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D등급 학교에 "예산없다, 버텨라"…찜통교실도 "참아라"

입력 2013-08-20 16:58   수정 2013-08-20 23:30

뉴스 추적 - 무상급식 찬반투표 2년, 교육 현장

무상급식에 체한 교육·지자체 재정
운영비 등 다른 교육예산 실종 '풍선효과' 뚜렷
"세수는 줄었는데 단가 오르고 대상 늘어" 한숨




# 서울 은평구 소재 한 사립중학교 교장 A씨. 이달 초 계속된 장마로 매일 잠을 설쳤다. 학교 건물과 땅이 맞닿은 곳에 70㎝ 이상 틈이 생긴 데다 한쪽 벽에 수많은 균열이 생겨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였다. 45년 된 이 건물은 2년여 전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 당장 개축 및 보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예산이 없어 보강 공사는 엄두도 못 낸다. 비용분담(학교 30%, 교육청 70%)을 감안하면 서울시교육청 지원이 필수지만 시교육청은 2년째 예산 타령이다. A씨는 “무상급식에 많은 예산이 필요해 건물보수 비용을 지원해주면 다른 곳에 쓸 돈이 없다는 게 교육청의 설명인데 너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 서울지역 기온이 33도까지 오른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공립중학교. 교실에선 학생들이 연신 책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이 학교는 전기료가 감당이 안돼 오후 수업 때만 에어컨을 켜고 있다. 지난해 무상급식 실시로 기본 운영비가 감소한 탓이다. 양쪽 벽엔 선풍기 2대가 돌아가고 있지만 열기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교사는 “너무 더워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라며 “학생들 사이에서 ‘에어컨 틀어달라고 교육청에 전화하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고 털어놨다.



○전국 초등학교 94.6% 무상급식

2011년 8월24일 서울에선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저소득층 자녀 대상의 ‘선별적 무상급식’을 내건 오세훈 서울시장이 초·중교 전면 실시를 주장한 시의회와 시교육청에 맞서 주민투표를 벌인 것이다. 최종 투표율은 25.7%로 투표함 개봉 기준에도 못 미쳐 전면 무상급식이 결정됐다. 이후 무상급식 여론은 급속히 확산됐고 지난해 1월부터 초·중교 전면 무상급식이 자리잡았다.

지난 3월 기준 전국 1만1448곳의 초·중·고교 중 무상급식 학교는 72.6%인 8315곳이다. 2009년(16.2%)에 비해 4배 이상 높아졌다. 초등학교는 5942곳 중 94.6%(5622곳)에 이른다.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 중 서울, 인천, 광주, 세종,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남, 제주 등 12곳은 모든 시·군·구에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 중이다.

무상급식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 반응은 긍정적이다. 초등학생 학부모라면 과거 1인당 연간 50만원이 넘는 급식비 부담이 없어졌다. 올해 전국 초·중교 급식단가가 지난해보다 10% 안팎 인상돼 급식의 질도 좋아졌다는 평가다. 시·도교육청의 학부모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무상급식 만족’이라는 응답이 평균 70%를 웃돈다.

○빠듯한 살림에 시설 개선은 뒷전

문제는 예산이다. 무상급식 예산은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광역·기초)가 나눠 부담한다. 올해 전국 평균치로 볼 때 교육청이 53%, 지자체가 47%를 부담한다. 올해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의 전체 예산이 지난해 대비 6%가량 늘어났지만 무상급식 예산은 2820억원에서 3953억원으로 39.3% 증가했다.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이 지자체 전입금에 의존하고 있어 교육청 예산 확보는 더딜 수밖에 없다.

예산은 한정됐는데 무상급식 예산이 늘어나다 보니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이 시설 확충 등에 사용하는 ‘학교 기타시설 증축’ 예산은 2010년 2617억원에서 지난해 1039억원으로 60.3% 감소했다.

교총이 지난 6월 전국 유·초·중·고교 교원 14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 살림살이 실태 관련 교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운영비 부족으로 교실 냉난방, 체험활동, 학습자료 제작 등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힌 교원이 응답자의 56%에 달했다. ‘천장, 벽면 등에서 비가 새는 교실 등이 있다’는 응답도 38%였다. 교원들은 운영비 부족의 주된 원인으로 ‘무상급식 등 복지예산 증가’를 꼽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안전진단 D등급에도 개보수를 못하는 사례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서울 C중학교 교감은 “2년 전만 하더라도 교육청에서 컴퓨터나 책걸상 같은 교육 기자재 등의 수요를 조사해 지원했다”며 “요즘은 교육청에서 아예 지원 여부를 묻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무상급식 앞으로가 더 문제

지자체와 교육청들은 무상급식 예산이 계속 불어날 전망이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 초등학교 급식비 단가를 종전 2580원에서 2880원으로 11.6% 인상한 서울시는 올해도 최소 10% 이상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교육청에선 식재료 및 인건비 상승으로 지난해 대비 20%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적절한 인상폭과 관련해 교육청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급식비 단가는 6% 안팎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는 무상급식 대상이 중3까지 확대된다. 이에 따라 올해 3953억원인 서울시 무상급식 예산은 5000억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지자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서울, 경기 등 대부분의 지자체가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지방세수 급감에 시달리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입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가 지난 15일 전국 최초로 내년도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자체 세수 감소는 교육청 지원금 삭감으로 이어진다.

올해부터 확대 실시된 누리과정(만3~5세 교육·보육비) 예산으로 교육청 예산이 더욱 빠듯해졌다는 점도 교육예산 운용에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올해 필요한 누리과정 예산은 7344억원이지만 현재 6183억원만 확보했다. 이에 따라 도교육청은 경기도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지만 경기도 역시 재정난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강경민/박상익 기자 kkm1026@hankyung.com





▶ 지자체 vs 교육청 "너희가 더 내라"…서울·충북·부산 등 분담률 놓고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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