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쓰는 논술] (6) 인식론 - 인간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입력 2013-05-24 14:59  

▧ 들어가며…

철학 이야기만 나오면 학생들은 필요 이상으로 어려워하고 지루해한다. 하지만 따져보면 우리는 항상 생활 속에서 철학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쟤 참 개념 없어”라는 표현 속에서도 그렇다. 누군가에 대해 ‘개념 없다’는 말은 그가 마땅히 가져야 할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할 때 쓰기보다는 그의 ‘생각하는 방식’이 상식에 어긋날 때 불쑥 튀어 나오는 것이다. 즉, 로그함수를 몰라서 개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무시하니까 개념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사실 철학적 사유를 하면서 살고 있는 ‘철학적 인간’이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철학의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주로 논의되는 ‘이성’ ‘합리’ ‘존재’ 등의 어휘들이 그렇다. 다른 학문의 객체가 현실의 대상이라면 이와 같이 철학이 다루는 것은 관념의 대상이다. 그래서 철학은 언어 자체를 다루는 학문이라고도 한다.

광범위한 철학 분야 중 논술 시험에 가장 자주 출제되고 현대 철학자들이 가장 많이 연구하는 분야가 인식론이다. 인식론은 지식에 관한 이론이라고도 하는데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밝히는 방법’이라고 보면 된다. 인식론에 관한 최근 기출문제는 다음과 같다.


2011 한양대 모의 (인간의 동일성 문제 : 외형적 일관성과 정신적 연속성)
2011 건국대 모의 (진실과 주관과의 관계)
2011 홍익대 모의 (법관의 법적 판단 : 주관적 신념과 객관적 사실)
2010 중앙대 수시 (현상인식과 현대 정보사회에서 개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2008 서강대 정시 (인식의 방식 :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


▧ 인식론의 두 흐름
인식론과 관련해 어려운 내용은 출제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학교에서 근대 철학자들이 제공했던 인식론의 기초를 배웠고, 그것을 응용해서 풀 수 있는 문제만 나온다고 보면 틀림없다. 합리적 인식과 경험적 인식, 객관적 인식과 주관적 인식, 연역적 인식과 귀납적 인식 등의 대립과 보완 관계를 이해하고 있다면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럼 우선 교과 과정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해보자.

귀납법은 개별적 사례들의 관찰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추론의 과정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뿐이라는 전제를 가진 사유방식이다. 그러나 귀납과정을 통해 도달된 결론은 결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 아니다. 단지 높은 개연성을 가졌을 뿐이다. 즉 귀납적 추론을 통해 얻은 결론은 증거에 기초해 있으나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연역추리의 분명한 특징은 확실성에 있다. 연역적 논리의 기본 원리는 아주 잘 정립되어 있으며 그 추론 과정의 규칙들은 엄밀하게 정식화되어 있다. 연역적 논증에 사용되는 명제는 그것들이 사실과는 관계없이 타당한 것으로 되어 있고 또한 사실들에 앞서는 까닭에 ‘선험적’이라고 불린다. 선험적이고 언제나 타당한 이러한 전제들에 의해 어떤 결론이 도출된다면, 그 논증 과정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연역적-합리적-객관적’은 서로 친하다. 이에 대립하는 이론이 ‘귀납적-경험적-주관적 인식론’이다. 2008년도 서강대 정시 기출문제의 내용을 살펴보자.


만일 우리가 다른 길들을 통해서 다른 진리들에 이를 수 없었다면, 우리는 지성의 진리로부터 추상적인 가능성 이외에 별로 많은 것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어떤 사람이 어떻게 배우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배우든지 간에, 그것은 객관적인 내용의 흡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상 자기의 시간을 잃어가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어떻게 한 초등학생이 단번에 라틴어에 숙달되는지 어떤 기호들(징표들)이 (사랑이나 고백하기조차 창피한 욕구를 통해) 그의 배움에 도움을 주는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선생이나 부모가 준 사전을 통해서는 전혀 배울 수가 없다. (…중략…) “이 미지의 기호들로 된 내적인 책을 읽는 데에는 그 누구도 어떤 모범을 제시해서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이 독해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협력조차 제공할 수 없는 창조 행위였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문장은 “그가 어떻게 배우든지 간에, 그것은 객관적인 내용의 흡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상 자기의 시간을 잃어가는 가운데 이루어진다”이다. 자기의 시간을 잃는다는 말은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즉 경험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이 제시문이 경험적 인식 내지는 주관적 인식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2010학년도 중앙대 수시 기출문제를 보자.


우리는 특정한 사례들에서 보편적인 결론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이끌어 내는가? 우리는 아는 바를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주어진 대상들이나 사건들에서 관찰한 바가 그것들의 다른 속성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 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삶의 보편적 규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예기치 않은 일이 칠면조에 닥친다. 칠면조는 믿음의 수정을 강요받는다.

과거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미래를 알 수 있는가? 좀 더 일반화해서, 이미 알고 있는 ‘유한한’ 것에 근거하여 미지의 ‘무한한’ 것의 속성들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다시 칠면조 먹이 주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칠면조는 어제까지의 사건들에서 내일 있을 사건을 알아낼 수 있는가? 아마도 상당히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테지만, 아무튼 그것은 칠면조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적다. 그리고 이 ‘적은’ 것이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칠면조는 관찰을 통해 배웠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방법이다. 친절한 먹이 주기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칠면조의 믿음은 견고해지며, 그리하여 도살의 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데도 칠면조는 점점 더 안심한다. 칠면조의 안심이 최고점에 도달한 그 순간이 생명의 위험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임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이 문제는 좀 더 폭넓게 일반화될 수 있다. 이 문제는 경험적 지식 자체의 성질을 겨냥하고 있다. 과거에 내내 통했던 것이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며, 우리가 과거로부터 배운 것은 최선의 경우에 쓸모없어지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파국을 낳는다.



제시문에서 보여주는 사례는 약간은 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어쩌면 칠면조처럼 경험의 관성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경험적으로 계속 반복되었다 해서 동일한 사태가 다음번에도 일어날 것으로 인식하는 경험적 귀납적 인식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뒤집어보면 합리적 연역적 인식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제시문인 것이다.


▧ 참된 인식에 도달하는 길

합리적 인식이 옳을까 경험적 인식이 옳은 것인가? 이것은 18세기의 논쟁이다. 철학사적으로는 이미 결론이 나와 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이미 알고 있다. 둘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맞다 하여 경험적으로 틀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참된 인식은 합리적으로도 맞고 경험적으로도 맞아야 한다. 지구는 객관적으로도 둥글고 내가 봐도 둥글어야 둥근 것이다. 원빈은 객관적으로도 잘생겼고 내가 봐도 잘생겨야 잘생긴 것이다. 내 눈에 못생겨 보인다면? 바라보는 주체(나)에 문제가 있거나 사회에서 말하는 미남의 (객관적) 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진리는 두 줄기의 인식론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지만 양자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태양의 온도나 우주의 넓이와 같이 경험 자체가 불가능하여 합리적 방식으로만 검증할 수밖에 없는 대상도 있다. 반대로 “할렘가의 흑인은 평생 500개 내외의 단어만으로 언어생활을 한다”와 같이 합리적 검증이 불가능하고 경험적으로만 인지할 수 있는 대상도 있다. 그래서 양자는 상호 보완적이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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