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06> 검투사와 공리주의, 그리고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입력 2013-05-03 15:19  

검투경기는 고대 로마시대 때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맹수 간에 치러진 격투경기를 말한다. 검투경기는 현재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 해당하는 고대 에트루리아(Etruria)의 장례의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저승에서 망자의 삶이 현실에서 만큼이나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섬기는 자를 따라 보내기 위해 검투경기가 생겨난 것이다.

기원전 3세기 로마로 유입될 당시에도 검투경기는 제사의식의 형태로 열렸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264년 로마의 귀족가문 브루투스가(家)의 장례식에서 검투경기가 열렸고, 기원전 174년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플라미니우스의 장례식 때에는 수백명의 검투사가 경기를 치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검투경기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거나 지배계급의 힘과 위엄을 과시하는 정치적 행사로 변모했고, 제정로마 시대에 이르러서는 제국의 전역으로 퍼지면서 스포츠나 여가의 형태로 대중에게 일상화됐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검투경기는 고대 로마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승자가 패자를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그동안 보아온 로마시대 검투경기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기는 심판의 관장 아래 정해진 규칙에 따라 거행됐고, 부상을 당한 검투사 중에는 치료를 받은 이들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검투경기는 영화나 소설의 극적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과장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투경기의 정당성이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빈번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경기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검투사들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검투사의 대부분이 전쟁포로나 노예와 같은 로마의 하층민이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발적으로 검투사가 된 로마 시민도 있었지만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검투사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분과 계급이 미천하다는 이유만으로 검투경기에 내몰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검투경기는 로마시대 권력층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 자극적인 유희거리를 찾는 로마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공된 힘없는 사회적 소수집단에 대한 ‘대학살’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가치판단 기준은 효용

그러나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검투경기도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부르짖었던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통해서다. 공리주의는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에 의해 체계화된 철학이념으로,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쾌락, 즉 효용(utility)에 두고 있는 사회사상을 말한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 만큼 개인의 행동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제도와 정책도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과 만족감이 최대화될 때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사회구성원 전체의 효용의 합을 최대로 하는 것이 공리주의가 추구하는 최고의 선(善)인 셈이다. 공리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통해 19세기 중반 영국의 정치사회적 개혁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고, 비용과 편익의 개념을 이용한 효용 극대화를 통해 경제학에 있어서도 상당한 학문적 기여를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학문적 경계를 초월해 여러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친 범학제적 사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듯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의 여지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효용의 크기를 극대화할 것을 주장하면서 효용의 계량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타고난 천성과 처한 환경이 각기 다른 개인이 지극히 주관적으로 느끼는 효용을 계량화하는 것은 아무리 정교한 방정식을 동원하더라도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한 사람에게 쾌락을 주는 행위가 다른 이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행위를 쾌락과 고통의 이분법적 잣대로 구분하기도 어렵다. 한편 응급처치의 과정에서 2차적인 피해가 가해졌다고 해서 응급처치를 한 의도까지 비난할 수는 없는 것처럼 어떤 행위의 결과가 고통을 유발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행위가 옳지 못하다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행위로 인해 나타난 결과를 평가할 뿐 동기의 좋고 나쁨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비판자들은 이러한 이유들을 근거로 공리주의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가 지닌 또 하나의 약점은 바로 공리주의의 대명제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이는 사회구성원 전체의 행복을 최대화한다는 것으로 사회적 규칙과 제도, 선악에 대한 기준 등이 최대의 행복을 산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즉, 최대의 행복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은 취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로, 이러한 점에서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를 배제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적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로마시대 검투사의 예가 대표적이다. 검투사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도 박탈당한 채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경기에 강제로 나섰고, 이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검투경기를 개최하고 관람함으로써 얻는 제국과 로마인들의 만족은 검투사들이 느끼는 고통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양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로마시대의 검투경기는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개최를 장려해야 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정의의 관점에서 검투경기는 소수집단에 대한 극단적이고 치명적인 박해로, 공간과 시간을 막론하고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비윤리적 행위임에 분명하다.

한계효용 체감 따른 소득분배

한편 소수자에 대한 공리주의의 논리는 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소득분배와 관련하여 공리주의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통한 사회 전체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소득의 격차가 엄청난 대기업의 회장과 일용직 근로자를 비교해보자. 이 경우 추가적인 소득에 대해 느끼는 효용은 회장보다 일용직 근로자에게서 훨씬 클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회장의 추가적인 소득을 일용직 근로자에게 줄 경우 사회 전체의 효용은 전보다 커질 수 있다. 물론 소득의 상실로 회장의 효용은 감소하겠지만, 일용직 근로자의 효용 증가분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클 것이기에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소득분배 행위는 타당한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과하는 소득세와 같은 누진적 조세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실시하는 대표적인 사회제도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주장하는 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 경제 용어 풀이 >

▨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재화를 1단위 더 소비할 때 가지게 되는 효용의 변화를 한계효용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한계효용은 소비를 늘려감에 따라 감소한다.

이처럼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한계효용이 작아지는 현상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음식을 섭취할수록 배가 불러옴에 따라 만족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한계효용 체감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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