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정유정 소설가 "선 굵은 소설 쓰니 '아저씨 독자' 다시 모이더군요"

입력 2013-08-01 17:22   수정 2013-08-01 22:40

소설가 꿈 미루고 간호대 진학, 결혼 후 집 사자마자 글쓰기 전념
요즘 '젊은 세대' 툭 하면 사표…견디면서 항체 생기는 게 삶인데…저도 공모전 11번 떨어졌죠
주류 문단서 ‘상업주의’ 딱지, 그런 오명은 두렵지 않아요



<u>소설은 누가 뭐래도 이야기의 예술입니다. 어젯밤 꿈도 이야기의 방식으로 해석해야
성에 차는 게 인간이에요. 영화나 TV드라마에 열광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지금은
이야기의 최전선을 다른 장르에 뺏겼지만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u>


소설가 정유정 씨의 새 장편 《28》(은행나무)이 지난 6월14일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1위로 뛰어올랐을 때, 출판계는 “역시 정유정”이라며 박수를 보내면서도 “시한부 1위에 그칠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약 2주 후 막강한 국내 팬덤을 등에 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가 서점가에 나오면 1위는 ‘보나 마나’라는 얘기였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최근 집계한 7월 넷째주 순위에서 《28》은 2위, 《색채가 없는…》은 3위에 올라 있다. ‘소설 한·일전’이라고까지 불린 맞대결에서 하루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앞서 나가는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문학의 ‘자존심’으로 자리잡은 정씨를 서울 신사동 ‘오빌’에서 만났다. 한양식 비빔밥인 ‘골동반’을 주메뉴로 하고 떡갈비, 더덕·북어구이 등을 내놓는 한식당이다. 조선의 마지막 주방상궁에게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은 중요무형문화재 고(故) 황혜성 씨의 제자 양춘숙 씨가 만든 이 식당은 코엑스에서 13년간 운영하다가 코엑스가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신사동으로 이전했다. 전남 함평 출신으로 광주에서 살고 있는 전라도 토박이인 정씨가 ‘한양 음식’을 고른 건 의외였다.

“전라도 비빔밥과 좀 차이는 있어요. 전라도는 좀 진하고 서울은 깔끔하죠. 김치도 서울은 시원한 맛, 전라도는 입에 딱딱 붙는 진한 맛이죠. 그래도 서울에 올 땐 서울 음식을 맛보는 게 좋잖아요(웃음).”

다양하게 음식을 주문하면서 하루키에게도 밀리지 않는 힘의 원천을 물었다. 그는 메뉴판에서 눈을 떼고 손사래부터 쳤다.

“저에 대한 칭찬이 전혀 실감 나질 않아요. ‘내가?’ ‘정말?’ 하고 반문해 볼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다만 독자들과 직접 만나보면 느껴지기는 하죠. 《7년의 밤》 때보다 두세 배 정도의 반응이 있는 거 같아요. 예전엔 호기심이 절반이었다면 지금은 정말 저를 좋아해서 와주시는 분이 대부분이죠. 울컥해요. 앞으로 소설 쓸 때 힘들고 외로운 밤이 오면 독자들 얼굴을 생각해야지 싶어요.”

그는 소설을 떠났던 ‘아저씨 독자’들을 다시 불러모으고 있는 작가로 꼽힌다. 실제로 한 매체의 조사에서 그의 독자 중에는 40대 초반 남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그는 “남자가 좋아한다는데 좋은 것 아니냐”며 웃었다. 이어 “예전부터 남성 독자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선 굵은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오랜만에 그런 소설이 등장하자 좋아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약 30만부가 팔린 《7년의 밤》은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복수와 추적을 그린 작품이고, 신작《28》은 치명적 전염병 때문에 봉쇄된 화양시에서 벌어진 28일간의 사투를 담았다. 두 작품 모두 간결한 문장으로 육중한 스토리를 질주하듯 끌고 나가는 소설. 정씨의 화통하고 솔직한 실제 성격과 닮았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2007년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09년 《내 심장을 쏴라》로 세계문학상을 받았지만 《7년의 밤》을 발표하기 전에는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다. 소설에 대한 열망보다 급했던 ‘생활’이 그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지금도 라면박스에 상장을 보관할 정도로 글쓰기에는 소질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의대를 보내고 싶어하셨어요. 이과 스타일이 아니다보니 의대에 갈 정도로 공부를 잘하지 못했죠. 간호대를 가서 광주기독병원 간호사로 일하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셨어요. 간암이었어요.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 3년을 계시다 스물다섯 살 때 돌아가셨죠.”

그후 아버지와 정씨가 집안을 책임졌다. 동생 셋을 교육하고 유학까지 보냈다. 자연히 소설가의 꿈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세 살 연하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집 사면 회사 그만두고 글만 쓸 것”이라고 선언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정씨 부부는 6년 만에 광주에 집을 샀다.

“5000원 이상 하는 수박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수박이 먹고 싶어서 사러 가면 참외 같은 것만 사오고. 그런데 올여름 남편이 2만원짜리 큰 수박을 사온 거예요. 이제 5000원짜리 안 먹어도 되지 않느냐고(웃음). 남편이 저 등단시키려고 많이 고생했죠. 하루는 남편이 꿈속에서 싸우는 모양인데 거의 울더라고요. 혼자 벌어 저랑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지금 상금 타고 인세 나와도 저는 체크카드만 써요.”

