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야심차게 준비한 장기자랑 '알랑가몰라~♬'…다음 팀도, 그 다음 팀도, 왜 다들 그 노래만…

입력 2013-05-27 17:15   수정 2013-05-28 05:44

[金과장 & 李대리] 야심차게 준비한 장기자랑 '알랑가몰라~♬'…다음 팀도, 그 다음 팀도, 왜 다들 그 노래만…

회사 체육·단합대회 에피소드

짝사랑 박 주임과 2인3각 경기 기대했는데…
그녀는 눈도장만 찍고 영화관으로 '피신'
김 과장 "술김에 불만 터뜨리는 후배 무서워"
패셔니스타 여사원들은 "단체티 싫어요"




5월엔 왜 이렇게 ‘날’들이 많은지.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김 과장, 이 대리들이 5월에 넘어야 할 ‘마지막 깔딱 고개’는 회사 체육대회다. 신입사원들은 또 하나의 통과의례인 ‘재롱잔치 무대’가, 조기축구 좀 한다고 허풍쳤던 김 과장, 이 대리에겐 ‘축구시합 동원령’이, 할 일 없는 부장들은 ‘땡볕에 시간 때우기’가 걱정이다.

우리의 김 과장, 이 대리들은 올해 체육대회를 어떻게 보냈을까. ‘김 과장&이 대리’ 팀원들이 취재한 에피소드를 묶어 ‘내러티브’ 형태로 풀어봤다. 제목은 ‘한국전자 체육대회의 재구성’. 주요 등장 인물은 한국전자 A팀의 △최 주임=남자 신입사원 △박 주임=여자 신입사원 △이 대리=입사 9년차 노총각 대리 △김 과장=입사 13년차 남자 과장 등이다.

한국전자의 ‘2013년 체육대회’가 열린 서울 근교 체육공원. 체육대회는 왜 항상 더운 초여름에 하는 건지. 저마다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라 허옇게 뜬 A팀원들의 얼굴이 보라색으로 통일한 팀복 덕분에 더욱 우스꽝스럽다. 경기장 가운데 설치된 ‘재롱잔치’ 무대에 신입사원 최 주임이 등장했다. “알랑가 몰라 왜 화끈해야….” 역시나 월드스타(?) 싸이의 신곡 젠틀맨 간주가 흘러나온다. 이날 장기 자랑에서 젠틀맨은 벌써 두 번째다. “최 주임 이 녀석 장기자랑 준비한답시고 ‘칼퇴’ 자주 하더니만 겨우 젠틀맨이었어? 요즘 애들은 창의성이 없어 창의성이….” 김 과장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장기자랑 준비 정말 힘드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신입사원 최 주임의 머릿속엔 지난 한 달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 달 전 고참 이 대리가 휴게실로 불러서 하는 말이 “최 주임, 체육대회 알지? 너희 바로 위 기수들이 제대로 안하고 뺀질대서 1년 동안 엄청 구박을 받았어. 장기자랑 때 너희들 존재를 제대로 각인시켜야 회사 생활이 편하다고!”

최 주임은 그날 저녁 사내 메신저로 친한 입사동기 몇 명을 소집했다. 1주일 동안 머리를 싸맨 결과 차력쇼, 마술, 합창 등등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결국 택한 것은 ‘춤’이었다. 싸이의 젠틀맨과 걸그룹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가 경합한 가운데 최종적으로 안전하게(?) 젠틀맨을 선택했다. 회사 근처 댄스 교실에서 피나는 연습이 시작됐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1주일에 여섯 시간씩 한 달 하는데 1인당 15만원. 허벅지 어깨 팔 골반이 쑤셔서 뿌린 파스 비용만해도 3만원은 훌쩍 넘는 것 같다. 뮤직비디오 속 싸이의 춤은 참 간단해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왜 이렇게 힘든지. 차라리 축구시합에 차출된 동기들이 부러울 정도다.

다행히 젠틀맨 뮤직비디오의 ‘가인’ 역할을 맡은 여자 동기가 남자 관객들을 휘어잡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 최 주임은 동기들에 말했다. “우리 적당히 넘어간 것 같지? 업무 적응도 못한 상황에서 돈 들여 재롱잔치까지 했는데 추가 근무수당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체육대회는 사랑의 스튜디오(?)

