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 넘치는 소탈한 도시 '낯선 동유럽'에 반하다

입력 2013-07-28 14:22  

해외여행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도시 곳곳에 재미난 조각상…엿보는 사람 '추밀' 가장 유명
길거리엔 세련된 멋쟁이 북적
브라티슬라바성 오르면 도나우강·성마르틴 교회 장관
근교 '폐지녹'의 레드스톤 캐슬 동유럽 최대 와인 창고 '위엄'




낯설다. 낯설게 들렸다.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세계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지도를 훑었음에도 단 한 번도 눈에 든 적이 없었다. 그나마 아는 슬로바키아에 관한 정보는 체코슬로바키아였다가 1993년 국민투표를 거쳐 체코와 분리했다는 게 전부다. 떠나기 전, 서점에서 여행정보 책자를 찾아봤지만 어느 것도 슬로바키아를 소개하지 않았다. 론리 플래닛을 뒤졌어도 특별한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다.

유럽의 여느 도시가 그렇듯 성과 교회, 갤러리 등이 주된 관광지인데 그것마저 매우 소소하게 몇 가지 있을 뿐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길을 나섰다. 그 덕에 어떤 선입견도 갖지 않게 됐다. 도시에 도착하자 꽤 매력적인 사람을 처음 만난 듯한 설렘이 마음을 채웠다. 말 그대로 숨겨진 보석을 찾아낸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나라 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기 전, 체코 관광청에서 일하는 클라라에게 물었다. “슬로바키아에 가본 적 있어? 어떤 곳이야?” 그녀는 “아담해, 그리고 사람들이 굉장히 세련됐어”라고 말했다. 동유럽 구석진 곳에 자리한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어딘지 촌스러울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을 깬 간결하고 묘한 느낌의 대답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 안에는 미남 미녀가 자주 눈에 띈다. 내친김에 식당칸으로 이동했다. 감탄할 만한 외모의 사람들이 줄줄이 앉아 있다.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보며, 혹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인형이나 마네킹이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재하는 풍경인지 잡지 화보를 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기차로 이동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식당칸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기차여행의 백미일지 모른다. 영화 ‘비포 선셋’과 같은 로맨스를 꿈꾸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브라티슬라바행 기차에 몸을 실으라고 권하고 싶다. 현대적이고 쾌적한 기차 안은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행 끝자락에 느낀 점을 덧붙여 정리하자면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굉장히 아름답고 내면은 약간 보수적이지만 친절하고 순박하며 정이 많다.

○꾸미지 않아도 멋이 나는 구시가지

공항이나 기차역은 목적지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매개다. 프라하발 기차를 타고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브라티슬라바역은 수도의 중앙역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만큼 작은 규모다. 기차역은 아담하고 소박하고 또 어딘지 모르게 약간 촌스럽다. 관광지라는 이름으로 분칠하지 않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행객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역을 나서자 눈부시게 푸른 하늘 위로 양떼구름이 두둥실 떴다. ‘평생에 저런 하늘을 열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청량하다. 빨간 빛깔의 트램이 그림처럼 늘어선 오래된 건물들 사이를 지난다. 기차역도 건물도 트램도 모든 게 작다. 우리를 마중 나온, 서투른 영어를 구사하는 가이드 롤란드의 승합차도 굉장히 작다. 겨우겨우 몸을 움츠리고 타야 할 정도의 오래된 벤츠 승합차를 타고 5분을 달려 구시가지 입구에 도착했다. 구시가지 안으로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다. 울퉁불퉁한 돌길 위로 거칠게 덜컹거리는 트렁크를 끌고 다니느라 힘이 들 무렵,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여행자의 피로를 말끔히 녹인다.

