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화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대기업-스타트업 상생 위한 해답은 M&A 활성화”

입력 2020-04-21 15:03   수정 2020-04-23 13:49


한정화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중기청장서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으로

우리나라 창업의 가장 큰 약점은 ‘우수인재 결핍’

재단이 정부 창업정책 방향키 제시하는 ‘싱크탱크 될 것

[캠퍼스 잡앤조이=이도희 기자] 신용을 목숨처럼 생각하라청년기업가를 위해 故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경영신조 중 한 가지를 추천해 달라는 요구에 한정화(67)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뽑아낸 문장이다.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신용만 있다면 돈을 대줄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청년기업가들이 신뢰와 신용을 얻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창업전략경영과 기업가정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대중공업 기획관리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한정화 이사장은 2011년, 창립 초기 이사회 멤버로 처음 아산나눔재단과 연을 맺은 뒤 한양대 경영대 교수, 중소기업청장을 거쳐 지난해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산()과 학()을 아우르며 일평생 ‘혁신’ 두 단어를 가슴에 품고 국내 창업 발전을 위해 애써온 그를 4월 16일, 서울 중구 아산나눔재단에서 만났다. 





[한정화 이사장 주요 약력]

1954년 7월 30일생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특훈교수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美 조지아대학교 (University of Georgia) 경영학 석사

美 조지아대학교 (University of Georgia) 경영학 박사

1977~1978 현대중공업 기획관리실

1978~1981 KAIST 경제분석실

1988~1989 KAIST 과학기술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1989~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1998~2005 한국벤처연구소 소장

2011~2013 아산나눔재단 이사

2013~2016 제13대 중소기업청장

1998~2005 한국벤처연구소 소장

3년간 이사로 있다가 지난해 12월 ‘이사장’으로 재단에 복귀했다. 돌아온 계기는 무엇인가

“그간 창업생태계를 다각도로 연구해왔던 게 재단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 정몽준 명예이사장과 오랜 인연이 있기도 하다. 서울중앙고등학교, 서울대 상대 동문이고 현대중공업 기획실에서는 신기하게 앞뒷자리에 있었다.

‘창업과는 처음에 어떻게 연을 맺었나

“박사과정으로 창업전략경영과 기업가정신 등을 공부하며 스몰비즈니스를 연구한 게 시작이다. 당시 조교로 있으면서 기업의 흥망성쇠를 연구했고 자연히 스타트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삼성이 정미소에서 시작하고 현대가 쌀가게에서 출발한 것처럼 모든 대기업은 스타트업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나.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가들에게 자문을 하면서 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재단 이사장으로서 바라보는 최근의 국내 창업생태계는 어떠한가. 9년 전 이사로 있을 당시와 비교했을 때 차이가 있나

“확실히 활발해졌다. 90년대 말 벤처붐에 이어 약 10년 전부터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극복해야 하는 약점은 존재한다. 가장 큰 건 ‘우수한 전문 인력’이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 단적으로, 미국에선 페이스북에 창업 소식을 올리면 ‘좋아요’를 받아도, 대기업 취업 소식에는 호응을 얻지 못한다. ‘정말 똑똑하면 자신의 사업을 하지 왜 남 밑에서 일하나’라는 인식이 강하다. 우리는 아직 그 반대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실패비용(cost of failure)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에는 과거 창업자 연대보증’ 제도가 있었다. 회사가 부채를 얻으면 CEO나 대주주가 연대보증을 서게 하는 건데 회사가 망하는 순간 이게 개인부채가 되고 CEO는 결국 신용불량자가 돼 버린다. 즉 사업실패가 인생실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똑똑할수록 안정적인 곳을 지향한다. 부모들도 창업을 많이 반대한다. 결국 우리나라 창업은 양적으론 활발하지만 질적으로는 아직 멀었다. 반면 창업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중국의 스타트업은 최정예인력으로 꾸려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질 좋은 창업(high quality start-up)’이 많아져야 한다. 정부가 유니콘기업을 늘리겠다며 여러 정책을 쓰지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친구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도록 하는 것이다.” 

2013년, 중소기업청장 재직 당시 ‘팁스’를 직접 디자인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당시 정부가 기술창업을 활성화하는 데 2000억원 가까이를 쓰고 있었다. 기업당 1~2억원씩 지원하는 셈인데 기술창업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래서 ‘1+9’를 기조로 하는 팁스(TIPS)를 만들었다. 민간 액셀러레이터나 벤처캐피털, 엔젤투자자 등으로부터 1억 원 투자를 받으면 정부가 3년 동안 9억 원을 추가 지원한다. CEO 개인 부담금을 0원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900개 이상 기업이 팁스의 지원을 받았고 팁스 플러스, 프리팁스, 포스트 팁스 등으로 계속 사업이 확대하고 있다.”

*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중소기업청이 2013년 도입한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프로그램. 민간 운영사(엔젤투자자, VC)가 창업팀을 선정해 최소 1억 원을 투자하고 정부가 3년간 최대 9억원을 덧붙여 지원해주는 제도다.



