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중세 길드 혹은 금(禁)난전의 부활

입력 2013-02-11 16:04   수정 2013-02-12 05:33

골목상권 보호론은 수백년 오류
영세상인은 계속 영세하라는 저주
봉건적 경제질서 추구하는 동반위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국제시장은 지역의 문화를 파괴하고 소규모 길드의 전통적 생산방식을 해체한다. 도시의 대규모 상인들은 지역의 독창성과 다원주의를 훼손하며 그 결과 소도시는 지방전체에 의해, 지방은 대도시 시장에 의해, 국가는 국제시장에 의해 침식당한다. 대도시 상품은 생산과정의 단순화(분업)를 통해 공급되기 때문에 당연히 가격이 싸다. 그렇게 소도시 상업은 황폐해져간다. 도시 상인들은 지역 수공업자들의 고객을 빼앗고 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서부 독일 오스나브뤼크에 살던 시골귀족(鄕士) 유스투스 뫼저였다. 이제 막 자본주의가 진군을 시작한 18세기 말이었다. 볼테르와 애덤 스미스가 국제무역을 논하던 시점에 중세 귀족 뫼저는 정반대의 글을 썼다. 서부 독일 오스나브뤼크는 인구 12만5000명의 조용한 도시였고 상업과 정치, 도시와 농촌이 일체화되어 폐쇄적으로 돌아가던 가부장적 사회였다. 자급자족하는 촌락적 질서는 정치 귀족과 상업 길드, 봉건적 농노 체제로 천년을 유지해왔다. 이 조용한 봉건 귀족 사회에 요란한 평등주의, 곧 시장경제가 침투해 들어왔던 것이다.

뫼저야말로 반(反)상업주의, 반(反)자본주의, 반(反)세계화, 그리고 오늘 우리의 주제인 골목상권 보호를 주장한 아마도 최초의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방식의 공업화가 만들어내는 도시형 상품경제가 소규모 촌락 사회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지역 문화에 대한 공격이요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로 받아들였다. 저렴한 가격과 온갖 종류의 도회적 자극과 유행이 촌락민들의 정신을 파고드는 것을 도덕의 파괴와 동일시했다. 그러나 뫼저가 지키고자 했던 그 촌락은 지금 세계에서도 가장 잘살고, 품위 있고, 지적이며, 지극히 도덕적인 그런 선진사회의 한 부분이다.

그가 방어하고자 했던 촌락이라는 단어를 골목상권이나 중소기업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읽어보면 최근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위 동반성장 캠페인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실제로 그가 옹호하고자 했던 것은 상인 수공업 조합이었던 폐쇄적인 길드였다. 업종 목록은 다음과 같다. 대장장이, 구두장이, 제빵공, 제화공, 푸주한, 모피공, 보석세공사, 목수, 주화공, 가발공, 제본공, 외과의, 의류제조공, 아마포 직조공 등등. 이들 작은 길드는 지역 정치와 일체화되어 길드에 속하지 않은 낮선 상인의 침입을 규제하고 외지의 값싼 상품이 지역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단결했던 것이다. 길드는 맏아들만 견습공으로 채용하는 등의 조건까지 자세히 규정해놓았는데 정직한 성격과 좋은 가문 출신일 것도 그중 하나였다는 정도다.

이 길드의 긴 명단은 동반성장위원회가 내놓은 중기적합업종의 긴 목록과 기실 다를 것이 없다. 제빵업이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최근의 골목빵집 논쟁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거의 모든 직종과 업태와 영업행위를 길드화, 조합화, 정치화하고 있다는 면에서 시간을 거슬러가는 그 퇴행적 결과를 심각하게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시장을 잘게 쪼개 조합화할수록 전체 경제는 당연히 더욱 나빠진다. 조합별 납품단가 협상제도 그런 경우다. 열심히 일하는 혁신기업을 배제하고 단가연대를 체결하자는 것이 바로 ‘조합을 통한 단가협상 제도’다. 결국 장사할 자유는 송두리째 파괴되는 것이다.

급기야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인수·합병(M&A)까지 금지한다는 것이어서 이제 제발로 시장에서 걸어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대체 동반성장위원회가 규정하는 적대적인 M&A와 적극적인 M&A, 그리고 그냥 M&A는 무엇이 같고 다른 것인지. 밤잠 안 자고 골목 점포를 키워온 새마을식당이나 놀부식당조차 더는 성장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지난주의 적합업종 선정이었다. 이는 성장 사다리를 모두 걷어치우는 것이고 성공한 자에 대한 질투를 제도화하자는 것이며 한번 영세업은 영원히 영세업이어야 한다는 저주에 불과하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실로 폭력적이었던 금난전권(禁亂廛權)과 다를 것이 없다. 상인단체를 내세워 경제를 파괴한다는 면에서 동반성장위원회는 실로 금난전권을 재생시키는 주자학 위원회다. 일부 경제학 교수들이 이 괴이한 일에 앞장서 있다는 것은 특별히 기록해 둘 만하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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