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의 교양] (6) 만인의 1인에 대한 폭력…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에 대해

입력 2013-05-24 15:00  


지난주엔 르네 지라르와 함께 욕망의 본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인간이란 마치 동생의 장난감을 기어코 빼앗으려 하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정작 빼앗은 후에는 이내 흥미를 잃고 장난감을 내던져버리는 그런 심술궂은 아이 말이죠. 정말 심통맞군! 이렇게 비난하고 말 일은 아닙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아니, 지라르는 저 아이가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아이가 진짜로 원한 건 장난감이 아니라 동생처럼 재밌게 노는 것입니다. 장난감을 원한 것도 그것을 가지면 자신도 동생처럼 재밌게 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욕망의 진짜 대상은 장난감이 아니라 동생인 셈입니다. 장난감은 동생처럼 되기 위한 수단인 것이고요. 장난감을 향한 아이의 욕망이 실은 동생이라는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 이것이 지라르가 본 욕망의 본모습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욕망 혹은 열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연히 혹은 가끔씩 모방적인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항상 모방적이다.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욕망은 아주 사회적인 것이다.”(르네 지라르, 『그를 통해 스캔들이 온다』 중에서)



지라르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이라는 책에서, 욕망이 모방적이라는 진실이 드러나는 공간은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진짜 모습은 소설에 담겨 있습니다. 소설을 분석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지 문학작품 분석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모방욕망의 무대를 몇몇 소설이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로 확장합니다.



“바르베리 :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쓰신 뒤에 선생님이 왜 인류학에 빠져드셨는지 그 과정을 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라르 : 방금 언급하신 그 책은 유럽 소설가들을 연구한 책입니다. 그 소설가들은 인간의 욕망과 경쟁이 모두 모방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책을 쓰고 난 뒤 저는 그 욕망이 진짜로 보편적인 것인지, 다시 말해 서구가 아닌 문화권에서도 혹은 고대 문화에서도 이런 욕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류학의 고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모방의 흔적을 찾는 일에 문자 그대로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흔적들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도 잘 몰랐습니다. 집단 살해와 집단 폭력에 관한 제 주장을 정리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그를 통해 스캔들이 온다』 중에서)



긴 연구를 거쳐 지라르는 인간의 역사란 곧 모방욕망의 역사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역사의 굽이마다 모방욕망의 영향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으니까요. 문제는 상호 간의 모방욕망이 사람들의 관계를 꽤나 삭막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모방욕망의 고리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경쟁자가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경쟁에는 끝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은 심화됩니다.



“한 모방자가 그의 모델들에게서 그들 공통의 욕망의 대상물을 빼앗으려 할 때 그 모델은 당연히 저항하게 된다. 이리하여 욕망은 ‘양측에서’ 모두 강해진다. 이 모델은 이 모방자의 모방자가 되는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적대자들을 점점 더 같은 것으로 만들면서 갈수록 완벽해져가는 이런 이중 모방 속에서는 모든 역할은 서로 바뀌고 서로를 반사한다.”(『그를 통해 스캔들이 온다』 중에서)



명품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렵게 돈을 모아 같은 제품을 삽니다. 욕망이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에 명품이라는 사물은 욕망의 진정한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욕망한 것은 타인, 즉 자신의 친구였으니까요. 친구처럼 되고 싶은 것이지, 그가 가진 사물을 단순히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방욕망은 다시 시작됩니다. 게다가 친구라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또한 이내 욕망 경쟁에 참여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도 경쟁을 시작합니다. 모방하는 자의 따라잡기와 모방되는 자의 따돌리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 모방욕망은 사람들 사이의 욕망 경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욕망 경쟁의 끝이 상호폭력의 구렁텅이라는 데 있습니다. “같은 대상을 향하는 두 욕망은 서로의 장애물이” 되고, “욕망에 기반을 둔 모든 <모방>은 자동적으로 갈등으로 귀착”되고 맙니다(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중에서). 사회적 폭력은 증폭되고 공동체는 위기에 빠집니다.



“인간 폭력의 주요 원인은 모방적 경쟁 관계다. 인간의 폭력은 우연한 결과도 아니고, ‘공격 본능’이나 ‘공격 충동’의 결과는 더더욱 아니다. 모방적 경쟁 관계가 심해지면 경쟁자들은 서로 상대방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경쟁자들은 서로의 소유물을 빼앗고, 서로의 배우자를 유혹하고, 심지어는 살인마저 마다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중에서)

모방욕망 때문에 공동체가 파멸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지라르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모방경쟁으로 증폭된 폭력을 인류는 어떻게 해결해온 것일까. 대답을 찾기 위해 그는 세계 각 지역의 신화와 전설을 연구합니다. 그러고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죠. 지역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폭력 해소 방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폭력’을 ‘만인의 일인에 대한 폭력’으로 변환하는 것이었죠. 어려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참 간단한 방법입니다. 상호 간의 폭력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슬쩍 한마디 해주면 됩니다.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 모두 저 사람 잘못이지.” 그렇습니다. 희생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희생 제의는 공동체 전체를 대체하고 전체에게 봉헌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희생 제의는 공동체 전체를 그들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며, 폭력의 방향을 공동체 전체로부터 돌려서 외부의 희생물에게 향하게 한다는 말이다. 희생 제의는 도처에 퍼져 있는 분쟁의 씨앗들을 희생물에게로 집중시키고, 분쟁의 씨앗에다 부분적인 만족감을 주어서 방향을 딴 데로 돌려버린다.”(『폭력과 성스러움』 중에서)



소수의 희생양을 만들어 그에게 사회적 분노와 폭력을 집중합니다. 모든 잘못은 희생양에 돌리고 그들을 처형함으로써 사람들은 그간 쌓인 폭력성과 스트레스를 소거합니다. 즉, 희생양의 죽음을 통해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파멸로부터 구원받습니다.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희생양으론 보복의 가능성이 없는 약자가 좋습니다. 주로 외국인, 여성, 아이, 장애인 등이 선택됩니다. 이들에 대한 꽤 세련된 가공과정도 필요합니다. 희생양을 죽어 마땅한 존재로 만들거나 신성한 순교자로 포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희생양에 대한 사회적 폭력의 추악한 본모습을 감출 수 있으니까요. 지라르의 말을 듣자니 좀 우울해집니다. 하지만 지라르의 말을 무작정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이론이 우리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우리 스스로 고민해볼 일입니다.

김영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ysjad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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