아주 오래된 그림 동화책의 첫 장을 펼친 느낌이다. 사실 유럽 어느 곳을 가든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은 ‘동화 같은’이라는 수식어다. 웬만하면 지양하는 이 표현을 이번만큼은 거침없이 쓰고 싶을 만큼 그림동화 속 풍경 그 자체다. 구시가지의 기점인 미하엘 문을 중심으로 뻗은, 넓지 않은 돌길 위로 오래되고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섰다. 건물을 따라 늘어선 노천 레스토랑들이 영업 준비로 분주한 것 외에는 특별히 관광지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고풍스럽고 화려한 느낌보다는 소담하고 아기자기하다. 이곳에서는 관광이 아니라 진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구시가지를 돌아보기 전에 호텔 앞 레스토랑에서 슬로바니아 현지식을 맛볼 시간이다. 전통음식이라 하지만 복잡한 유럽 역사를 대변하듯 그 형태와 맛은 오스트리아의 슈니첼, 헝가리의 구야시와 비슷하다. 가이드 롤란드가 고개를 숙이며 소금 뿌린 식전 빵을 두 손으로 건넨다. 슬로바키아식 환영인사다. 두 손으로 받아 맛있게 먹는다. 환영에 대한 답례다. 구시가지는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규모다. 시계탑인 미하엘문 아래로 난 길을 따라가면 흘라브네 광장이 나온다.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난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봐도 한 시간 남짓이다.

구시가지 곳곳에는 위트 넘치는 조각상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조각상은 맨홀 뚜껑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엿본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추밀’이다.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성프란체스코 성당과 그 주변으로 형성된 기념품 가게, 도나우 강변에 자리한 고딕양식의 성마르틴 교회, 그 건너편에 자리한 브라티슬라바 성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특히 성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아름답다.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남쪽의 구시가지와 북쪽의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곳을 잇는 유에프오 다리도 브라티슬라바의 명물이다.

○브라티슬라바 외곽, 꽁꽁 숨겨둔 보물을

브라티슬라바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곳에 페지녹이라는 지역이 있다. 브라티슬라바에서 페지녹으로 이동하는 차창 밖에는 동유럽의 알프스라 불리는 타트라스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페지녹은 품질 좋은 포도 생산지와 와인투어로 유명하다. 여유롭게 와인을 마시고, 한적한 시골마을을 산책하며 자연을 만끽하고 싶지만 목적지는 따로 있다. 바로 레드스톤 캐슬이다. 페지녹에서 북서쪽으로 18㎞ 떨어진 이곳은 13세기 체코 왕후가 포도재배지를 확보하기 위해 지은 성으로, 이후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1945년 성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팔피 가문이 성을 나간 뒤 슬로바키아 문화부로 귀속됐고 지금은 박물관의 기능을 하고 있다. 중세유럽의 강국이었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두 나라를 잇는 무역품과 페지녹에서 수확한 와인을 저장하기 위해 설계된 지하창고는 동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성 초입의 아름다운 정원과 견고한 요새의 위용은 브라티슬라바에서 느낀 아기자기함과는 정반대로 장엄하다.

여기서 잠깐! ‘사회주의 체제의 잔재일까?’ 싶은 보수적인 성향이 느껴졌다. 어디에서도 경험한 바 없는 특이한 관람방식 때문이다. 일단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인원에 제한을 둔다. 제한된 인원은 24개의 열쇠꾸러미를 들고 다니는 안내자와 동행해야 한다. 안내자는 열쇠로 문을 열고 유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 뒤 다음 방의 자물쇠를 연다. 지나온 방문은 다시 잠근다. ‘사람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없다’는 말은 여행을 거듭할수록 진리로 다가온다. 아무리 좋은 것을 보고 경이로운 마음이 일어도 현지에서 만난 사람이 주는 웃음보다 오래가진 않는다. 가이드 롤란드는 우리에게 소소한 선물을 주섬주섬 챙겨 주었고, 멋진 외모의 슬로바키아 청년들은 길을 헤매는 여행자에게 먼저 다가와 친절을 베풀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쾌히 응답하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기차나 펍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여행팁 유로화 쓰고 영어 소통 가능…버스·트램 등 교통 환승 편리…마차 타고 도시 한바퀴 이색

언어는 슬로바키아어를 사용한다. 영어소통은 구시가지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레스토랑이나 카페, 호텔, 박물관 같은 곳 위주로 용이하다.

외곽으로 갈수록 소통이 어렵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해 보디랭귀지로 열심히 알려주려는 편이다.

화폐는 유로를 사용한다. 교통수단은 트램, 버스, 트롤리가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서 트램, 버스, 트롤리 간의 환승이 자유롭다.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 내에는 2량짜리 관광마차가 있다. 구시가지는 관광마차를 타고 둘러보긴 너무 아담한 규모다. 걸어서 천천히 둘러볼 것을 권한다.

프라하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는 동유럽패스를 이용했다. 동유럽패스는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를 아우르는 동유럽의 철도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는 패스다. 자세한 정보는 레일유럽 홈페이지(raileurope.co.kr)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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