아산나눔재단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지렛대’다. 재단이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싱크탱크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을 정확히 진단하고 현장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악해서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한마디로 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한 조사연구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종국적으로는 올바른 정부정책을 위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의 벤처 관련 직간접 비용이 연간 몇 조원에 달한다. 방향만 잘 잡으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재단이 가장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무엇인가

“‘재도전지원법’이다. 영국의 파산법과 비슷한 것으로, 채무의 원인을 파악해서 정직한 채무자는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청장 때도 검토했는데 워낙 여러 부처가 얽혀있어 시행까지는 꽤 험난하리라 예상은 한다. 하지만 8년째 꾸준히 이 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올 2월 말 재단의 후원으로 관련 포럼도 했고 중소벤처기업부도 계속 설득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창업 실패비용을 줄이고 CEO들이 쉽게 재도전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 창업은 한 번에 성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아한형제들 역시 김봉진 대표의 첫 도전이 아니지 않나.”



한양대에서도 오랫동안 교수로 있었다

“1989년 경영대 교수를 시작으로 창업보육센터 소장을 했고 10년 전에는 교내에 기업가센터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이 창업을 중시하지 않았기에 국내 대학 중 최초로 기업가정신을 가르친 셈이다. 게다가 이 기업가센터를 동문 벤처기업인들이 만들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한양대가 동문창업이 매우 활발하다. 한양스타트업아카데미라는 동문공동교육도 있다.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이 학교를 통해서 믿을만한 멘토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스탠포드나 MIT의 강점 역시 ‘동문의 힘’이다.” 

요새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창업붐이 일고 있다. 어떻게 보나

“일차적으로는 정부지원이 늘어서이겠지만, 학생들의 가치관이 확실히 많이 변했다.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조기 퇴사하거나 40대 중반에 퇴출압박에 시달리는 선배들을 많이 봤기 때문인 것 같다. 매우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진지하게 자기 사업을 해 본 사람은 수십 년간 직장생활을 한 사람과 생각자체가 다르다. 창업은 생존게임이다.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아산나눔재단처럼, 최근 많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대기업 역시 수요와 공급이 받쳐주는 전후방 생태계가 필요하다. 특히 M&A는 스타트업과 대기업 모두가 상생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중국은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스타트업 성장의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한다. 이 세 회사의 투자금액이 100조원에 달한다. 미국도 구글을 비롯해 10여개 민간기업이 적극적으로 스타트업과 M&A를 진행한다. 반면 우리나라 대기업은 여러 제약 때문에 스타트업과 상생하기가 아직은 쉽지 않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하는 순간 여러 걸림돌이 생겨버린다. 그래서 해외 자금이 많이 유입되고 결국 뛰어난 기업들이 해외에 팔려버린다. 계열사 편입 유예 기간을 두는 등 대안을 마련해서라도 국내 M&A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스타트업과 기존업계 간의 갈등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연착륙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타다’ 문제를 검찰에 넘긴 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재웅 대표가 검찰에 출석하는 순간, 이 문제는 더이상 타다만의 문제가 아닌 게 돼버렸다. 은연중에 대중에게 부정적인 학습효과를 주면서 대중이 혁신을 꺼리도록 만든 것이다. 정부가 해결했어야 한다. 공무원은 그러라고 있는 자리다.” 



아산나눔재단의 방향성이 궁금하다

“첫째는 ‘차별화’다. 마루180이 좋은 예다. 지금이야 많지만 당시만 해도 마루180같은 스타트업 입주공간이 많지 않았다. 둘째로는 ‘글로벌’이다. 내년에 여는 마루360을 통해 여러 글로벌 기관과 연대해 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도울 예정이다. 해외벤처캐피탈이나 해외액셀러레이터와 직접 연계해서 초기 단계부터 해외 투자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소셜벤처’에도 관심이 많다. 작년에는 ‘아산상회’를 통해 탈북청년의 창업을 지원하기도 했다.”

청년기업가들에게 故정주영 회장의 창업DNA 한 가지를 추천해준다면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하는 경우는 없다 신용이 없을 뿐이다’라는 말을 추천하고 싶다. 청년기업가들이 신뢰를 얻고 신용을 얻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꼭 알았으면 좋겠다. 1차 벤처붐 당시 상당수가 투자금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길을 모르면 찾으면 되고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것. 이 두 가지만 잘 새겨둬도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기업가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면 

“계속 강조하지만, ‘질 좋은(high quality) 창업’을 위해서는 우수인력이 많이 유입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쪽에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한국인에게는 아주 큰 강점이 있다. 학습효과가 매우 빠르다는 것.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잘 극복한 것 역시 한국인 특유의 순발력과 학습능력 덕분이다. 그래서 재단은 최근 ‘아산 프론티어 유스’ ‘기업가정신 레츠고(Let’s Go)’ 등 프로그램으로 학부모와 교사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국내 창업발전의 중요한 키를 부모와 교사가 쥐고 있다고 본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판검사’라는 공식을 깨는 게 목표다.” 

사진=서범세 기자

tuxi0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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