입사 9년차 이 대리는 체육대회 며칠 전 행사기획을 맡은 입사동기 장 대리에게 ‘민원’을 넣었다. “이번 체육대회에 2인3각 경주, 파트너 업고 50m 달리기, 기마전 이런 것 한다며? 장 대리, 부탁이 하나 있어. 나 신입사원 박 주임을 파트너로 짝지워주면 안될까?”

노총각 이 대리는 전자사업부 ‘최고 미녀’로 통하는 박 주임을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다. 장 대리는 알듯말듯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왜? 왜?”라고 자꾸 캐물었다. 박 주임과 파트너 한 번 되는 게 입사동기에게 속마음을 들키는 것보다 이익이라고 생각한 이 대리. “장 대리, 술 한 번 살게. 부탁이야~.”

이 대리가 노린 것은 박 주임과의 스킨십이었다. 이 대리는 재미없는 체육대회를 ‘애정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연애 이벤트’로 승화시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2인3각 경주를 하다 보면 알듯말듯 손도 잡을 테고, 업고 달리기 하면 헬스로 단련된 내 넓은 등에 박 주임이 혹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 그런데 장기자랑이 끝나고 본격적인 체육대회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 박 주임이 안 보인다. ‘박 주임, 어디 간 거야. 이렇게 없어지면 어떻게 해. 나 박 주임한테 잘 보이려고 백화점 가서 13만원짜리 신상품 보라색 PK티셔츠 사 입었는데….’

◆몰래 도망간 영화관에서 만난 사람이…

최고의 미녀 신입사원 박 주임은 행사 시작 때 얼굴 도장을 찍자마자 친한 동기들과 체육대회 행사장에서 불과 차로 10분 거리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피신했다. 박 주임은 체육대회가 그냥 싫었다. 자타 공인 ‘한국전자 패셔니스타’인데 보라색 티를 맞춰 입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충격적인 소식까지 들려왔다. ‘어휴, 노총각 이 대리가 운동경기 파트너라니. 영화관에 몰래 가서 두 시간 정도 영화보고 와도 사람이 많으니 모를 거야.’

박 주임은 스스로 영화관을 선택한 것에 만족하고 있다. 일단 시원하다. 어색한 옆팀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여자 신입사원이 맡아야 할 일로 관행처럼 돼 있는 ‘부장님 말동무’ 역할을 안 하는 게 최고다. 이런 찰나, 아뿔싸.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왜 저분이 여기 계시지…. 우리 없어진 걸 알고 찾으러 오셨나?” 고참 김 과장이 매표소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체력도 안 되고…힘든 고참들

입사 13년차 김 과장에게도 매년 돌아오는 체육대회는 ‘고역 중의 고역’이다.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는데 무엇보다 더 힘든 일은 세대가 다른 젊은 후배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사실 김 과장이 회사 행사에서 겉돌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재작년 부서 등산 행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과장은 등산 후 뒤풀이 때 “편하게 해, 편하게. 야유회에선 편하게”라고 강조하며 ‘야자타임’을 주도했다. 처음엔 눈치를 살피던 후배들, 술기운이 올라서인지 김 과장에게 직격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김 과장, 가끔 욕하는 건 고쳤으면 좋겠어” “일 없는 날엔 일찍 퇴근해야 하는 거 아냐?” 후배들의 융단 폭격에 김 과장은 어이상실. 소심한 김 과장은 다음날 회의 시간에 후배들에게 자신이 왜 욕을 해야만 했고 퇴근을 안했는지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이때부터 후배들과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 찾은 곳이 인근 영화관인데, 아뿔싸 박 주임과 그 무리들이 매표소 근처에 진을 치고 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박 주임에게 “체육대회 뭐 꼭 참석해야 하나, 눈치껏 움직이면 돼. 대신 우리 여기서 못 본거야”라고 말을 건넸다. 다행히 1분 뒤 박 주임 무리는 영화가 시작된다며 상영관으로 사라졌다. “휴, 다행이다.”

황정수/전예진/임현우/박한신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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