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99> 당나라의 패망과 조세 귀착

입력 2013-03-15 11:27  


당나라는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한 이래 209년간 20명의 황제를 거쳐 907년 멸망했다. 건국 초기 한족과 외족을 가리지 않는 합리적인 인재 등용과 효율적인 토지제도의 도입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뤄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다. 한문화의 핵심인 유가문화만을 고집하지 않고 불교와 도교의 사상을 받아들여 문화 측면에서도 전례 없는 번영을 가져왔다. 또한 이에 더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통한 활발한 교역으로 서양의 문물까지 흡수했으니, 동아시아에서 당나라의 영향력은 그 어떤 중국 왕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당나라를 무너뜨린 조세제도

이처럼 전성기를 호가하던 당나라의 급속한 패망은 주변국들에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후 당나라의 멸망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원인들이 제기됐으나 경제학적 관점에서 거대 제국 당나라를 무너뜨린 결정적 원인은 국민의 세 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실시한 조세제도라고 볼 수 있다.

당나라의 토지제도는 균전제(均田制)였다. 균전제란 토지를 15세 이상 인구 수에 따라 균등하게 나눠주고 이에 근거해 세금을 거두는 토지제도다. 이처럼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균전제는 농민들이 상업에 종사하면서 토지를 버리고 떠나거나, 부호들의 토지 구입이 늘어남에 따라 더 이상 효율적인 제도가 되지 못했고, 정부 재정은 점차 부실해졌다.

재정이 부실해지자 재정, 국방 등 전반적인 국정 운영이 어려워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들이 보유한 토지와 재산, 그리고 생산량에 따라 1년에 두 번 세금을 납부하는 양세법(兩稅法)을 도입했고 이를 현금으로 내는 금납제를 실시하게 됐다. 세금을 돈으로 내기 위해 농민들은 수확한 농산물을 시장에 팔아 현금화해야 했지만 당시 당나라는 시장경제가 완벽하게 형성되지 못해 거래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러한 문제로 금납제의 도입이 재정 수입 확충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자 당나라 정부는 당시의 가장 주요한 생필품인 소금에 대해 정부가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전매제도를 도입,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소금은 비탄력적 재화
 
소금 전매제도는 당나라의 조세 수입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조세 수입의 확충 방식은 시장가격이 100원인 소금에 소비세 성격의 세금을 붙여 3000원에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국가가 소금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생필품인 소금을 구입해야만 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소금세가 포함된 높은 가격 그대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즉, 소금은 그 수요가 가격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비탄력적인) 재화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급이 고정돼 있는 경우 상품에 대한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비탄력적일수록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세금의 부담이 커진다. 현대의 정부도 일반적으로 세수를 늘리기 위해 주류, 담배, 자동차타이어와 같이 수요가 비탄력적인 재화를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데, 이러한 재화에 세금을 부과하더라도 시장에서의 거래량이 줄어들지 않아 세수가 많이 걷히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와 같이 전매제도를 통해 소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경우 소금은 가격에 대해 수요가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생산자의 조세부담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이로 인해 한때 당나라 조세 수입에서 소금 전매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금 전매를 통한 조세 수입의 확충 방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금의 생산원가에 비해 전매제도를 통해 제공되는 소금의 가격이 30배 이상 치솟자 암시장이 형성됐고, 소금 밀매업이 성행했다. 당시 소금업자들은 소금세가 높았기 때문에 소금을 한꺼번에 구입해 가격을 높인 다음 판매하는 매점매석 행위로 폭리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금 밀매업자들은 당나라 정부의 단속이 심해지자 각 지역의 밀매 조직을 규합해 당나라 정부에 항의했다. 이러한 항의는 황소라는 밀매업자를 필두로 반란의 형태로 확장됐다. 이때의 난을 가리켜 ‘황소의 난’이라고 한다. 황소는 같은 소금 밀매업자인 왕선지(王仙芝)와 결합해 당의 수도인 장안을 손쉽게 함락시켰다. 이처럼 쉽게 수도를 함락시킨 원인에는 소금세에 항의하는 소금 밀매업자들의 조직적인 움직임도 있었지만 가뭄과 수해, 병충해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높은 세금을 피해 도망가는 백성들이 많아 이들 불만세력을 결집하기가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대 소금은 권위와 힘의 상징

황소의 난으로 인해 수도가 함락됐음에도 불구하고 당나라는 황소의 부하였다가 당나라에 항복한 주전충을 중심으로 다시 세력을 결집해 885년 수도 장안을 되찾고 소금세 때문에 일어난 황소의 난을 진압했다. 이후 주전충은 당나라의 황제 자리에 올라 나라 이름을 양(梁)으로 바꾸었고, 서기 907년 당나라는 멸망하게 되었다.

이처럼 황소의 난을 야기한 소금세는 당나라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고대의 소금은 권위와 힘을 상징했다. 한자 염(鹽)은 신하(臣)가 소금결정(鹵)을 그릇(皿)에 두고 지킨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소금은 국가 입장에서는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자원이자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 즉 생필품이었다.

당시 당나라는 이미 세제개혁을 통해 가옥세 주세 차세 등 다양한 세금제도를 개발했고, 양세법에 의거해 정부가 연간 예산을 세우고 이에 따라 과세하는 선진적인 세금제도를 보유한 재정국가였다. 실제 안록산과 같은 큰 사건을 겪고도 쉽게 망하지 않은 것은 튼튼한 국가 재정 덕분이었다. 하지만 당나라의 세금제도는 세수 확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세금의 원천인 국민들의 세금부담 능력은 고려하지 않았다.

만약 당나라가 선진적인 세금제도에 수요의 가격탄력성 개념을 결합, 국민들의 세금부담 능력을 고려한 합리적인 세금제도를 운용했다면 생필품인 소금에 대한 지나친 과세로 멸망을 자초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나라는 동서양을 연결해주는 실크로드의 확장으로 동아시아가 아닌 세계의 패권국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동영 KDI 연구원 kimdy@kdi.re.kr


< 경제 용어 풀이 >

▨ 수요의 가격탄력성

다른 조건들이 일정할 때,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민감성을 의미한다.

▨ 조세전가 및 조세귀착

현실에서의 조세의무는 법적으로 정해진 부담자와 실질적인 부담자가 다른 경우가 많다. 즉, 세금 부과로 인해 높아진 가격 때문에 실제의 조세부담이 시장에서의 가격조정 과정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타인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조세의 전가’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세의 전가를 통해 조세의 실질적인 부담이 담세자에게 귀속되는 것을 ‘조세귀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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