 내 학교들이 새로운 산업과 지역 요구에 맞게끔 학과를 개편하기 위해 강원도교육청에 신청하면 선정위원회를 열어서 자료를 토대로 강원도형 마이스터학과를 지정한다. 기존 학과를 지역 특성에 맞게 개편하니 일반 학과와 비교하면 마이스터학과가 2배 이상 취업률이 높다. 2017년 기준으로 직업계고 전체 평균 취업률이 36.5%인데 마이스터학과는 63.3%에 달한다.



△ 강원도 특성화고 정책을 설명하는 민병희 교육감 (사진=서범세 기자)


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이 많다.

학부모나 학생들이 아직도 대학은 꼭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담임선생님이 바뀌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분야에 적성이 있고 흥미를 느끼는지를 파악하는 기간이다. 담임선생님이 그 아이가 진학이든 취업이든 어떤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권장하면 부모는 99% 따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특성화고를 권장하면 부모가 왜 특성화고에 보내야 하냐고 항의한다. 학생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다양한 길들이 서열화 됐기 때문이다. 1등부터 100등까지 여러 삶의 길들에 서열을 정하고 1등과 2등 사이에서 다시 서열을 나눈다. 낮은 서열로 분류된 사람들은 임금을 적게 받아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싹트면서 특성화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시작된다. 이런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특성화고 입학을 권유하기 어렵다. 더 원론적으로 분석한다면 중소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며 사업을 영위할 만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취직한다. 가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노동인권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을 받으면 특성화고에 더욱 우수한 학생들이 오게 되고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그런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중소기업이 사업을 통해 이윤을 남길 수 있게 하고 그 이윤을 오너가 독식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함께 나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변화야말로 특성화고등학교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대한 편견을 개선할 도 교육청 차원의 방법은 무엇인가.

평가를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 강원도교육청은 초중고 교육을 바꿔서 대입제도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초등학교는 행복성장평가제, 중학교는 배움성장평가제를 시행한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일제고사를 보지 않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평가하는 제도다. 초등학교의 경우 등수가 존재하지 않고 중학교도 자유학년제를 진행할 때는 성적을 매기지 않는다. 이처럼 교육 현장의 변화를 통해 조금씩 인식을 개선하고 있다. 물론 제도적으로 인문계고의 학급 수나 학급당 정원을 감축해서 직업계고 입학을 유도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의 진로선택권을 제한하는 방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취업률이 높은 학교는 신입생 경쟁률도 높고 관련 분야에 대해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과체험이나 진로박람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과 학부모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있음을 인식시켜야 한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하고 싶은 걸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부산에 한 초등학생이 지은 ‘여덟 살의 꿈’이라는 시가 화제가 된 적 있다. ‘나는 OO초를 나와서 / 국제중을 나와서 / 민사고를 나와서 / 하버드대에 갈 거다 / 그래 그래서 나는 / 내가 하고 싶은 / 미용사가 될 거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겠지만 결국 나는 미용사가 되겠다는 이야기다. 만약 부모가 아이에게 미용사가 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이는 미용사가 되기 위해 미용과 관련된 책도 보고 미용실에 가도 관심 있게 봤을 거다.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상상하며 영어 인터뷰를 대비해 영어 공부를 하거나 파마에 대해 심취해서 연구하다가 화학 공부를 했을 수도 있다. 꿈에 대한 응원이 동기 부여가 되고 자연스럽게 학습을 유도한다. 획일화되고 서열화된 길을 따라가기보다 다양한 길을 걸었을 때 각자를 그 분야의 승리자로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

hyu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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