삼키면 뒷맛이 혀에서 사라질 정도로 깔끔한 골동반과 떡갈비를 비우자 새 메뉴 ‘곱닭’이 나왔다. 닭볶음탕에 소곱창을 넣은 요리로 역시 깔끔해 술안주로 좋았다. 소주를 곁들이며 옛날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돌아가신 은사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이 촉촉해졌다.

간호대 재학 중 외부 문학 강의를 나온 고 정익섭 전남대 교수를 만난 건 그의 인생에 버팀목이 됐다. 어느 날 ‘얼굴’이라는 주제로 시험지를 채워보라는 문제가 나왔다. 시, 소설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괜찮다고 했다. 사지선다형에 익숙했던 간호대 학생들은 실제 얼굴 그림을 그려 내기도 했지만 정씨는 ‘얼굴’을 주제로 소설을 빽빽이 써 냈다. 1주일 후 정 교수가 그를 찾았다.

“대뜸 습작 노트를 가져와 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노트가 있는지 없는지도 안 물어보시고. 다음날 갖다 드렸더니 1주일 후에 또 불러 국문과로 옮길 생각 없냐고 하시더라고요. 글을 잘 쓰는 학생은 많지만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학생은 처음 봤다고 하셨어요. 제가 집안 때문에 못한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으니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 이뤄진다고 위로해주셨죠. 작가가 되면 꼭 찾아오라고. 결국 그 뒤로 한 번도 못 찾아뵀어요. 작가가 되기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하지만 정씨가 열한 번 공모전에서 떨어지는 동안 정 교수의 말은 큰 힘이 됐다. ‘재능이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토록 고생스러운 길을 걸어오며 꿈을 이룬 그에게 ‘요즘 젊은 세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조금 인내심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어요. 수간호사가 된 옛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니 듣기 싫은 소리 한마디에 사표 쓰고 나가는 친구도 있다더라고요. 하지만 견디면서 항체가 생기는 게 삶 아닌가요.”

그는 “이루고 싶은 걸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씨는 자신만의 길을 걸으려는 아들의 뒤를 밀어줬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싶어하자 자퇴를 허락했다. 지금은 검정고시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가 오사카에 있는 한 대학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안전한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일상적인 거죠. 그래서 아들의 길을 응원해줬어요. 일본에서 연애를 하는 것 같은데, 여자친구가 인터넷으로 제 인터뷰 기사를 보고 ‘너희 엄마다’ 했나봐요. 평소에는 제 소설에 관심도 없더니 이제 좀 관심을 갖더라고요(웃음).”

이미 영화화 작업이 진행 중인 《7년의 밤》에 이어 《28》도 조만간 계약이 이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정씨는 영화화 이야기가 나오자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워낙 탄탄하고 힘 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보니 영화화 제의를 많이 받는데, 일각에서는 “영화를 노리고 소설 쓰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이런 의심에 대해 “작가로서 듣기에 모욕적인 말”이라고 토로했다.

“저는 10년간 영화를 한 편 봤고 시나리오 작업 제의가 와도 전부 거절했어요. 쫓아가서 변명할 수도 없고…. 신경을 안 써야 되는데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건가 싶기도 해요. 책을 사줬으니 감수해야 하는 건가 싶죠.”

그의 작품에는 주류 문단이 덧씌운 ‘상업주의’라는 딱지가 붙기도 한다. 하지만 정씨는 “그런 오명이 두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런 얘기 때문에 내 소설을 못 쓰는 게 더 두렵죠. 제 나름대로 순정을 바쳐서 문학을 하고 있으니까요. 소설은 누가 뭐래도 이야기의 예술입니다. 어젯밤 꿈도 이야기의 방식으로 해석해야 성에 차는 게 인간이에요. 영화나 TV드라마에 열광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지금은 이야기의 최전선을 다른 장르에 뺏긴 상황이지만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저는 그 이야기를 잘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정유정의 단골집 '오빌', 한양식 비빔밥 별미…'곱창 닭볶음탕' 술안주로 딱~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으로부터 궁중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은 중요무형문화재 고(故) 황혜성 씨의 제자 양춘숙 씨가 만든 음식점. 지금은 그의 아들이 이어받았다. 13년간 삼성동 코엑스몰 지하1층에서 영업하다 최근 코엑스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신사동으로 이전했다.

한양식 비빔밥인 ‘골동반’과 떡갈비, 더덕·북어구이 정식, 곱창 닭볶음탕과 모듬전 등의 ‘주안상’을 판다. ‘오빌’의 비빔밥(8000원)은 대춧물로 숙성시킨 약고추장과 식용유를 사용하지 않고 독특한 방법으로 볶은 나물을 접시에 따로 담아낸다.

다섯 가지 약재를 사용해 소곱창의 느끼함과 닭고기의 누린내는 제거하고 장점만 담은 ‘곱창 닭볶음탕’(2만5000원)도 술안주로 인기다. (02)542-0801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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