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헌석 교수의 '두뇌창고를 넓혀라'] (15) 3인 학습의 원리

입력 2013-07-22 10:10  

만 2세인 손자는 이젠 동물 그림을 보면 척척 알아 맞춘다.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수십 차례 시도한 끝에 이루어졌다. 단어 하나만 해도 과장해 수백 번을 지껄여보고서야 잘 기억하는데 바로 반복의 묘다. 어른의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로 인상 깊었던 풍경이나 사건은 단번에 기억되어 오래오래 머리에 남는다. 뇌가 동영상만큼은 “요거 그림이 재미있네” 하고 특급 정보로 착각해 잘 저장하기 때문이다.


뭣한 이야기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배우자로부터 당한 서운한 일을 두고두고 잊질 않는다. 기분 좋게 해준 일도 그토록 잘 기억할까. 아니다. 나 역시 “그때 내게 너무 잘 해준 게 아직도 생생하다오” 와 비슷한 말을 결혼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섭섭한 건 미주알 코주알 빈틈없이 다 기억하면서....
 
왜 그럴까? 섭섭했던 사건은 억울한 나머지 의식 속에서 자꾸만 되씹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읊고, 화내고, 이를 갈며 사건을 되새기는 등으로 수 없이 반복 학습을 했기 때문이다. 학습이란 무엇인가? ‘배울 학(學)’ ‘익힐 습(習)’이니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학교에서 선생으로부터 배운 후 집에 돌아와 익히면 그 사실이나 정보는 내 것이 된다. 학습의 효과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잊게 마련이어서 탈이다. 아내는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뇌로 하여금 “여봐라, 이거 대단히 중요한 정보인 모양이니 잘 간직하라”고 정신 바짝 차려 특별 관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세월이 가도  기억해낸다.

 
뇌란 녀석은 일단 정보가 들어오면 해마라는 임시창고에 저장했다가 분류한다는데 별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들은 대뜸 쓰레기통에 집어던진다. 배우자로부터 당한 섭섭한 일처럼 중요하다 여기는 정보만큼은 대뇌피질에 고이 간수한다. 이 판단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해마가 하니 문제다. 만일 오래 간직하게 만들려면 해마를 잘 다스려야 하는 바, 이게 반복 학습이다.    
 
어린 아이가 언뜻 비슷비슷하다고 느낀 하마와 코뿔소의 그림도 몇 차례 반복하는 시행착오를 거쳐선 잘 가려낸다. 좀 커서 그림이 아닌 ‘하마’라는 글자와 ‘코뿔소’ 란 글자도 여러 번 들여다보고 쉽사리 분간한다. 나중엔 어떻게 물어도 척척 답한다. 수없이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누가 과연 기억을 잘 하는가? 그 답은 역시 '반복' 이다. 이제까지 수재라든가, 기억이 뛰어나다는 등 내로라하는 두뇌들을 많이 만났지만 불과 한 두 번만에 오래도록 기억하는 사람은 보지를 못했다. 가령 “전화번호를 딱 한 번만 일러주었는데 메모도 않고 기억을 잘 하드만....” 하지만 실제로 머리 속에서는 여러 차례 반복해 외웠을 것이다.

 
나 역시 누가 전화번호나 주소를 말할 때면 짐짓 한번 듣고 다 아는 양 으스대나 실제로는 상대방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입속으로 여러 번 되뇌인 다음, 한참 있다가 '주소가 뭐더라' 하고 반복하고, 여러 시간이 경과한 후에는 “가만있자, 아까 전화번호가 8735-7149가 맞지...”하며 재차 확인해서야 비로소 기억하곤 했다. 그에 따라 짐짓 “아냐, 그냥 기억된 걸...” 하고 말하지만 내면으로는 각고의 반복 학습이 있었던 거다.

 
어쩌다 기억력이 좋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지만 전화번호를 기억할 때처럼 무수한 반복 학습이 뛰어나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흔히 유머나 재미있는 이야기일지라도 단지 웃음만으로는 내 정보가 되질 않는다. 실컷 웃고 나서 잘 새겨 해마에 넣으려 용을 쓰고, 다시 3-4시간 간격으로 “아까 뭐라 했더라” 하고 확인해 다시 외우고 잠자기 직전 삼차로 “가만있자 뭐더라, 응~그래, 그래 이거였지...”하고 읊어야 비로소 확실하게 ‘가치 있는 정보’로 자리매김한다. 그러고도 어떤 것은 1주 후나 한 달 후 또 확인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악질 정보도 있다. 그 결과 여러 해가 지난 후 “어쩌면 그렇게 기억을 잘 하니”란 칭찬을 들으며 자존심을 세우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기억은 보장성이 없다. 보다 확실한 것은 ‘3인 학습의 원리’를 적용하는 길이다. 배우고(듣고) 익히고, 다음 가르친다면 거의 완벽한 기억으로 오래 자리잡는다. 대다수 교육자들은 자기가 맡은 분야를 달달달 외운다. 그 이치는 바로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3인 학습의 원리’로 여러 번 써먹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아닌 우리는 어떻게 3인 학습의 원리를 잘 실행할까. “야! 이리 와봐라, 오늘 내가 이런 걸 배웠는데 가르쳐볼 테니 들어봐라” 하고 싫다는 사람 붙들고 중얼중얼 가르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론 곤란하니 나 혼자 벽이나 거울을  “학생”인양 중얼중얼 지껄이는 방법도 훌륭한 ‘3인 학습’이다. 이도저도 여의치 않으면 노트에 출력 연습, 바로 실제로 시험을 치른다는 기분으로 정성껏 써가며 외우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다. 공부를 잘 하려면 모름지기 ‘3인 학습의 원리’를 잘 이용할지어다.

정헌석 < 전인코칭연구소장·전 성신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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